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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한국당이라... 김재원 의원, 감당할 수 있겠소?

[주장] '비례용 위성정당'은 정말 출범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등록 2019.12.27 08:05수정 2019.12.2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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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슈퍼울트라 정권 방패처이다”며 공수처법 처리를 반대하고 있다. ⓒ 유성호

 
편지글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제 혼잣말이나 다름 없으니, 죄송하지만 아래로 존칭이나 경어는 생략하겠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 기자 말

김재원 의원께.

김 의원, 참으로 대단하오. 김 의원의 말 한 마디에 정치권이 술렁이고 언론이 춤추는 걸 보면 과연 제1야당의 정책위의장답소. '모든 설계에는 빈틈이 있다'고 누가 말했는지 참 기가 막히는 말이오. 

'비례한국당'이라는 묘수를 찾아낸 걸 보니 김 의원이 과연 '꾀주머니'가 맞긴 맞는 것 같소. 한국당만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들면 의석수가 확 늘어나, 잘하면 원내 1당으로 올라서고 최소한 민주당과 비슷한 수준은 된다니 눈이 확 뜨이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소.

그렇게 안 된다 하더라도 한국당과 맞대응하기 위해 민주당이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든다면, 캡까지 씌워 지키려 했던 연동형 비례대표 의석 구간 30석도 결국 정당 득표율대로 나눠 가지게 되니... 선거법 개정 전인 현재의 제도와 하나도 달라질 바 없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이어 패스트트랙까지 걸쳐 2년 가까이 끌어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조금의 손해 없이 사실상 부순 거니 이 또한 쾌거가 아닐 수 없소. 그런데 말이오.

[리스크 하나] 자유한국당의 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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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쥔 강효상, 버티는 주호영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임시국회 회기결정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거절했으나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이 발언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버티고 있다. 다음 토론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이 자유한국당 김태흠, 주호영, 민경욱 의원 등에 가로막혀 발언대로 진입하지 못하면서 고성이 오가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 강효상 의원도 주먹을 쥔 채 '의장사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내 눈엔 한국당 의원들은 물론 황교안 대표까지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소.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묘수가 있는데 풍찬노숙을 해가며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앞에서 선거법 개정을 막겠다고 농성을 할 리가 없지 않겠소.

김 의원이야 비례한국당을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 수 있는, 사소한 장난거리처럼 말하지만, 그 정당이 페이퍼 정당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마술이 가능하겠소. 모두가 말하듯이 정당 기호 앞 순위를 배정받으려면 현역 의원 20~30명이 건너가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오.


사실 현역 의원이 건너가야 하는 건 정당 기호보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 더 크오. 기호야 2번이 됐든 22번이 됐든 어떻게든 알리면 되니까 부차적인 문제지만 선거자금은 어떻게 할 거요. 설마 20~30석을 목표로 하는 비례용 위성정당의 선거 운동을 하지말자는 거는 아닐 테고... 홍보며, 조직 운영이며, 사무실 관리며 하는 모든 비용을 어디서 다 충당할 거요. 당연히 국가보조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바, 보조금은 현역의원 숫자만큼 배정되니 마땅히 다수의 의원들이 비례용 위성정당으로 건너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자, 김 의원. 하나 물어 봅시다. 이렇게 20명에서 30명쯤 되는 의원이 비례정당으로 건너갔다고 합시다. 이런 상황을 무엇이라 부르오? 영민한 김 의원이 설마 모른다고 하진 않을 것이오. 탈당? 아니오. 정확히 말해 분당이오. 아마 한국당 의원들이 골치 아픈 게 바로 이 때문일 것이오. 비례한국당은 한국당의 분당을 전제로 하고 있소.

'위장 이혼 아니냐'고 말하고 싶을 듯하오. 선거가 끝나면 하루만에 합당하면 되는 거라고 주장하고 싶기도 할 것이고. 우리 정당사를 한번 살펴보시오. 집 나간 후 2~3개월 만에 다시 합쳐진 사례가 있는지. 새로운보수당, 우리공화당 등 보수정당들과 통합하는 게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지 지금까지 지켜보지 않았소.

속 모르는 사람들은 황 대표 보고 왜 빨리 통 큰 결단을 내려 보수를 끌어안지 않느냐고 타박하오. 한번 생각해 보시오. 새보수당과 통합한다 합시다. 말로는 통합의 3원칙 어쩌고 하지만 결국은 '지분 싸움'이오. 한국당 의원들이 새보수당 의원들에게 적어도 공천을 양보해야 한다는 뜻이오. 

공천을 양보하면 어떻게 되겠소. 그들은 기존에 입당한 바른정당계 의원 일부와 결합해 세를 불릴 거요. '유승민계'라는 강력한 계파가 형성되는 거요. 이게 정치요. 이리 같고 늑대 같고 여우같은 무리들이 득실거리는 동물의 왕국. 그런데 멀쩡한 당을 쪼개 밖으로 내보내겠다니.
  
[리스크 둘] 사람의 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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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선거법 개정안에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앞 농성장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처리를 반대하고 있다. ⓒ 유성호

  
좋소. 당을 쪼갠다고 합시다. 현역 의원을 보낸다고 했소. 누굴 보낼 거요. 불출마자들을 보낸다 했는데 20~30명의 불출마자가 다음 달까지 나오겠소? 나온다 칩시다. 만약 20~30명 의원을 비례정당에 내보내면, 그들 역시 원내교섭단체가 된다오. 그럼 선거 전 국고보조금도 비교섭단체보다 더 많이 받게 되오. 당연히 한국당이 받을 국고보조금도 줄어들게 된다는 이야기오.

그 사람들더러 비례대표 의원 명부에 올리지 않을 테니 자리만 지켜달라고 할 수 있소? 비례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조건으로 현역 의원을 보내면 되는 것 아니냐고도 할 수 있겠소. 그럼 자동으로 당선될 수도 있으니 좋다고 따라 나설 의원도 꽤 될 법 하오.

그런데 무슨 기준으로 그런 특혜를 줄 의원을 선발한다는 말이오. 또 그렇게 해서 당선된 현역 의원들이 선거 다음날 '아이고 고맙습니다, 약속 지킬게요' 하고 신의 있게 합당에 나서겠소? 만약 한국당의 비례정당 당선자가 20명을 넘겨 원내교섭단체라도 된다면, 그들은 캐스팅보트를 쥐게 돼 정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오. 정당보조금도 넉넉히 나올 테고. 그런 그들이 뭐가 급해서 빠른 합당을 할 수 있겠소. 자신들이 당선한 건 자기 정당의 선거운동 덕분이라 주장하며 최소 대선까지 최대 다음 총선까지 버틸 가능성이 크지 않겠소?

뭐 다시 들어온다 칩시다. 아무렴 하루만에 그냥 들어오겠소. 지분을 챙기겠지. 능구렁이 같은 계파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거란 말이오. 이런 조직으로 대선을 치른다고? 김 의원은 승리가 그려지오?

하다하다 안 되니 이제 황 대표 보고 건너가라는 말도 나오나 보오. 배신을 막자는 건데 황 대표가 간다고 그들을 다 휘어잡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소. 게다가 현역 의원만 비례로 공천해 놓은 당에 황 대표가 가서 떡 앉아 있으면 뭐가 되오.

청년·여성 공천한다 해놓고 약속 못 지키니 그 욕은 황 대표가 다 먹는 것 아니오. 뭐 황 대표가 건너가면 현역 의원이 안 따라 가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소. 황 대표가 갖는 상징성이 있으니 현역 의원들 없어도 황 대표가 있는 당이 한국당의 비례정당이라는 얘기인데, 그럼 선거자금은 어디에서 구하오. 잔뜩 진 빚만 황 대표에게 떨어지는 꼴 아니겠소? 

다 좋소, 모든 걸 황교안 대표가 감수한다 칩시다. 합당 후엔 어떻게 되는 거요. 황교안 대표는 여전히 당대표요? 아님 다시 당대표 선거를 치러야 하는 거요? 당대표 선거에 단독 출마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에끼, 농도 심하시오. 그때 상황이 어찌 될지 알며, 단독 출마한들 황 대표는 또 국민 앞에서 얼마나 웃음거리가 돼야 하는 거요. 총리도 하고 대통령권한대행도 해본 사람이 황 대표요. 이제 남은 건 딱 하나 대통령밖에 없는 사람이란 말이오.

[리스크 셋]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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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 한켠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21대 총선은 100여개 정당과 투표용지 길이가 1.3m로 길어진다고 주장하는 배너가 설치되어 있다. ⓒ 유성호

 
사실 20대 국회에 상정된 선거법 개정안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름 현실적인 안이라는 생각은 김 의원도 해 봤을 듯하오. 지역의원 대 비례의원 비율이 3:1인 225:75 원안이 후퇴해 4:1 수준인 현행 253:47로 됐고, 그 비례의석 47석 중에서도 50% 연동률의 비례대표 의석은 30석에 불과하오. 현재의 지지율로만 보면 한국당도 14석 정도의 비례의석을 챙길 수 있어 아주 나쁘지는 않소. 47석 중 14석이면 3분의 1 수준이니 조금 아쉽긴 해도 전혀 수용 못할 안은 아니오.

소수야당에게 우선권이 있는 준연동형 비례제 의석 30석을 싹쓸이하기 위해 비례한국당을 만들었다가 역풍을 맞을까봐 사실 나는 걱정이 좀 되오. 그나마 소수 야당이 현재는 부실해 그 연동형 30석 중에서도 절반 정도는 다시 민주당이나 한국당 같은 큰 당이 나눠먹을 가능성이 큰데도 이렇게까지 욕심내는 것은 좀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염려 같은 것 말이오.

자칫 골목상권 먹을거리까지 욕심내는 탐욕으로 비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싹트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오. 공들여 온 PK, 20대와 50대, 중도층에서 역풍이 나타나면 안 되는데 하는 게 선거를 앞둔 한국당 의원들의 고민일 것이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돼서는 안 되는 것 아니오.

김 의원, 비례한국당, 묘수이긴 한데, 모든 설계에는 맹점이 있기 마련이라오. 난 그것이 걱정이오. 그리고 한 가지 더. 김 의원, 정말 현재의 지지율 대로 내년 4월 총선이 치러진다고 보시오? 돌발변수 하나 없이? 하나만 삐끗해도 다 망치는 비례한국당. 김 의원, 정말 감당할 자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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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비례한국당 #자유한국당 #선거법 #김재원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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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이란 학생 김민혁군과 김민혁군의 아버지 난민 인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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