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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약속에 핵연료봉도 옮겼는데... 혈액암 투병 중"

[인터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인정받은 원전 피폭 노동자

등록 2020.01.07 07:18수정 2020.01.0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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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한 이정우(가명)씨는 백혈병에 걸렸다. ⓒ 이희훈


단풍이 붉게 물든 계절이었다. 지난 2015년 11월 이정우(45·가명)씨는 아침에 세수를 하다가 코를 풀었다. 검붉은 덩어리가 손에 쏟아졌다. 피 뭉치였다. 여러 차례 물로 씻어냈지만 코피는 멈추지 않았다. 콧방울에 맺혀 세면대로 뚝뚝 떨어졌다. 방법이 없었다. 휴지로 대충 코를 틀어막고 출근했다. 아침에 시작된 코피는 6시간이 흘러 점심 나절에야 멈췄다. 이튿날에는 12시간 동안 지혈이 안 됐다. 그가 머문 자리엔 붉게 물든 휴지 덩어리가 쌓였다.

혈소판 감소증.

2016년 1월 울산대학교 병원이 그를 진찰한 결과다. 의사는 그에게 "정상 혈소판 수치는 15~40만 정도인데 5만 정도밖에 안 된다"라며 코피가 안 멈추는 이유를 설명했다. 스테로이드와 면역글로불린 약물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큰 병원'을 찾아 서울로 갔다. 2017년 5월 서울대학교병원은 그에게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진단했다. 혈액암의 일종으로 백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병이었다. 

그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피폭됐다. 월성 원전 1호기의 압력관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다가 방사선에 노출됐다. 압력관에는 방사선을 내뿜는 핵연료봉이 들어 있었다.

지난해 6월 근로복지공단은 그가 신청한 '산업재해 요양 급여'를 받아들였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발병과 피폭 사이의 연관성을 '업무상 질병 판정서'에 이렇게 서술했다.
 
원자로 설비개선공사에서 신청인(이정우)이 수행한 주요 작업은 고방사선 관리구역에서 원자로 압력관을 교체하는 일로 핵연료봉이 인출된 환경에서 작업을 수행하였지만 이미 방사화된 구조 속에서 높은 선량의 방사선 피폭이 발생하였다고 판단되고, 월성 1사업소 월성 1호기 원자로 설비개선공사 수행 기간 중 전리방사선 외부 피폭과 내부 피폭 선량이 각각 42.16mSv(밀리시버트), 0.72mSv였던 점... (중략)...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비롯한 백혈병이 50mSv 이하의 저선량 피폭에도 발생 가능하다는 역학적 연구가 있으며 미량이지만 내부 피폭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은 작업 중 방사선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발병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업무와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참석한 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지난해 12월 23일 경북 봉화군 버스터미널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2009년 1월~2010년 12월 543일 동안 월성 원전에서 일하다 피폭 당한 기억을 꺼냈다.

"역대급 방사선에 노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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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한 이정우(가명)씨는 백혈병에 걸렸다. ⓒ 이희훈

 
월성원자력발전소는 그가 막다른 길에서 찾은 일자리다. 2009년 1월 매형의 소개로 한전 KPS에 취직했다. 발전 설비 및 송·변전설비에 대한 관리와 정비 공사를 맡은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다. 한전 KPS 직원은 "2년간 계약직으로 일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믿었다. 어두운 현실에 '정규직'이란 빛이 보였다.

창고 관리를 맡았다. 처음엔 발전 설비 정비와 관련된 일을 안 했다. 월성 원전 1호기 압력관 교체 작업에 필요한 부품이 들어오면 창고에 쌓고 번호를 매겼다. 비계를 설치하고, 지게차로 부품인 쇳덩어리를 옮기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생각보다 일은 쉽고 편했다. 


그러다 하는 일에 변화가 생겼다. 2009년 5월 원자로 격납 건물 현장에 투입됐다. 격납 건물은 원자로와 원자로 냉각재계통 설비가 있는 곳이다. 방사선을 내뿜는 핵연료봉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군말하지 않았다. 2년만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다.

휴대용방사선측정기(TLD)를 숨겼다. 격납 건물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은 반드시 TLD를 부착해야 한다. 그도 현장에 들어갈 때는 가슴에 TLD를 달았다. 하지만 방사선 수치가 문제였다. 하루라도 더 일하려면 방사선 수치를 관리(?)해야 했다. 수치가 오르지 않게 격납 건물 입구 쪽에 TLD를 보관했다. 고무장갑에 싸서 차폐막으로 덮고 그 위에 납을 얹었다. 이러면 TLD 수치는 오르지 않았다.

TLD에 나타나는 수치는 속였지만 홀바디 검사(체내외 전신 스캔 방사선 검사)는 그럴 수 없었다. 작업 현장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이 검사기를 통과해야 한다. 검사기에서 방사선 수치가 높게 나오면 안전요원이 제지한다. 방사선 수치가 높은 채 나가면 본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수치를 떨어뜨려야 나갈 수 있다. 샤워를 하면 수치가 떨어졌다. 이씨는 많게는 4번까지 샤워를 하고 나서야 나간 적도 있다.

압력관에서 핵연료봉을 꺼낼 때도 TLD를 부착하지 않았다. 고무장갑에 꽁꽁 싸서 격납 건물 입구 앞에 숨겨놨다. 보통은 전자동 기계를 사용해 압력관에 들어있는 핵연료봉을 빼고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 전자동 기계가 고장이 나면 방법이 없었다. 동료 직원과 함께 핵연료봉에 가까이 다가가 수동으로 기계를 조작해 압력관에 핵연료봉을 빼고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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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1월 13일 월성 1호기의 모습. ⓒ 연합뉴스

 
압력관에서 핵연료봉을 뺄 때는 차폐막 뒤로 물러서서 일을 한다. 하지만 사고 당일 동료 직원은 핵연료봉이 나올 때 그 앞에 정면으로 서 있었다. '헉' 하는 소리가 났고 기계는 멈췄다. 안전 관리자가 달려왔다. 병원으로 옮길 준비를 했다. 하지만 홀바디 검사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됐다. 한참 후에야 동료 직원은 병원으로 갔다. 직원들 사이에 "역대급 방사선에 노출됐다"란 소문이 나돌았다.   

방사선에 노출되면 흔히 원자력병원에 간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동료 직원은 원자력 병원에 안 갔다. 계명대 경주동산병원에서 혈액검사만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이날도 동료 직원은 TLD를 착용하지 않았기에 방사선 수치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 후에도 그 동료 직원과 함께 핵연료봉을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한전 KPS 직원이 "2년만 계약직으로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라고 한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약속했던 2년이 지났다. 한전 KPS 직원은 "더는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정규직을 바라며 충성을 다했는데 헛된 꿈이 됐다. 남들이 기피하는 험한 일도 나서서 했다. 작업 기간을 단축하려고 위험한 일도 동료 직원을 구슬리며 강행했다. 때론 다른 노동자를 피폭 현장으로 내몰기도 했다.

알고 보니 정규직 전환은 모두 거짓 약속이었다. 서류를 떼어보니 계약직도 아니고 일용직이었다. 참담했다.

근로복지공단, 다른 일용직 근로자도 추적 관찰 제안

이씨가 월성 원전 1호기에서 일하며 피폭된 수치는 기록으로 남았다. 한국원자력안전재단에 보고된 '월별 개인 피폭선량'에 따르면 2009년 5월~12월까지 누적 방사선 수치는 25.53mSv였다. 2010년 1년간 누적 피폭량은 16.63mSv다. 내부 피폭 자료도 있다. 그가 근무한 기간 총 71회 동안 소변 시료를 검사한 결과 총 내부피폭 선량은 0.72mSv로 나타났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정한 1인당 원전 노동자의 연간 피폭량 허용치는 50mSv이다. 내·외부 피폭을 합한 수치며 5년간 합산 100mSv 이하로 규정돼 있다. 543일 동안 이씨의 내외부 누적 피폭선량은 각각 42.16mSv, 0.72mSv로 총 42.88mSv이다. 연간 피폭량 허용치에 가까운 수치다.

위원회는 이씨의 발병을 산재로 인정하며 추적 관찰을 언급했다.
 
(주)한전KPS 월성 1사업소 월성 1호기 원자로 설비개선공사 당시 근무하였던 다른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도 이 사례와 유사한 전리방사선 피폭 근로자가 있었을 것이므로 우리 위원회는 이들에 대한 추적 관찰을 제안한다.
-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내 역학조사평가위원회
 

그는 월성 원전을 떠나지 못했다. 2015년 11월 코피가 멈추지 않던 날도 월성 원전의 경비원으로 출근했다. 2017년 처음 항암 치료를 받은 다음 날도 경비 업무를 나갔다. 이날 그는 열이 40도까지 오른 상태에서 속을 게워내다가 기절해 병원에 실려 갔다. 결국 그해 월성 원전 경비원을 그만뒀다.

"두꺼운 콘크리트도 소용없다, 그냥 끝장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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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한 이정우(가명)씨는 백혈병에 걸렸다. ⓒ 이희훈

   
- 월성 원전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이 먹은 나를 써주는 곳이 없었다. 더는 갈 곳이 없었다. 다른 일도 해봤지만 원전 일만큼 편한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전 KPS 직원이 정규직을 미끼로 피폭 위험이 높은 현장에 나를 내몰았는데 그때는 몰랐다. 막막했던 앞날에 꿀 보직 같은 한전 KPS 정규직은 희망이었다. 원전은 피폭 위험이 있지만 일은 편하고 쉬워 보였다."

- 병은 완치됐나?
"아니다. 지금도 투병 중이다. 최근에야 혈소판 수치가 7만 5천으로 올랐다. 서울대병원에서 정상은 14~40만 정도라고 하는데 거기에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지금도 수치가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처음보단 낫다. 2015년 초창기 울산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는 혈소판 수치가 7000까지 떨어져 한쪽 눈이 안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운동하며 오로지 건강 회복에 초점을 맞춰 생활한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한동안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골수 이식을 받기 위해 약 50일 정도 병원 무균실에서 생활했다. 그땐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없고, 면역력도 약해 감기만 걸려도 죽을 수 있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올해(2019년) 5월 즈음에 혈소판 수치가 5만까지 떨어지면서 재발 위험이 커졌다. 끔찍했던 항암치료와 병원 무균실에서 지냈던 기억이 살아나면서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바깥 출입도 안 했다.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6월부터 혈소판 수치가 좀 오르고 이대로는 진짜 죽겠다고 싶어 운동을 시작하면서 건강이 차츰 좋아지고 있다."

- 골수 이식은 받았나?
"누나가 이식해줬다. 보통 골수 이식을 하면 80~90% 맞는 걸 한다는데 나는 가족인데도 50%밖에 안 맞는다. 치료를 받는 서울대학교 병원 의사도 재발 위험이 크다고 했다. 지금도 한두 달에 한 번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 산업재해 신청은 어떻게 하게 됐나?
"매형이 먼저 제안했다. 매형은 지금도 월성 원전에서 일한다. 피폭이 발병 원인으로 의심된다며 산재를 신청해보자고 했다. 사실 나는 반대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너무 고통스러웠다.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몸 아파 죽겠는데 그런 걸 어떻게 생각하나. 매형의 힘으로 지난 2017년 10월경에 산재를 신청하게 됐다.

그때 때마침 산재를 신청하려고 한다는 옛 동료한테 전화가 왔다. 그도 나와 같은 일을 했다. 그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형님 한 사람이 외칠 땐 힘이 없으나 두 세 사람이 외치면 다르다, 힘이 될 수 있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했다. 누군가의 힘이 되고 싶었다."

- 원전에서 일한 걸 후회하지 않나.
"너무 무지했다. 그래도 일할 수 있으면 하겠다. 지금은 날 써주는 데가 없다. 몸이 좋아지니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나이가 지긋한 아버지가 있다. 결혼도 못 했고, 효도도 한 번 제대로 못 했다. 다만 방사선 피폭 위험이 높은 현장은 안 간다. 거기에선 일 못 한다."

-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했다.
"원전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만 봐도 그렇다. 원전 폭발사고에 나라가 폐허가 됐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지진 나면, (원전의) 두꺼운 콘크리트도 소용없다. 그냥 끝장나는 거다."

- 봉화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고향이다. 경주에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지내니 너무 서러웠다.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왔다. 지금은 친구 식당 일을 간간이 도와주면서 지낸다."

- 꿈이 있다면?
"평범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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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피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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