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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게 읽다 갑자기 '훅' 눈물이 올라왔다

[서평] 알츠하이머 엄마를 기록하다 '작별 일기'

등록 2020.01.09 11:03수정 2020.01.0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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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2016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 2012년 실버타운에 입주한 부모님. 엄마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2015년 9월부터 시작되고, 딸은 그 이듬해부터 기록한다. 기록은 2018년 11월 5일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이어진다. 약 천 일간의 기록이다.

<작별일기>는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세상을 떠난 엄마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여 써내려간 딸의 일기다. 생각만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신파' 분위기가 연상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이 책은 효심 가득한 딸의 감상 어린 효도일기가 아닌 한 인간의 쇠락을 기록한 노년과 죽음에 대한 보고서에 가깝다. '가슴이 미어진다'라든지 '슬프다'든지, 그런 표현은 일체 없다.
  

구술생애사 최현숙씨가 알츠하이머 엄마를 떠나보내기까지의 기록 <작별 일기> ⓒ 후마니타스

 
이 책의 저자이자 '엄마'의 딸인 최현숙씨는 냉철한 관찰자다. 엄마의 육신과 정신이 무너져가는 과정과 가족들의 심리를 차분하고 세세하게 기록한다. 혈육으로서는 이렇게 쓰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느 대목에서는 객관적이고 냉철하기까지 하다. '팩트'에 기초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의 진술.


엄마가 알츠하이머로 배변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책에서 지린내가 나는 듯 했고, 평생을 집착해 온 남편과 돈· 장남에 대한 편집된 기억으로 가족들을 달달 볶는 과정에서는 '노인네'의 고성과 생떼, 집요함에 나까지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그를 통해 '노년'과 '죽음'은 엄연한 사실이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엄중한 현실임을 직시하게 만든다.

쇠락해가는 부모의 몸과 마음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텐데, 그걸 복기하며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듯 글로 적어내려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마음일까. 아니, 작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기록해야 했을까. 한 인간의 말년과 죽음을 기록하는 것은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나.

저자의 엄마는 평생을 자식 키우기에 모든 걸 바친 사람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편 대신 다섯 남매를 키우기위해 평생 돈에 집착했고, 제법 큰 돈을 불렸다. 젊은 시절엔 사회 조직에 잠깐 몸을 담고 꿈도 품은 '열정적이고 똑똑한 청년'이었으나 결혼, 출산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팔십 평생의 삶이었으나 그 안에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모두 파편처럼 박혀있다. 그러기에 엄마의 삶은 기록되어야 한다.

한 노년을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

첫 번째는 한 인간의 삶을 기록했다는 것 자체로서의 가치다. 한 사람의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그 사람 개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사회 운동을 했든 안 했든간에 그 누구의 삶도 그와 떨어져 기술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도 이 점을 명료하게 밝혀놓았다. '모든 사적인 것들은 공공재'라고 작가는 말한다.
 
 '죽음에서 무엇을 알아내려고 나는 이토록 죽음을 노려보는가? 한 생명의 끝, 마땅하고 옳은 끝, 그것 말고 죽음은 대체 무엇인가? ...(중략)... 그러나 죽은 이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 그는 살아있다. 그녀가 들려준 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떠올려 재해석하며 나와 세상 안에 그녀의 생에 경험과 의미가 존재하고 활동하게 하는 것, 그것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남은 사람으로서 내가 할 유일한 역할이며 그녀를 향한 나의 애도이다.' - 328p.

두 번째, 사회적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기록으로서의 가치다. 한 노인의 돌봄을 둘러싼 사회적 비용과 그것의 의미, 노인들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우리 사회 그리고 그것을 향유하는 부자 노인들, 그 와중에 실속 챙기는 실버산업과 의료산업의 씁쓸한 세태, 홀로 쓸쓸히 고독사를 맞이하는 노인들과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극빈의 노인들. 노인의 돌봄에 있어 가족의 비중과 국가의 책무, 사회 공동체가 가져야 할 고민의 지점까지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인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돈의 소유와 분배의 공정함, 돈의 힘이 슬픔과 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 죽음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포기할 수 없다. 엄마와 아버지가 늙고 죽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남매들과 그 배우자들 사이의 화기애애함은 상당 부분 돈의 덕이다. 이 상황에 대해 나는 내부자로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외부자로서 공분과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나로서는 분열적이지만 그 경계에서 흔들리고자 한다. 자타의 늙어 죽어 감의 구조적 차이와 불공정에 대해, 어떤 태도와 선택이 공정을 향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한다' - 328p.
 
'모든 사적인 것들은 공공재'라는 작가의 기록 철학


어쩌면 사회 과학서적에 가까운 기록이지만, 기록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터져나왔다. 한 인간이 하루하루 소멸해가는 기록들을 적어 놓은 것 뿐인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화려한 영상과 울림이 있는 음악이 있는 극영화가 아닌, 음악도 자막도 없는 담담한 다큐멘터리를 볼 때 갑자기 훅 올라오는 것처럼. 분명 슬프다거나 비통했다는 감정은 아닌데 왜 눈물이 났는지(슬픈 미사여구따위는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도 그 눈물의 정체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아마도 '사실'이 주는 힘이 아니었을까.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죽음'이라는 팩트.

저자의 남매는 5남매인데, 저자를 빼고 모두들 재력도 있고 우애도 좋다. 엄마의 돈 덕분에 남매들이 큰소리 내지 않고 돌봄을 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쿨하게' 인정하지만 그렇다해도 남매간의 우애와 배려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이 책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였다. 한편으론 조바심도 들고, 미리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나같은 독자를 간파(?)한 듯, 저자는 사려깊은 한마디를 마지막에 덧붙인다.
 
 '혼자 혹은 너무 힘들게 부모를 보내고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면 이 책의 출간이 많이 조심스럽다. 돈이 없고 남매간 우애가 없어 많이 지쳐있을 당신에게, 외람되지만 괜찮다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고 말하고 싶다. "괜찮아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예요."... ' - 373p.
 
부모의 노년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일지 모르겠다. 부모를 다시 봐야하고, 그 안의 나를 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기록한다는 것은 그를 통해 나와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작업.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개인'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고민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개인의 삶이 비춰질 수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우리는 기록해야 할 것이다.

작별 일기 -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

최현숙 (지은이),
후마니타스, 2019


#작별 일기 #노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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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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