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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아 행복했다" 100세 노인이 말하는 삶

[인터뷰] 한내장 만세소리 가득했던 1919년 태어난 신예균 옹

등록 2020.01.08 09:45수정 2020.01.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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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사람이
씨뿌리고 추수하며생활하는 것

그 자체가 행복

자식들이 잘 커서
나한테 잘하니 건강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감사
 

100년을 산다는 것. '백세시대'라 흔히 일컫는 지금이지만, 한 세기를 넘는 시간 동안 건강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누구나 누릴 수 없는 '천복'이다.

1919년 독립만세의 횃불 드높던 해에 태어나 지난해 상수(100세)를 지나 올해 101세가 되는 신예균 옹. 출생지 충남 예산군 고덕면 사리에서 지금까지 터전을 삼고 있는 신 옹은 "고덕에서 농사짓고 살던 때가 행복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16일, 신 옹이 그의 상수잔치를 찾은 이웃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 <무한정보> 김두레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밭을 일궜고, 사람들과 어울려 이곳저곳 신나게 돌아다니며 마을을 누비는 활달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젊었을 적 워낙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한창 까불 때는 꽹과리도 좀 두드렸지요. 마을 농악패를 만들어 신나게 다니곤 했어요"


함께 사는 아들 현규씨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더니 앨범을 꺼내 보인다. 사진 속 신 옹이 환한 얼굴로 장구를 치고 있다.
 
"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 놀러 다닌 기억이 많아요. 아버지가 재주도 많으시고 참 젊게 사신 것 같아요. 장수하시는 비결인 것 같기도 해요"


신 옹 본인은 장수비결에 대해 "밥 잘 먹고 사는 거지 뭐 있남. 자식들이 잘하니까 나도 탈 없이 잘 살아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과식하지 않고 적당히 먹는 것, 젊어서는 채소 위주로 먹고 지금은 고기를 잘 챙겨 먹는 것,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비결"이라고 아들 현규씨가 덧붙인다.

 

신 옹은 농악패를 이끌며 마을을 누비곤 했다. ⓒ 신예균

 
신 옹이 고덕 구만포가 막히기 전, 그곳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구만리(포구)에 물이 들어오던 때 가을이 되면 새우젓 배가 들어왔어요. 가끔 놀러 가 새우젓을 사 오고 그랬죠. 구만이랑 여기는 10리길 넘게 거리가 있으니 그렇게 자주는 못 다녔어요. 배 들어온다는 소식을 알기는 해도 직접 가는 건 어려웠죠. 그러니 구만리는 갈치고랭이 먹고, 사리는 보리죽 먹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구만포는 조선시대 삽교천 유역 수륙교통의 요지였다. 쌀을 포함한 농작물을 서울로 수송하고 새우젓, 소금 등을 실어오는 배들이 선착하는 포구로 번성했던 곳이다. 1979년 삽교천방조제가 축조돼 구만리 일대에 들어오던 갯물은 끊기고, 간척지가 되면서 예산 황금쌀의 주산지가 됐다. 조선 후기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통상압력의 수단으로 덕산 남연군묘를 도굴하기 위해 상선을 정박한 곳도 구만포다.

"20살 때 일본 좋은 곳에 간다는 모집이 있어 지원했어요. 예산역전 예일여관이라는 곳에서 하루 묵고 기차에 올라 일본에 도착하고 보니 탄광촌이었어요. 4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죠. 한참 까불 적에 갔으니 무서울 게 없었어요. 일본놈이 우리 기를 누르려고 하는데 나는 지려고 하지 않으니 항상 시비를 걸어왔어요. 그때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은 1천명 정도 있었어요. 먼저 도망 나온 사람도 있고 거기서 죽은 사람도 있고 그래요. 24살 때 집으로 돌아왔는데 고덕서도 강제노역을 많이 갔는지 비어있는 집이 많았어요"

집으로 돌아온 뒤 5개월 지나 해방이 됐고, 그날에는 집집마다 만세 부르는 소리가 가득했다고 한다. 윤봉길 의사와 동시대에, 가까운 지역에서 살았던 신 옹. 혹시 윤 의사에 대해 들은 얘기는 없을까?

"당연히 있지요. 덕산 둔리에 이승철이라는 사람이 나와 알고 지냈는데 그 사람이 윤봉길과 한문 공부를 같이 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할아버지는 그 당시 흔치 않았던 연애를 통해 혼인을 맺었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김기환 할머니와 60여년 넘는 세월 부부 연을 맺고 사는 동안 "행복했다"며 아내에게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진 속 젊었을 적 신예균 옹과 아내 김기환 여사. ⓒ 신예균

 
"어머니, 아버지 사이가 참 좋으셨어요. 금슬도 좋으셔서 50대 넘어서도 막둥이를 보셨죠. 집에 나갔다 오면 아기가 태어나 있고 그랬어요"

이번에도 아들 현규씨의 증언이다. 그는 15년 전 귀향해 아버지를 모시고 살며, 아버지의 농토를 아내와 함께 일구고 있다.

"결혼한 이후 예산으로 왔어요.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죠. 아내는 필리핀 사람인데, 시집오기 전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살아 그런지 부모님께 참 잘해요. 고마울 따름이죠. 아버지가 잔병도 전혀 없으시고 건강하셔서 감사해요. 또 항상 주변에 사는 가족들이 아버지 뵈러 자주 찾아와 힘이 많이 되고요. 지금처럼 건강히 장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현규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신 옹의 또 다른 장수비결이 보인다. 바로 가족사랑.

마지막으로 신 옹께 100년 인생동안 가장 행복한 때를 물었다.

"특별히 그런 것은 없어요. 고단한 시절도 있었지만 젊어서부터 농사를 지었으니, 농사짓는 사람이 씨뿌리고 추수하며 생활하는 것, 그 자체가 행복한 삶이에요. 또 자식들이 잘 커서 나한테도 잘하니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 거예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100세 #백세시대 #상수 #상수잔치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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