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산다] 크리스마스에 '삼육구'로 하나 된 우리

인도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등록 2019.12.29 16:19수정 2019.12.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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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라트 아유르베다 대학교(Gujarat Ayurved University) 대학원 정문 구자라트 아유르베다 대학교(Gujarat Ayurved University) 대학원 정문의 모습이다. ⓒ 백두산


내가 이곳 인도 구자라트주 잠나가르(도시), 구자라트 대학교 대학원(Gujarat Ayurved University, IPGTRA)에 오게 된 사연이 있다. 지극히 인도스러운 이야기라서 다 듣고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라고.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시도한 시기는 2018년부터이다. 안타깝게도 2018년에는 대학원 모집 공고 자체가 뜨지 않았기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2019년을 기약해야 했다. 2019년에도 또다시 모집 공고가 뜨지 않을 것을 우려해 1월부터 매주 인도 델리에 위치한 담당 부서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전화와 메일을 주기적으로 보냈다. 뭐 그래도 돌아오는 답은 항상 같았다. 곧 모집 공고가 뜰 테니 기다리라는 말이었다.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정말 금방 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1월에 뜬다고 장담했던 모집 공고는 7월 중순에야 볼 수 있었다. 공고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서류를 준비하고 지원을 했다. 마감되기 일주일 전에 나는 이미 서류를 제출하고 모든 절차를 끝마쳤다. 그리고 그제야 조금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지원하는 자리는 이미 인도에서 아유르베다 전공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대학원 지원을 받는 것이기에 지원자가 그리 많을 수 없고 그래서 절차상에 문제만 없다면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인도에서 어떤 일을 처리하면서 마음을 놓는다는 것은 일처리를 하는 데 꼭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항상 예의 주시하고 손수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그것을 챙겨서 처리해주지 않는다. 지원을 하고 나서도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인도에 전화를 해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했고, 인도 대사관에도 계속 전화하고 찾아가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물어봤다. 물론 돌아오는 답은 좀 더 기다리라는 똑같은 대답이었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계속 연락을 했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나 조금씩 초조함이 느껴지던 때, 나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내가 지원한 지원서가 인도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올해부터 온라인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명을 듣고 보니, 이곳 인도 대사관에서 했어야 하는 절차가 있는데 그것을 하지 않았기에 온라인 상에서 절차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황당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기에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할 만큼 노력을 했지만 내가 할 수 없었던 일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화를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그렇게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인도 문화원에서 성심성의껏 도와주신 선생님이 계셔서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얼마 후 구자라트 아유르베다 대학교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불과 한 달이 조금 못돼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연락을 받은 동시에 짐을 싸서 3-4일 만에 인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간이 많이 늦어져서 정해진 기한 안에 등록을 해야만 했다. 도착해서 안 사실이지만 이 자리는 원래 다른 네팔 친구에게 배정되었던 자리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마지막에 갑자기 오지 않겠다는 연락을 해왔기에 순서가 나에게까지 오게 되었다.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인도가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


대학원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아마 인도라는 나라가 아니라면 잘 일어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 후에 일어날 일 또한 인도라는 나라가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인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항상 나를 깨어있어야만 하도록 만들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의외성으로 놀라게 하니 말이다. 

2016년 1월 1일 5년 6개월 간의 대학교 생활을 마쳤다. 사실 2015년 12월 31일에 마치는 것이었지만 내가 하루를 무단으로 빠지는 바람에 한 해가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다시 인도 뱅갈로르(Bangalore)에 소재한 아유르베다 아카데미(Ayurveda Academy)라는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에서 수련의로 1년 7개월을 지냈다. 아유르베다 아카데미와의 인연을 이야기하자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몇 날 며칠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한 편의 글로 이야기를 꺼낼 날이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NGO단체이자 병원이자 아유르베다를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그대로의 방식으로 꾸준히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다. 스승에서 제자로 가르침을 전하고, 매일 그룹 스터디가 진행되는 곳이다. 대중을 위한 건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유르베다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의사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또한 진행된다. 병원에서는 외래진료와 입원 치료를 하고, 운영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아유르베다 의사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아유르베다 아카데미(Ayurveda Academy) 선생님,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프로그램을 마치고 아유르베다 아카데미(Ayurveda Academy) 선생님, 동료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다. ⓒ 백두산

 
이곳에서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귀중한 교육을 받았고, 그로 인해 마음 한 구석에 항상 꽁꽁 싸매 두었던 많은 응어리들이 풀렸다. 아유르베다를 진정으로 공부하고 그것을 나의 삶에 적용시키는 큰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였다. 그곳에서 나는 전적인 사랑과 배려를 선생님들로부터 그리고 모든 동료들로부터 받았고,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가장 핵심이 되는 내 안의 어떤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사실 나도 뭐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와 이전의 나를 비교해보면 근본적이고 확연한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인도에서 보내왔다. 인도는 힌두교도가 7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이니, 당연히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기리지 않는다. 또한 힌두 달력에 따라 개별적인 새해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음력설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그 말은 이곳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는 기분을 거의 느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냥 일상적인 날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간간이 산타클로스 모자를 파는 길거리 자판이 있어서 "크리스마스가 가까웠구나.."라고 생각하는 정도다. 그렇지 않다면, 늘 지나 보내는 하루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날이다.

그래도 기숙사에서는 우리들(외국인 학생들)끼리 음식을 함께 나누고 모여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런 계기로 많은 학생들이 학년에 상관없이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같은 학년이 아니라면, 오다가다 잠깐씩 마주치는 정도 밖에는 별로 만날 기회가 없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많은 작은 사회가 그렇듯, 이곳에도 더 자주 만나고 교류하는 그룹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가끔은 어떤 부분에서 논쟁이 일거나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이러한 교류가 계속해서 일어나야 한다. 한 번 의견의 불일치가 있었다고 해서 더 이상 만나지 않거나 얘기하기를 피한다면 그들은 누구도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의 배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데 어떻게 모든 부분에 동의하고 충돌이 없을까. 아무런 충돌이 없다면, 나는 그게 더 좋지 않은 현상이라고 본다. 어쨌든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서로의 상황과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도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다. 그러니 좀 티격태격하더라도 함께 자주 모여서 음식을 나누고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자주 있으면 좋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기숙사에는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경우도 있는데, 브라질에서 건너와 아유르베다를 공부하고 있는 프란시스코와 그의 아내 리아나 그리고 그들의 어린 딸 다라가 그런 경우다. 리아나와 다라의 주도로 우리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름하여 '시크릿 산타'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시크릿 산타가 되어주는 것인데, 방법은 이렇다. 참여자들은 랜덤으로 이름표를 뽑게 된다. 그리고 이름표에 적힌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기숙사 정원 정중앙에 있는 나무에 그 사람에게 줄 선물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점심을 먹고 정원으로 가서 각자의 선물을 찾아서 열어본다.

나는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실제로 선물을 발견하고 열었을 때, 어린 시절로 돌아가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이 작은 일을 경험하며 내 안에 스쳐 지나간 생각은 어떤 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혹은 기억에 남게 만드는 데는 거창하고 값비싼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간의 창의적인 생각과 노력으로 우리는 충분히 기억에 남는 즐거운 순간들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왁자지껄한 기숙사... 잠깐의 여유

서로의 선물을 열어보고 웃고 떠들며 기숙사는 한동안 왁자지껄해졌다. 이 순간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었고, 모두가 모두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나에게는 이러한 모습들이 마음 한 구석에 깊이 다가왔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크게 웃고 떠들며 즐거웠던 기억은 많지 않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항상 해야 할 많은 양의 공부에 압도되었고,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교류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런 모임을 하는 중에도 완전히 몰입해서 참여하지 않고 언제나 한 발 만을 걸쳐놓은 상태였다.

실제로 많은 친구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 항상 다가오는 시험의 압박감에 부담을 느끼고, 마음에 여유가 많이 없는 상태다. 한편으로 그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왔었고 잠시 떠났다가 돌아온 지금,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는 비슷한 상황을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넓은 맥락에서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행동해보려 한다. 

다들 각자가 요리해온 음식을 나눠 먹었고,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몇몇이 할 만한 게임을 제안하고 있던 그때 내 머릿속에서 '삼육구 게임'이 생각났다. 나는 바로 친구들에게 이 게임을 제안했고, 모두들 호기심을 가지고 게임에 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게임의 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친구들도 몇 번의 벌칙(주스 마시기)을 받고 나서는 곧잘 따라 하기 시작했다. 곧 방 안에서는 "일, 이, 짝, 사, 오, 짝..." 소리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진지하게 게임에 임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자주 틀리는 친구들이 계속 실수를 연발했고 웃음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이 좀 지나자 모두 30대 숫자로 넘어가 보고 싶어 했다. 숫자 30부터는 소리가 없이 박수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난이도가 부쩍 높아지기 때문이다. 모두들 집중해서 30대 숫자에 접어들었고, 많은 이들이 벌칙을 받았다. 그리고 한참을 노력한 후에야 우리는 30대 숫자를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이 게임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나도 바짝 긴장하며 게임에 임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틀려서 벌칙을 받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각자 요리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 크리스마스 점심, 각자 한 가지 이상의 요리를 한 후 모여서 함께 나누어 먹는다. ⓒ 백두산

 
이날은 새로 만나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면서 친목을 다질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 놓고 웃고 떠들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낸 게 얼마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활동도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저녁 7시 30분에도 어김없이 스터디 서클 모임이 있다. 이날은 저녁 6시부터 정전이 됐다. 그래서 모임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친구들이 모임을 하러 올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은 휴대폰 빛에 의지해서 모임 장소로 향했다. 그래도 5명의 친구들이 왔고, 우리는 어떻게 모임을 진행할지 생각하다 촛불을 켜놓고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마침 방에 초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이날 촛불을 옆에 하나씩 켜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정전이 되었던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촛불을 켜놓고 제법 근사하게 그룹 스터디를 마칠 수 있었다. 모두들 촛불이 주는 은은한 분위기와 이 자리를 좋아했고, 가끔은 촛불을 켜놓고 모임을 진행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날 하루는 여러모로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많았고, 마무리는 경건하고 훈훈했다. 다가오는 새해도 이대로 계속 함께 이어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기를 바라고 한 해 마지막 마무리와 새로운 한 해를 즐겁고 활기차게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촛불 불빛 아래 진행된 그룹 스터디 정전으로 인해 그룹 스터디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촛불을 켜 놓고 무사히 그날의 그룹 스터디를 끝마칠 수 있었다. ⓒ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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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산다 #인도 #아유르베다 #대학원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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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대학 아유르베다 전공. 인도 아유르베다 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 후 동 대학원 고전연구학 석사를 마치고 건강상담, 온/오프 특강을 통해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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