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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 출마하십니까? 이 책도 안 읽었으면서

[서평] 노혜경 '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

등록 2020.01.05 17:58수정 2020.01.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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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 겉표지 ⓒ 개마고원

 
얼마 전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봤다. 20대 남성에게 '페미니즘 지지' 여부를 묻자 75%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예상된 결과였다. 그런데 정작 '스킨십이나 섹스 중 파트너 의사에 따라 행위를 중단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항목에는 85.4%, '(연애 중) 맨스플레인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항목에는 71.4%가 동의했다. 페미니즘이 불러온 가치들에는 동의하면서도 정작 페미니즘이 싫다고 하는 모순이 드러난 것이다(<한겨레21> 1290호, '페미니즘은 틀리고 페미니즘적 연애는 옳다?' 인용).

한국 사회는 20대 남성을 '안티 페미니스트 집단'처럼 여겼지만 실제로는 그들 역시 빠르게 페미니즘적 가치를 습득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설문조사였다. 'Yes Means Yes'를 비롯한 성평등한 연애의 중요성에 대해서 20대는 성별을 불문하고 동의하고 있다. 다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오해하고 있었기에, 남성 중심 사회가 은연중에 확산시킨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판단 근거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개인의 지지나 동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가 바꿔놓은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메갈리아의 탄생과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이후 가부장제 사회를 타파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주목 받기 시작했고, 미투 운동은 '남성 권력'에 균열을 내는 하나의 혁명이 됐다. 이 와중에 책 <82년생 김지영>은 2010년대 소설 중 유일하게 100만부를 돌파했다. 이 같은 현상은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거부하거나 지체할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책 <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는 제목부터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저자 노혜경은 머리말에서부터 "'페미'도 아니면 행세하기 어려운 시대다. 행세=사람노릇"이라며 "페미니스트는 민주주의자처럼 현대인의 최소한"(5p)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책 속에 실린 칼럼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왜 페미니즘이 상식이자 당위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논증하고 있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차별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의미다.(...)페미니즘은 내가 차별받아왔음을 알고 이를 거부하는 연습이다. 나 또한 차별하는 구조의 일원으로 어떤 차별에는 동참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탈출하는 연습이다."(31p~32p)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 사회
 

한국여성연극협회 관계자들이 2018년 3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계 성폭력 사태를 규탄하며 미투(#Me_Too)운동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후 혜화동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최윤석

 
"페미처럼 생각하기를 연습하게 해주고 싶은 책이다"라는 저자의 출간 의도처럼 이 책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페미니스트의 시선에서 어떻게 봐야 할지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불법촬영, 성희롱, 스쿨미투, 낙태죄 폐지, 여성혐오적 표현 등 최근 몇 년 간 주요 화두가 됐던 페미니즘 이슈들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한다. 하지만 소위 '젠더 이슈'만 다루는 책은 아니다. 세대와 계급에 대한 고민, 역사적 사건 등을 언급하며 페미니즘을 사회 전반을 해석할 수 있는 '보편적 틀'로 규정한 것은 이 책의 큰 성과다. 

이를테면 가부장제가 만든 '능력 있는 아내'라는 신화 속에서 부동산 투자에 나서게 되는 여성들을 다룬 '페미니스트도 부동산 투기를 할까',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바라본 '언제나 5월은 또다시 시작한다'를 읽는다면 페미니즘의 개념이 협소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9.11 이후에 미국이 이슬람에 대해 펼친 공격적 정책을 '강자의 무지'로 일컬으며, 이를 문학계 여성혐오와 연결시킨 '강자의 무지는 쉽게 폭력이 된다'의 통찰은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에 더해 '58년생 노혜경'은 자신의 삶을 통해 페미니즘에 역사성을 부여한다. 동일방직과 YH의 여성노동자운동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는, 1990~2000년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비판하는 '페니스 파시즘'의 첫 장을 썼으며, 문단 내 성차별을 목격하면서 '여성 시운동'을 하기도 했다. 노사모를 거쳐 개혁당에 들어가서는 당시에 법제화되지 않았던 '비례대표 홀수순번제(50% 동수)'를 주장했고, 당 강령에 성평등 조항을 넣었다. '페미니즘 계보'를 증명하는 그의 삶은 책의 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자는 '낙태죄 폐지'에 대해 언급하며 중절수술을 기다리는 산모로 가득 찬 1986년 한 동네의 산부인과 대기실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피임의 방법으로 '낙태'가 행해지던 미개한 시절'"(264p)과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냐고 일갈한다.

또 1990년대 문단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여자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평가하고 '연애하라'는 말까지 나왔던 상황을 되새기며 "이 분위기가 30년을 돌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나타났다"(205p)고 지적한다. 이처럼 그는 수십 년간 그가 겪어온 여성을 향한 차별과 배제를 증언하는 한편, 한국 사회가 언제나 더 많은 페미니스트를 절실히 원해 왔음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페미니스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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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 1위를 달리는 후보들을 모아놓은 선거방송의 한 장면을 두고 누리꾼들은 '한국 정치의 젠더 불평등을 실감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의 평을 남겼다. 현재 광역단체장 중 여성은 한 명도 없다. ⓒ SBS 영상 캡처

 
무엇보다 2020년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성 정치'의 필요성을 그 어떤 책보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장 '다시 정치를 생각한다'에 담겨 있는 글에는 곱씹을만한 지점들이 많다.

저자는 여성 정치인의 숫자가 늘어나야 하며, 이를 위해 제도적인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장 최근의 선거였던 2018년 지방선거에서의 여성 공천이 '무참한 지경'이었으며 (관련 기사: "결과는 더불어아재당"... 여성에게 선거는 '기울어진 운동장') 본질적으로는 "남성중심적인 제도와 방법으로 지탱되어온 정치라는 장에서 남성적 방식으로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175p)고 밝힌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도 남성 중심의 정치 구조는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할당제가 적용되는 비례대표의 수는 21대 총선에서도 47명으로, 선거제를 개편했음에도 동일하다. 심지어 여당인 민주당의 경우 여성 중진 의원들이 4명이나 장관에 임명돼, 이들이 불출마 하면서 빈 자리가 생겨났다.

<한국일보>는 "지역구 여성 후보를 발굴할 여력이 없었다"는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민주당이 공언한 '여성 총선 후보 공천 30%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라고 전했다(1월 2일자 기사 '與 여성 중진 줄줄이 불출마.. 국회 남성 카르텔 더 굳어지나'). 여성의 목소리에 의해 사회가 급속하게 변하는 마당에서 정치권은 왜 변하지 않느냐는 저자의 목소리를 정치계가 새겨들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여성 정치인이라고 당연히 '페미니스트 정치'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예를 든다. 박 전 대통령이 여성 정치의 성장을 보여주는 표상이 아닐 뿐더러, "페미니즘을 도용해 이미지 세탁을 했다"(118p)고 말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실패를 "여성 대통령은 앞으로 어렵다"는 말처럼 여성 정치의 실패로 간주한다든가, 박 전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때 그의 여성성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여성 정치인이 '돌격대'가 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남성중심사회에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남성지도부의 선택을 받아야 하고", "악착같아야 남자들 틈에서 살아남는다"(122p)는 인식에 기반해서 여성 정치인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의 행동을 "생물학적 성이 '여성 정치'에 결정적인 근거가 되지 못하는 사례"(123p)라고 꼬집으며, 당사자인 여성 정치인들도 '정치는 약자를 위해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페미니즘은 소수자의 위치에 선 낱낱의 여자사람, 더 나아가 낱낱의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조건이다. 따라서 여성 정치인에 대한 요구는 몸이 여성인 정치인이 아니라 소수자와 약자의 편에 선 정치인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그냥 여성인' 정치가가 이겨서 그로 인해 발생한 권력은 실제로 여성에게 유익할까? 세계적으로 살펴보아도, 보수우파의 여성 정치인이 특별히 여성에게 더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쳤다는 근거는 없다." (117p)

영국 전 총리인 대처와 현 독일 총리인 메르켈을 비교하는 구도도 흥미롭다. 둘 다 여성 정치인이고 장기 집권을 했지만 저자는 "가부장제의 완성자"이자 "새로운 노예제 사회로 나아갈 길을 연" 대처는 '여성 정치인'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반면 임신중절 합법화를 이뤄내고, 난민 100만 명을 수용한 메르켈은 '여성적 리더십'이 무엇인지 보여줬다고  말한다. 책은 줄곧 '여성 정치'는 단순히 생물학적 여성이 정치를 하는 것을 넘어서, 약자와 소수자를 먼저 고려하며 이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방향이라고 강조한다.   

<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동시에,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왜 '페미니즘'을 기초적인 정치 원리로 삼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21대 총선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

노혜경 (지은이),
개마고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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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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