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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지 출마' 외친 황교안, 득일까 실일까?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김부겸, 노무현, 오세훈, 이회창... 험지 출마 네 가지 사례

등록 2020.01.10 07:16수정 2020.01.1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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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희망 대한민국 만들기 국민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험지 출마 선언'이 설왕설래를 낳고 있다. 1월 3일 그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장외집회에서 "올해 총선에서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겠다"며 "중진 의원들도 험한 길로 나가줬으면 한다"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그의 험지 출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수도권 험지'가 정치 1번지이자 출신 대학(성균관대) 소재지인 서울 종로구가 아닐까 추측하는 보도들도 나왔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낙연 총리가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로구를 피해 서울 용산구(황교안 고향)나 서울 강남구을, 서울 구로구을 등도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설운도의 노래 <나침반>에 나오는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라는 가사처럼 황교안 대표도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는 모양이다.

험지 출마는 정치인 자신에게는 도전적인 일이지만, 해당 지역 유권자들한테는 꼭 유쾌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정치 성향을 달리하는 유권자들한테는 도발적인 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내 반드시 당신들의 지지를 받아내겠다!'라거나 '뽑아줄 테냐 말 테냐?'라는 식의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안 그래도 당선 가능성이 낮은 데다가 도발적인 느낌마저 줄 수 있으므로 험지 출마는 매우 조심스러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신과 자기 당에 부정적인 해당 지역구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설득력 같은 게 있지 않고서는 안 될 일이다.

황교안 같은 거물급의 험지 출마는 유권자와 언론의 관심을 고조시켜 선거 흥행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로 인해 정치적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 놓일 수도 있다. 모험적인 일이자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 버텨서 이겼다, '삼수생' 신화 김부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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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의원 (자료사진) ⓒ 남소연


그런 갈림길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인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흔히 거론되지만, 성공적인 험지 출마의 전형적인 모델로는 아무래도 김부겸 사례가 더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58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하고 13·15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16·17·18대 때 경기도 군포에서 내리 세 번 당선된 김부겸은 2012년(54세) 19대 때 대구 수성구갑에 도전했다. 2000년(42세) 16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전과 후에는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출마한 그였다. 그런 그가 대구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19대 때 그는 이한구(새누리당, 52.8%)에 이어 2위로 낙선했다. 그의 득표율은 40.4%였다.


그는 2014년(56세) 지방선거에서는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도전했다. 하지만 권영진(새누리당, 56.0%)에 이어 40.3%로 2위였다.

김부겸은 3수 끝에 국회의원이 됐다. 13·15대에 낙선한 뒤 16대 때부터 내리 3번 당선됐다. 3수 하고 3선 한 것이다. 대구에 대한 도전도 3수 만에 성공했다. 19대 총선과 제6회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한 뒤 2016년 20대 총선 때 수성구갑에서 62.3%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민주당 후보가 험지 중의 험지인 대구에서 높은 득표율로 승리를 거뒀다.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선 소감문'에서 그는 "대구 시민이 새 역사를 쓰셨습니다"라면서 "대구에 야당 국회의원이 탄생했습니다. 수성구민이 승리하셨습니다"라고 감격을 분출했다.

김부겸의 승리는 험지 출마 성공의 전형적인 사례다. 2016년에 떨어졌어도 계속해서 도전했을 수 있지만, 끝내 당선되지 못했다면 지지자나 금력 같은 정치적 자원도 크게 감소하고 그 자신도 지쳐서 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성공했다. 2017년 대선 전에 대권 후보로 거론된 것은 그의 험지 출마가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둘] 졌지만 잘싸워서 대권까지,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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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화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김부겸은 험지 출마를 해서 결국 당선됐다. 그런데 험지 출마에서 떨어지고도 김부겸을 훨씬 초월하는 정치적 수확을 거둔 인물이 있다. 바로 노무현이다.

위에서 노무현을 성공적 험지 출마의 전형적인 모델로 거론하지 않은 것은 험지 출마의 결과로 그가 낙선했기 때문이다. 험지 출마에서 낙선하면 정치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인데, 그에게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그래서 그는 성공적인 험지 출마의 전형적인 사례는 아니다. 그는 '이례적인 사례'에 속한다.

42세 때인 1988년 13대 총선 때 부산동구에서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51.0%로 당선된 노무현은, 1992년(46세) 14대 총선 때 같은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32.3%로 2위를 기록했다. 통일민주당 총재인 김영삼의 뜻을 거역하고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에 동참하지 않은 결과였다.

노무현은 1995년(49세)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이번에도 역시 고배를 피할 수 없었다. 이때는 37.6%로 2위였다. 1996년(50세) 15대 총선 때는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겨봤지만, 17.7%에 그쳤다. 이명박(신한국당, 41.0%), 이종찬(새정치국민회의, 33.6%)에 이어 3위였다.

그런데 이명박이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사퇴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것이 노무현 재도약의 발판이 됐다. 그는 1998년 보궐선거에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정인봉(한나라당, 43.5%)을 제치고 54.4%로 당선됐다.

역사적인 험지출마는 2년 뒤인 2000년 16대 총선 때 있었다. 그는 민주당에 대한 반응이 뜨겁지 않아 당선 가능성이 극히 희소한 부산 북구·강서구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당연히 낙선이었다. 허태열(한나라당, 53.2%)에 이어 35.7%로 2위를 기록했다.

지역구도 타파를 외치며 용감하게 달려들었지만, 그는 보기 좋게 쓰러졌다. 그의 험지 출마는 실패였다. 그런데 다 끝난 그의 험지 출마를 세상이 성공으로 '둔갑'시켰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개표가 끝나기 전부터 그는 낙선을 예감하고 있었다.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그는 "역시 안 되는구나. 이제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이 막막했다"고 회고했다. 그런 마음으로 개표를 지켜봤던 것이다. 그런 뒤 "쓰라린 마음을 다독이며 잠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내 홈페이지 '노하우'를 찾아와 밤새 울분에 찬 글을 소나기처럼 쏟아놓았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어떤 당선자도 그렇게 뜨거운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지역구도를 타파한답시며 '바보처럼' 종로구를 버리고 험지로 나갔다가 낙선한 그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꼈다. 이것이 그가 낙선하고도 승리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자신을 바보라고 '비웃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2년 뒤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는 '실패했지만 성공한' 이례적인 험지 출마의 사례가 된다.

노무현·김부겸 사례는 둘 다 드문 경우에 속한다. 전형적이건 이례적이건 험지 출마로 득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험지 출마는 대개의 경우, 낙선과 정치적 상처로 이어진다. 이는 험지 출마에 도전하는 정치인들이 어딘가 무언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험지 출마의 특성상, 당연한 일이다.

[셋] 전쟁터에 무기 없이 나간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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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오세훈 후보가 지난 2016년 4월 13일 서울 종로구 선거 사무소에서 패배를 인정하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 당연한 사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들 수 있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시행해 화근을 자초하고 2011년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2016년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 지도부의 요청을 받고 서울 종로구에 험지 출마하게 됐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52.6%, 새누리당 오세훈 39.7%로 끝났다. 6선에 성공한 정세균은 이를 발판으로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 됐다.

험지 출마에서 당선되려면 정당 지지율의 열세를 극복하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을 뭔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오세훈은 그 5년 전에 무상급식 반대의 선봉이 되는 순간, 세상을 설득할 무기가 없는 정치인이 되어버렸다. 세계적으로 공유경제가 확산되고 보편적 복지가 일반화돼가는 추세 속에서 그는 색깔론이라는 구태의연한 관점을 내세워 무상급식에 저항했다.

그로 인해 서울시민들의 불신임을 받은 그가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서 험지 출마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서울시민에 대한 유쾌하지 못한 도전이었다. 그는 낙선을 피할 수 없었고, 노무현처럼 낙선하고도 역전할 수도 없었다.

[넷] '험지 고사'의 나비효과,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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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자료사진) ⓒ 이희훈


지금까지 소개한 세 가지 사례와 달리, 마지막으로 설명할 네 번째는 상당히 특이한 편에 속한다. 지금 소개할 주인공은 험지 출마 요청을 받았지만 고민 끝에 고사했다.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손실을 봤다.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상당한 손실이었다. 그 주인공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1998년 6월 18일자 <동아일보> 기사 '이회창 씨, 내달 종로 보선 압박감'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가 7·21 보궐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신상우·이한동·김덕룡 부총재 등은 8일 총재단 회의에서 이 명예총재가 서울 종로 보선에 출마, 당 차원에서 7월 재보선에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벌어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였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패했지만 여전히 파괴력을 보유한 이회창이 종로구에 출마해 바람을 일으켜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지도부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았다. "보선 출마의 득실을 계산하다 불출마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위 신문은 보도한다.

이 선거가 한나라당한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회창 회고록>에서 그는 "7월 21일의 국회의원 재보선이 닥치고 있었는데, 이 선거는 여야 모두 질 수 없는 선거였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이 져서는 안 되는 선거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출마하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인 1999년 서울 송파구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의 당선무효로 공석이 된 지역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런데 1998년 재보선에서 험지 출마 요구를 고사한 것은 그가 2002년 대선에서 또다시 패배하게 되는 인과관계의 한 고리를 이루게 됐다.

1988년 13대 총선 당선 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내리 3번 낙선한 노무현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선거가 바로 1998년 7·21 종로구 재보선이었다. 여기서 승리한 노무현은 2000년 16대 총선 때 부산 험지 출마에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하게 됐다.

만약 이회창이 종로구 험지 출마에 나서 혹시라도 승리를 거뒀다면, 노무현의 그 이후 인생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1998년 재보선으로 재도약하게 된 노무현이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에게 패배를 안겼으니, 이회창의 1998년 험지 출마 포기는 결과적으로 불이익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험지 출마를 않고도 손해를 본 사례에 포함된다.

험지 출마는 대개의 경우에 낙선으로 이어지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그 결과로 당선될 수도 있고, 아니면 낙선하고도 성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출마를 않고도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험지 출마 제안을 받았거나 이를 고려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고민과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황교안 대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침반> 가사 중에 "이쪽 저쪽 사방팔방 돌아보아도/ 어쩌다 닮은 사람 한두 명씩 오고갈 뿐/ 아 내가 찾는 그 사람은 어디 있나요"란 대목이 있다. 험지 출마 문제로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은 '내가 찾는 그 지역구는 어디 있나요'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황교안 대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험지출마 #황교안 #21대 총선 #노무현 #김부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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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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