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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달라도 계약자는 같은... 아파트 위탁관리 미스터리

[아파트 회장 분투기 23] 관리체계 바로 잡고 투명성 높이다

등록 2019.12.31 10:49수정 2019.12.3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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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목적 달성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만든 조직은 분업체계를 갖추고 있기 마련이고, 조직의 건강성은 결국 조직 구성원들이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가, 구성원들 간의 소통은 얼마나 잘 이루어지나, 그리고 업무 충실도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아파트 관리조직은 보통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직무 충실도에 따른 보상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까닭에 아파트 유급직원들의 이직률은 높고 직장에 대한 충실도는 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조직에서 질 높은 관리 서비스는 기대난망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것은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의 문제'다. 이 구조의 문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아래에서는 우리 아파트의 특수한 상황을 다뤄보기로 하자.
  

아파트 관리조직을 한 사람이 사유화할 경우 질은 형편없이 떨어진다. ⓒ Pixabay

 
아파트 관리체계가 사유화되면

취약한 구조에 더하여 아파트 관리조직을 한 사람이 사유화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관리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감시의 눈이 부재하기 때문에 부패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우리 아파트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내가 회장이 되기 전까지, 아니 내가 첫 번째 회장이 된 이후 1년 반 정도까지 우리 아파트는 '몸통' 1인이 황제처럼 군림하는 체제였다. 심지어 그가 동대표나 회장이 아니었을 때도 말이다. 아파트 관리조직을 그가 사유화한 것이다.

사유화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혼자 진두지휘하지 않는다. 사유화된 조직도 조직이어서 시스템적으로 움직인다. 적극적으로 부역하는 직원들이 있기 마련이고(대다수의 직원은 소극적으로 부역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보상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의 정점에는 '몸통'이 있어야 하고, 이렇게 하려면 적극적으로 부역하는 직원들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위탁관리회사가 그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야 사유화된 체계가 지속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몸통이 원하는 위탁관리회사가 아파트를 계속 관리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보통 아파트의 위탁관리회사는 2년에 한 번씩 교체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체될 때마다 위탁관리회사를 하위 파트너로 두기 위해서 별도의 작업을 해야 하는가? 아니다.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위탁관리회사는 주기적으로 교체되지만, 실제론 1명이 위탁관리회사를 대표하게 만들면 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1명이 위탁관리회사를 옮겨 다니며 옮긴 업체의 이름으로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하는 입찰에 참여하고 관리사무소의 적극적 부역자들은 옮긴 업체가 낙찰되도록 동대표들을 유인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의 몸통은 이런 '유능한' 업체 브로커를 하위 파트너로 두는 방법으로 아파트 관리조직을 지배해왔다.
  
부패의 3각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이 3각 시스템은 우리 아파트에서 10여 년 동안 잘 작동했다. 위탁관리회사는 계속 바뀌었지만, 실질 관리자는 동일 인물이었고, 몸통은 그 관리 브로커를 통제했으며, 관리사무소의 적극적 부역자들은 이것이 가능하도록 실무로 뒷받침을 했다. 물론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고용 보장과 보이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혜택을 받았을 것이고, 관리 브로커는 아파트의 각종 공사에 개입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아파트 위탁관리업체의 계약자는 업체가 바뀌어도 언제나 한 사람이었다. 관리 브로커가 옮겨간 회사 대표의 직인을 들고 와서 대신 계약했는데, 2017년 1월에 회장인 나와 계약을 했을 때도 그 사람이었다. 당시 확인해보니 그는 10여 일 전에 그 회사에 입사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땐 나 혼자였기 때문에 때를 기다려야 했다.

해체된 3각 시스템

나는 두 번째 회장이 된 이후 아파트 관리체계를 바로 잡기 위해 부패의 3각 시스템을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2017년 11월 21일 정기회의에 위탁관리회사 계약해지를 안건으로 올렸다. 계약해지 사유는 충분했고, 이미 동대표들도 결심한 상태였다.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그런데 해지된 위탁관리회사가 크게 반발하는 게 아닌가.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위탁관리회사는 만약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업무인수인계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실력행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내게 통보해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난감한 상황이었다. 만약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일반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에 방문해서 혼란한 광경을 목격하면 불만을 터트릴 것이 뻔하고, 그러면 그 불만은 결국 회장인 남기업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하여 나는 위탁관리회사 회장에게 전화해서 우리가 계약해지를 한 이유를 설명했다. 내 설명을 자세히 듣던 그 대표는 우리 아파트를 실질적으로 관리해 왔던 관리 브로커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하면서 우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였다. 다행이었다. 결국 2017년 12월에 새로운 위탁관리업체가 선정되었고, 그 위탁관리회사는 관리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 몸통에게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직원들을 교체했다.

이렇게 해서 결국 10여 년 동안 우리 아파트를 관리해왔던 '몸통-관리 브로커-관리사무소의 적극적 부역자'라는 3각 시스템은 완전히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두 번째로 회장이 된 지 두 달 동안 추진한 일이었다.
  
결국 문제가 있던 경비회사와 위탁관리회사는 교체되었고, 2018년 1월부터는 새로운 관리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숨 가빴던 시스템 개혁의 토대를 완성하고 나는 2018년 1월 2일에 있었던 관리사무소 직원 신년하례회에 참석하여 관리소장에게 시간을 얻어 우리 아파트 유급직원 전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는 특정인과 가깝다고 해서 혹은 멀다고 해서 고용 여부가 결정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파트 직원들이 입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관리서비스의 질과 고용 여부와 급여 수준은 서로 연동될 것입니다. 이제는 밤에 기계실·전기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음주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저는 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

지난 2년, 아니 10년 이상 우리 아파트는 완전히 한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 아파트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사자성어가 실현되어가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이제 망가진 관리체계를 바로잡고 관리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주민들의 참여 기회도 넓힐 것입니다. 직원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모두 저보다 연배가 위이신데, 아파트 개혁과정에서 섭섭하게 했거나 무례를 범했다면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주십시오.

2018년은 개혁의 원년이 되어야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경비원들, 청소원들 모두 호응해주었다. 지난 2년 동안 나의 고생을 지켜봤던 한 경비원 아저씨는 나에게 다가와서 정말 고생 많았다며 손을 잡아주셨다.
 

부패를 근절해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 Pixabay

   
입주자대표회의의 투명성을 높이다

이와 동시에 나는 한 달에 1~2번 열리는 동대표 회의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설치토록 했다. 중요한 사안은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필요한 경우엔 동영상을 보면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아파트의 모든 공사를 동대표들이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공사 전, 공사 과정, 공사 후의 장면을 사진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달에 1~2번밖에 쓰지 않는 회의실을 주민들의 소모임 공간으로 개방했다.

그러는 한편 입주자대표회의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서 회의 장면을 영상 촬영하도록 했다. 투명성은 내가 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동영상 때문이었는지 회의의 질은 더욱 높아졌다. 회의자료를 미리 검토하고 서로 토론하는 분위기가 점차 형성되었다. 물론 가끔 딴지를 거는, 몸통에 우호적인 소수의 동대표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 #아파트 비리 #아파트 민주주의 #마을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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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 토지보유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인 토지배당제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아파트 민주주의》(2020),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2018, 공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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