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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생 최강의 반찬'이 있습니까?

[사춘기 쌍둥이 아들과 나누는 이야기] '츠바키 문구점'과 '반짝반짝 공화국'을 읽고

등록 2019.12.26 09:54수정 2019.12.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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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이란 책이 있다. 포포라는 애칭으로 대필가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대필가라는 직업이 신기했고 편지를 의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신선했다. 포포는 엄마 없이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외할머니 나름의 육아방식이었겠지만 너무나 엄해서 포포는 따스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그 영향인지 포포는 할머니를 '선대'라고 부른다.

수 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하던 포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츠바키 문구점으로 돌아온다. 아직도 대필 의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포포는 가업을 이어간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대필의뢰를 하는 등장인물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편지를 대필하는 것은 단순히 내용만 전해주는 게 아니었다. 포포는 글씨체, 필기구, 종이의 재질, 종이의 색, 어울리는 봉투, 마지막으로 우표까지 대필을 부탁한 사람과 사연에 하나하나 맞춤으로 선택해서 편지를 완성한다.

나 역시 중고등학생 시절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지금은 자취를 감춘 팬시점에 매번 들렀다. 친구들과 편지지를 구경하고 고르고 또 매일 만나는 친구들에게 절절히 편지를 썼다. 지금은 손 편지를 쓴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할머니를 '선대'라고 부를 만큼 거리를 두고 자란 포포는 옆집에 사는 온화한 노부인인 바바라 부인, 겉보기엔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한 선대의 친구인 남작과 더불어 여러 친구들이 생긴다. 그들과 여름, 가을, 겨울, 봄을 같이 보내면서 포포는 어린 시절을 치유 받으며 진정한 어른으로 자란다.


책모임의 한 선생님에게 우표를 선물 받았다. 무궁화와 태극기가 있는 우표를 각각 두 장씩. 그 선생님은 <츠바키 문구점>의 속편 <반짝반짝 공화국>을 소개해 주었다. 전편에서 대필 편지만 써오던 포포가 선대에게 편지를 쓴다.
 

츠바키 문구점&반짝반짝 공화국 다시 손편지를 쓰고 싶도록 만든 책들 ⓒ 신은경

 
그 과정 속엔 선대를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포포의 마음이 나타난다. 전편이 끝날 즈음 포포는 결혼을 한다. 상대는 포포의 편지친구인 다섯 살짜리 큐피라는 이름의 여자아이이다. 큐피트가 연상되는 이름의 큐피는 그녀의 아빠와 포포에게 이름에 충실한 역할을 완수한다.

속편에서 포포는 남편에게, 선대의 편지친구인 시즈코 씨에게 편지를 쓴다. 결혼으로 생긴 딸이지만 큐피를 돌보면서 점점 선대를 이해하게 된다. 순간순간 선대의 입장에 처하고 그 마음을 느낀다.

어머니날 포포는 큐피에게서 수제 카드를 받는다. 그 카드에는 '포포짱 사랑해요'란 말과 종이접기로 만든 카네이션이 붙어있다.

"이제 이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 아주 약간의 반찬만으로도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듯이, 이 카드만 있으면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 카드는 내 인생 최강의 반찬이라고."

큐피의 카드를 받은 포포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지금은 열 두 살인 쌍둥이 아들이 다섯 살일 때 처음으로 어린이집 재롱잔치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은 하필 그 시기에 장염에 걸려서 퀭한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내 아이들이 대견해서 또 아픈 몸으로 최선을 다하는 무대를 안타까운 눈물과 함께 지켜보았다.

그날 맨 마지막 합창이 끝나고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오늘 아이들 참 예쁘죠? 어머님들 앞으로 아이들 키우시면서 힘든 순간이 여러 번 있을 거예요. 그때마다 오늘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힘내세요"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 최강의 반찬은 이런 사진들과 동영상이었다는 걸 나는 새삼 느낀다.

책이 편지에 대한 내용이어서 그 영향으로 나도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대상은 쌍둥이 아들. 언제 편지를 마지막으로 썼는지 기억을 되살려 본다. 여섯 살의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 뒤론 쓰지 않았다.

그 마지막 편지들은 한글을 가르치고 싶은 엄마의 욕심이 담긴 불순한 쪽지편지였다. 아이들은 오후 내내 그 편지의 글자들을 연습했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지금도 생생한 아기 목소리가 나를 맞아주었다. 답장이었다.

나 : "강물, 엄마한테 편지 받았던 거 기억나?"
강물 : "무슨 편지?"
나 : "기억 안 나? 줄기반일 때 가방에도 넣어주고 식판에도 넣어줬었는데."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있는 아이들에게 몇 개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강물 : "아~ 이거."
나 : "(정말로 기억하는지 의심스러워하며) 이 편지들 읽었던 기억나?"
강물 : "응, 줄기반 선생님한테 글씨 물어보기도 했고, 친구들한테 자랑도 했었는데."
마이산 : "나도 나도. 편지에 '강물이와 마이산에게'가 아니라 '마이산에게'라고 적혀있어서 더 좋았어."
나 : "엄마랑 다시 편지 주고받기 할까?"
강물, 마이산 : "좋아."
나 : "그럼 각자에게 편지 써서 우편함에 넣어두기, 어때? 첫 번째 편지에는 특별히 선물 받은 우표를 붙여줄게."

열두 살이 된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 어떤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속에 핫라인이 생기길 바라며 첫 편지를 띄워본다.
 

아들에게 띄우는 손편지 선물받은 우표를 붙인 첫 번째 편지 ⓒ 신은경

 

[세트] 츠바키 문구점 + 반짝반짝 공화국 - 전2권

오가와 이토 (지은이), 권남희 (옮긴이),
예담, 2017


#츠바키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손편지 #쪽지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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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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