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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때문에... 100만원 빌려간 녀석을 잊기로 했다

[X의 오피스 살롱]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

등록 2020.01.11 15:51수정 2020.01.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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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몇 년 동안 여행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휴일도 못 보내던 후배가 휴양지로 떠났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 후배의 SNS에는 이국의 사진이 올라오지 않았다. 문득 궁금해진 나는 후배에게 메신저로 안부를 물었다.

"뭐 하느라 그 흔한 음식이나 바다 사진 하나 안 올리니?"

후배는 휴양지의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첫날 호핑투어를 다녀온 이후로 한쪽 귀가 안 들려서, 지금 현지 병원이야. 좀 살만해지니 뭐만 하면 아파. 억울해!"

격렬하게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덧 50대라는 고지가 멀지 않은 나이가 됐다. 인생에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고지가 참으로 많은데 말이다.

며칠 후 나도 후배에게 응급실에 누워 있는 내 사진을 보낼 기회가 왔다.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새벽에 코피가 멈추지 않아 응급실로 갔다. 휴양지에서의 병원행에 비견될 만한 최악의 크리스마스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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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코피가 멈추지 않아 응급실로 갔다. 휴양지에서의 병원행에 비견될 만한 최악의 크리스마스임이 분명하다. (사진은 tvN "SNL" 스틸컷) ⓒ tvN

 
코피는 며칠간 4~5시간 간격으로 흘렀다.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집 근처와 회사 근처의 이비인후과를 코를 부여잡은 채 누비고 다녔다. 차도가 없었다. 결국 종합병원을 찾았으나, 그곳에서도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스트레스, 건조한 날씨, 무너진 면역체계 등등의, 위로도 되지 않는 말들이 귓전을 맴돌았다.

다급한 마음에 한의원을 찾았다.

"평소에 얼굴이 열이 자주 오르시는 이유는 화가 다스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얼굴에 열이 오르니 안구건조증, 비염에 급기야 코피까지 멈추지 않는 겁니다. 원인을 치료해야지 증상을 치료한다고 해결이 될까요?"

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란 말인가? 멎어야 할 코피라 멈춘 것인지 한약 덕분인지 코피는 2019년과 함께 내 일상에서 사라졌다.

내가 사미승이었다

코피가 가고 새해가 왔다. 반강제적으로 차분하게 맞은 새해 첫날, 도올의 책 <스무 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를 펼쳤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의학서적도 아닌 책에서 코피 재발 방지 및 정신건강을 위한 비책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조선 시대에 태어난 명승 경허 스님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여름날, 스님과 어린 사미승이 길을 가던 중 개울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인과 마주쳤다. 여인은 당시 시대에 맞지 않는 놀라운 제안을 한다.

"스님이 저를 좀 업고 이 개울을 건너면 사례를 충분히 하겠습니다."

어린 사미승은 여인에게 당치 않은 소리라고 고함을 질렀으나, 여인은 은근히 스님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억지를 부렸다. 결국 경허 스님은 여인을 업고 개울을 건넜다. 무사히 개울을 건넌 여인이 돈을 꺼내려 하자 경허 스님이 큰 소리로 그녀를 꾸짖었다.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 돈 필요 없다. 당장 꺼지거라."

밤이 되어 스님과 사미승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사미승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계율을 제 눈앞에서 어기셨습니다. 어찌하여 그러신 겁니까? 스님의 대답을 꼭 들어야겠습니다."

"어허! 이놈! 나는 이미 그 여인을 개울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어찌하여 아직도 그 여인을 마음에 지고서 혼자 괴로워하느냐? 그 여인을 그만 마음 속에서 내려놓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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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감사했던 이들을 떠올리듯이, 나에게 상처 준 이들을 마지막으로 되새기며 그들을 개울가에 내려놓으련다. ⓒ pixabay

 
내가 바로 사미승이었다.

나는 이미 지나간 일,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마음에 지고서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던가. 또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후회하고, 생기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했다. 그 덕분에 내가 얻은 것은 화병과 스트레스뿐이었을 것이다.

새해에는 나의 분노 유발자들을 내 마음에서 내려놓아야겠다.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감사했던 이들을 떠올리듯이, 나에게 상처 준 이들을 마지막으로 되새기며 그들을 개울가에 내려놓으련다.

10년 전 피 같은 내 돈 100만 원을 갚지 않고 사라진 동호회 그 녀석, 내 결혼식 때 나보다 축의금 적게 내고 온 가족을 데리고 왔던 대학 후배, 아버지 장례식 때 가족에게 무례했던 친인척들. 내가 회사에서 잘나갈 때 껌처럼 붙어 있다가 좌천이 되자 안면을 몰수한 K과장, 회사의 군대화를 꿈꾸며 나를 몰아붙이던 '프라다를 입지 않는 악마' B임원.

남을 미워하는 것과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명상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겨본다.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혈압이나 당뇨 등의 증상 없이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건강은 등한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며 둘의 균형이 필요하다.

달리 생각해 보면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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