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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50대, 7개월의 하프타임에서 내가 얻은 것

[내 인생의 하프타임] 연재를 마치며

등록 2019.12.25 12:11수정 2019.12.2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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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삶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50대 남성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2년 전만 해도 난 내일이 불안한 사람이었다. 20년 정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보니 젊은 시절에 품었던 삶과 일에 대한 목표는 이미 잊었고, 그저 급여와 자리의 안전만 생각하는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내가 하고 싶다거나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시키는 일만 하다 보니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깊은 상실감도 맛보는 일까지 겪었다.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더니 마음도 아팠다. 뭘 하든지 집중이 안 됐는데 오직 낙서할 때만 마음이 편안했다. 처음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어만 나열했을 것이다. 그러다 그 단어들을 이어서 문장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난 마음의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어느덧 이런저런 글을 SNS에 올리고 있었다. <오마이뉴스>라는 창도 두드렸다. 정확히 2년 전 이맘때였다.


처음에는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가 비채택됐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좋은 기사를 교재 삼아 계속 글을 올렸다. 어느덧 내 글이 채택되기 시작했다. 글감은 주로 내 주변에서 찾았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리뷰를 썼고 산책을 하며 만난 오리들의 생태를 글로도 옮겼다. 편집부 의뢰로 기획 기사를 쓰기도 했다. 점점 내 안의 모습과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하프타임' 연재를 시작했다.

50대를 위한 50대의 이야기

사실 난 연재를 하기 전만 하더라도 50대라는 주제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50대로 넘어가는 나를 고민했던 적은 있었지만, 고민의 영역에 다른 50대들까지 포함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연재를 하기 위해서는 50대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했다.
   
우선 난 주변 지인들부터 공략했다. 평소에 자주 만나는 그들이었지만 내 감각 기관은 평소와 달랐다. 농담처럼 지나가는 말들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대기업을 다녀서 혹은 공무원이라서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았던 그들도 고민이 많았다. 50대들이 겪는 퇴직과 은퇴라는 화두가 깊게 다가왔다.

직장인뿐 아니라 자영업을 하는 지인들도 찾아다녔다. 원래부터 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직장에 다니다가 혹은 다른 가게를 하다가 업종을 바꾼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주로 얼어붙은 경기를 이야기했지만 나는 다른 모습이 보였다.

그중에는 자영업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업자도 있었지만 그냥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사람들도 많았다. 탄탄한 준비보다는 시작하는 데에 의미를 두었던 것. 거기에는 (자영업) 창업을 장려하는 정책이 숨어 있었다. 덕분에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과 일자리 정책도 들여다보게 됐다.


연재를 위해서 사람들만 만난 건 아니다. 관련 도서와 연구 문헌들을 읽으며 참고했다. 고령화 사회를, 고령화 사회에서 바뀌는 사회구조를, 사회구조의 변화 때문에 달라지는 연령 역할 등을 다룬 책들과 논문들을 찾아서 읽었다. 그리고 달라질 한국사회를 정부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정책 자료들도 구해서 읽었다.

그렇게 연재를 하다 보니 독자들의 반응을 몸으로 느낄 때도 있었다. <오마이뉴스> 메인면과 포털사이트에 내 글이 걸리는 위력은 대단했다. 심지어 홍보하지도 않았는데도 지인들은 내 글을 읽었다며 아는 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아픈 순간도 있었다. 내가 쓴 글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익명으로 다룬 지인들을 주변에서 알아본 것이다. 의도치 않은 결과였지만 그들에게 상처를 준 거였다. 난 연재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

나라서 쓸 수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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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이유로 하프타임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하프타임을 마칠 때가 되었단 걸 느끼고 있다. ⓒ unsplash

 
마지막 글을 준비하며 컴퓨터 폴더에서 연재의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연재 순서대로 정리한 폴더에는 다양한 메모와 초고 그리고 수정본이 있었다. 거기에서 나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얻은 것이 많았다. 연재한 글들만 쌓인 게 아니었다.

연재하면서 나도 인생 후반전을 위한 하프타임을 가졌다. 처음에는 인생 후반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 했다는 막연한 이유로 하프타임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하프타임을 마칠 때가 되었단 걸 느끼고 있다. 어느덧 난 인생 후반전 작전을 세운 것이다. 이 모든 게 '내 인생의 하프타임'을 연재하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계획도 세우고, 내 가능성도 찾게 된 덕분이다.

지금 나는 50대를 주제로 일을 준비하면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연재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책에다 담으려는 것이다. 나는 기사 연재라는 제한된 분량과 정해진 기간 때문에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책 출판이라는 2020년 계획도 생겼다. 어쩌면 계획이라기보다는 희망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내 의지만으로 책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계획을 세우면서부터 난 책 목차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써보고 있다. 아마 수십 번도 넘게 고쳐 썼을 것이다. 내가 집필할 책 내용을 독자들이 궁금해할까도 공감할까도 수없이 생각했다.

처음에는 50대를 소재로 50대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쓰면 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실상이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요즘 출판계를 달군 세대 담론으로 접근해 보자는 생각도 해 보았다. 관련 자료를 공부하다 보니 인구 변동과 사회구조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파면 팔수록 새로운 주제가 솟아올랐다. 그만큼 연령과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난 학자 흉내를 내고 있었다. 난 아직 글 쓴 지 오래되지 않은 작가 지망생일 뿐이었는데. 물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문체를 흉내 내어 글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쓴다고 해서 독자들의 공감이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다양한 담론 중에서 내가 흥미를 느끼며 잘 쓸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지 처음부터 고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가 내게 들려준 말이 있다. "자연 속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한 평 남짓 고시원에 사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글이 있다. 인생이 제각각이므로 쓸 수 있는 글도 다르다." 그 기자는 <쓰기의 말들>이라는 책 속 문구를 인용했지만, 그 문장이 곧 내 이야기 같았다.

연재를 마치는 지금부터 난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더욱 깊게 파보려 한다. 2020년 연말에 내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벌써 기다려진다. 그동안 내 글의 부족함을 채워준 편집부 기자들에게, 그리고 내 연재를 읽어준 독자들에게 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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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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