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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사사로우면 어쩌지?" 이 고민은 해결됩니다

[시민기자 기사쓰기 노하우] 아빠가 아닌 노동자의 이야기가 될 때 좋은 글이 된다

등록 2020.01.07 08:20수정 2020.01.0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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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가장 좋은 '소재'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분노'라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황당한 일 등 다양한 상황을 겪는다. 그중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기쁜 것보다 슬픈 것이, 행복한 것보다 절망하는 것이 우리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흔쾌하고 흡족한 것은 그저 즐기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억울하고, 성나고, 노여운 일은 누구라도 붙잡고 말하고 싶고, 어떻게든 표현해 알리고 싶다. 슬픔은 기쁨보다 힘이 세서 우리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들을 잘 다스리는 법을 익혀야 한다.

글쓰기의 가장 좋은 '관계'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가족'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학교, 회사, 조직, 단체 속에 수많은 이름과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중 직장동료보다 친구가, 조직의 구성원보다 친족 관계의 가족이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 쓰인다. 지나가는 행인의 처지와 기사 속 누군가의 애달픈 사연과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이하고 엄청난 재난과 사고도 스치면 잊히기 마련이다. 다시 마주치고 들여다볼 확률은 적다.

하지만 친한 친구의 딱한 형편과 가족이 아픈 일은 눈 감을 수 없고 무시할 수 없다. 누군가의 중병보다 나의 작은 상처 하나가 더 아린 것처럼. 공감은 거리와 친밀함의 정도와도 관련이 있어서 관계가 가까울수록, 내 경우일수록,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내 부모 형제의 슬프고 아프고 화나는 일은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때문에 '가족이 겪은 분노'는 절로 쓰고 싶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정부 기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사람들, 대기업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자는 본인이 아니라면 그의 가족일 확률이 높다.

남들은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다. 세상에 억울한 일과 아픈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해주고 들어줄 사람보다 더 많으니, 우리는 생활 반경 곳곳에서 호소하는 현수막과 소리치는 고성을 마주하는 것이다. 이해와 공감을 위해 마음 같아서는 세상 사람 모두가 가족이었으면 싶다.


누군가는 그 방법으로 '글'을 택할 것이다. 말은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흘러 사라지지만, 글은 인터넷 공간 속 어딘가와 매체의 지면에 영원히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읽히고 퍼지고 누군가 공감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도 어딘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나 또한 부모를 생각하면 화가 많았다. 평생 건설현장에서 50년 넘게 노동을 해온 아버지를 보면 항상 의문이었다. 내 아버지가 저렇게 하루도 쉬지 못하고 몸을 혹사해 가며 해온 노동의 결과는 늙어버린 몸뚱아리뿐이었고, 내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노동자라 천대하고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자식인 나는 그런 아버지를 건설업자라 속이고 부끄러워했다.

이 사회 속 노동자의 성실과 근면의 결말은 가난의 대물림이었고, 흙수저인 나는 그 수저에 금칠을 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고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 위해 애쓸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궁핍이 세습된 나의 생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고, 노력은 나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엄마 카드를 쓰며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이었다. 내 마음은 전혀 달래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가족의 이야기를 쓸 때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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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미

  
처음 내가 쓴 글은 문장 속에 눈물과 악이 많았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노동이 슬펐고, 아팠고,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쓸수록 한계가 왔다.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는 글과 한쪽으로 치우친 일방적인 생각들은 글을 계속 쓸 수 없게 만들었다. 나조차도 내 글을 읽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자식이라는 위치를 버리고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노동의 결과보다 과정을 들여다보았고, 나는 '왜' 그것이 슬펐고 부끄러웠는지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내 아버지만이 막노동을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모두의 노동자는 누군가의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자주 묻고, 고민의 방향을 바꾸고, 생각의 범위를 넓혔다. 아버지로 시작한 글은 노동자로 번져갔고, 그러자 분노는 고민과 이해로 수그러졌다. 나는 비로소 쓰며 부모와 노동자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와 가족의 아픔일수록 객관화 시켜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관계를 빼고 감정적인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른 이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글을 써야 한다. 분노와 아픔의 글은 멀찌감치 떨어져 퇴고할수록 공감의 가능성이 커진다.

개인이 겪은 일이지만 범위를 늘려 한 사람이 상징하는 사회 속 역할과 위치는 무엇인지, 개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국가나 사회의 무관심과 부족한 제도 때문은 아닌지, 무엇보다 나만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쓸 수 있다면 그 글은 내가 썼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노동과 어머니의 가사노동에 대해 글을 쓸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사사로움'이었다. 내 부모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공감해 줄까 매번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곧 건설현장 노동자, 전업주부, 가난했던 시절 속 어쩔 수 없는 무지의 희생자였다는 것을 인지하고 표현하자, 수많은 노동자와 주부, 그 시절을 거친 어르신들, 그리고 그런 부모를 둔 자식들까지 모두 공감해 주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글을 쓸 때마다 고민한다. 내가 표현하는 한 줄 문장에 담을 수 있는 '내 부모'가 아닌 '우리 모두의 부모'의 마음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우리 아빠'가 아닌 노동자와 근로자의 이야기, '우리 엄마'가 아닌 여자, 주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될 때 글은 더 많은 사람의 처지를 포용하게 될 것이다. 대상과 주제에 대해 '넓혀 사유할수록 널리 읽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민기자 #글쓰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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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 삶의 면역력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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