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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나 할까 싶은 마음, 지금은 접었다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생각해 본 '책방의 일'

등록 2019.12.27 15:15수정 2019.12.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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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도서관에서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발견하고, '서점의 추억'이란 챕터를 읽고 난 후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책방 주인을 꿈꿔보지 않았을까 싶은데, 나 역시 그랬다. 그것은 빵집 주인이 되어 빵을 원 없이 먹고 싶은 일차원적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 책방 주인이 되면 좋아하는 책들을 쌓아두고, 언제고 원하는 때에 여유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발현된 로망이었다. 
 

조지오웰의 에세이 책 '나는 왜 쓰는가' ⓒ 김지영

 
조지 오웰은 꿈 깨라며 그냥 찬물도 아닌 얼음물을 건넨다. 마시고 나면 머리가 찡해서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게 되는. 그가 서점 직원으로 일하며 경험한 현실의 책방은 이렇다. 

우선, 서점에서 일하는 것은 여유롭지 않다. 그의 고용주인 서점 주인은 매주 70시간을 일하는데, 그것도 책을 사러 가게를 비운 시간을 뺀 것이다. 
두 번째, 서점에서 일하면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우리가 소히 진상이라고 말하는). 진상규명을 하자면, 사지도 않을 책을 대량으로 주문하는 편집증 환자, 초판본만 밝히는 속물, 제목도 작가 이름도 모르지만 책 표지가 빨간색인 것만을 기억하고 책을 찾아달라는 손님 등이 되겠다.

조지 오웰이 지나치게 냉소적인 것은 아닌가 싶다가 영화 <노팅힐>을 보며 그의 의견에 동조하게 된다. 책방 주인의 노고에 초점을 맞춰보면, 영화가 새로운 관점으로 보인다. 
 

동네 책방 '퇴근길 책 한잔' ⓒ 김지영

 
남자 주인공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는 노팅힐에서 여행전문서점을 운영하는 책방 주인이다. 그런데 그의 서점은 매달 적자를 면치 못하고, 그는 종종 책을 소매치기하는 사람, 여행전문서점이라는 데도 소설책을 찾는 사람, 시간을 때우려 서점에 방문하는 방금 전에 말한 그 사람 등을 상대해야 한다.

책방 무사를 운영하는 뮤지션 요조도 에세이집 <오늘도, 무사>에서 그와 비슷한 고충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책방에 찾아와 무턱대고 커피 접대를 바라는 중년 남성들 때문에 화장실에 숨어 있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책방 운영에 있어서 '치안'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만약, 임대료나 보증금이 저렴해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후미진 곳에 가게를 얻었다면, 그리고 그곳에 혼자 상주해야 한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책방을 운영하다가 매일 서점 통유리 너머로 자신을 관찰하는 이상한 남자 때문에 책방을 닫은 사례도 있다고 한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진상 손님은 비단 서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단지 책방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서점이라고 해서 책을 좋아하는 고상하고 우아하며 경우가 바른 손님들만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방 주인이 되기 위해 숙고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바로 수익의 문제일 것이다.

바야흐로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 등장하고, 인터넷 서점이 성행하는 시대가 왔다.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하는 서점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렸다. 직접 목도하기도 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특히, 통영에 있는 70년 역사의 '이문당' 서점이 폐업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으면서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을 그 서점을 이렇게 쉽게 스러지게 내버려 둬도 되는 걸까 싶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책방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신촌에 있는 홍익문고는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를 모면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에 서점을 이어받은 아들은 홍익문고를 지키려는 2천여 명의 사람들에 힘입어 서점을 지킬 수 있었다.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은 20대 청년 3명이 인수해 폐업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동네 책방 스케치 ⓒ 김지영

 
요즘에는 책방 수익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하는 이색 서점들이 많아졌다. 카페와 결합하거나 간단한 주류를 판매하기도 하고, 워크숍이나 강연, 소모임을 통해 소통하는 살롱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다루는 책의 분야도 여행, 사진, 소설, 그림책, 독립출판 서적 등으로 특화되었다.

사람들은 클릭 한 번이면 책을 주문할 수 있는 세상에서 왜 동네 책방을 갈까? 그건 아마 e-book보다 종이책을 더 좋아하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조지 오웰이 말한 것처럼, 책방에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책 먼지에 고통받고, 진상 손님에게 마음을 다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동네책방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퇴근길, 책방에 들러 군고구마나 군밤을 품 듯 마음을 채워줄 책 하나 품고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이색 서점들이 단지 이벤트성으로 소비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서점이 되어 오래오래 머물러주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독립출판서점에 들러 다양한 사고와 조금은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을 즐기고, 그들을 응원해주고도 싶다. 나 역시 누군가 나에게 공감과 응원을 보내주길 바랐을 테니까.

한 번쯤 꿈꿔 본 책방 주인. 우선 지금은 예의 바른 책방 손님이 되기로 한다. 언젠가 될지도 모를 CEO 타이틀을 대비하여 좋은 취향을 갈고 닦기로 한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


#동네서점 #서점 #책방 #조지오웰 #책방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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