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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악수가 '굿바이 악수'였다... 추미애의 숨막혔던 허허실실

장관 지명부터 검찰인사 단행까지, 한 달 요약하는 '세 장면'

등록 2020.01.09 13:30수정 2020.01.0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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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이 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과 악수하고 있다. 2020.1.3 ⓒ 연합뉴스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칼을 든 이가 목적을 감추고 웃음을 내보였을 뿐. 일종의 허허실실이었던 걸까.

지난 12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초반,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추 장관(당시 후보자)을 상대로 정공법을 선택했다.

박지원 : 현재 언론이나 국민들은 추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되면 즉각 검찰 인사를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해임할 거라고 그런다. 특히 대검 반부패부장,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 및 반부패 1·2·3·4부장, 서울동부지검장 등 현재 수사와 관련된 검사들에 대해 인사를 할 거라고 한다. 그런 인사 계획을 갖고 있나.
추미애 : 인사에 대해 그 시기나 대상에 대해 보고받은 바 없다.

: 취임해도 인사 시기가 아니니 인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받아들여도 되나.
: 장관은 제청권이 있을 뿐, 인사권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인사에 관해 발언하는 건 부적절하다.

박 의원의 질문은 이후에도 이어졌지만 추 장관의 답은 "답변 드리기 곤란하다", "제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로 일관됐다. "그렇다"도 아닌, "아니다"도 아닌 정치인 특유의 화법이었다. 결과적으로 박 의원 질문 속 예측은 윤 총장을 제외하고 그대로 이뤄졌거나, 앞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용들이었다(관련기사 : 6개월 만에 끝난 '윤석열 황금기'... 추다르크가 노린 것).

[장면 ① 인사청문회] 박지원 상대로 "판사처럼" 빨간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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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청문위원 맡은 박지원 "늘 믿는다" 박지원 대안신당(가칭) 의원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법 관련 질의를 하던 중 "저는 늘 (후보자의 약속을) 믿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 남소연

   

박지원 “윤석열 인사할 계획 있나?” 추미애 “제가 언급할 사안 아니다” ⓒ 유성호

 
다만 우연히 나온 두 사람의 대화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추 장관의 속내가 드러났다. 박 의원은 질문 도중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고) 장관에게 제청권이 있지만 검찰총장과 협의하게 돼 있다"라며 "그럴 계획이 있나"라고 물었다. 그런데 추 장관은 박 의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빨간펜'을 들이밀었다.

"법률상으론 (검찰총장과) 협의하는 게 아니고 의견을 듣는다고 돼 있다."

곧장 박 의원은 "판사처럼 하지 마라. 제가 틀려도 좀 이해를 해달라"라고 농담 섞은 핀잔을 건넸다. 박 의원 입장에선 '콩떡 같이 말하면 찰떡 같이 알아들으면 되지' 식의 농담을 던질 정도로, 큰 의미를 담은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추 장관에게 "검찰총장과의 협의한다"는 질문은 즉각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

좀 더 과거로 되돌아가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목요일인 12월 5일 추 장관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했고, 추 장관은 금요일과 주말을 지나 12월 9일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로 출근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한 달 전의 일이다.

[장면 ② 첫 출근] 환한 웃음, '윤석열 전화'에 대한 답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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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 후보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월 9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준법지원센터에 마련된 준비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며 청문회 준비단 언론홍보팀장 심재철 당시 서울남부지검 1차장 검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 이희훈

 
환하게 웃으며 차에서 내린 추 장관은 인사청문회 준비단 언론홍보팀장 자격으로 기다리고 있던 심재철 당시 남부지검 1차장 검사와 악수를 나눈 뒤 취재진 앞에 섰다(심 검사는 이번에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임명됐다. 해당 보직은 윤 총장 체제의 핵심 인물인 한동훈 검사가 맡고 있었는데, 한 검사는 이번에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임명됐다).   사흘 전 윤 총장이 추 장관에게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져 현장에선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왔다(관련기사 : 환한 웃음 속 첫 출근... 추미애 "윤석열과 관계 신경쓰지 마시라").

- 윤 총장 축하 전화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받았나.
"그냥 단순한 인사였다. 서로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에 뭐... 헌법과 법률에 의한 기관 간의 관계지, 개인 간의 관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어디까지 헌법과 법률에 위임 받은 권한을 상호 간에 존중하고 잘 행사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날 추 장관의 "헌법과 법률에 위임 받은 권한을 상호 간에 존중한다"는 말은, 이후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협의하는 게 아니고 의견을 듣는다"는 말의 좀 더 '부드러운 버전'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법무부와 검찰은 '검찰 인사에 있어서 검찰총장의 역할'을 두고 인사 단행 직전인 8일 늦은 오후까지 공방을 벌였다(관련기사 : 법무부-대검, 검찰 인사 두고 정면 충돌... 문자메시지 공방).

[장면 ③ 취임식] 애드리브, 박수 유도, 그리고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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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이 3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뒤편으로 취임식에 참석한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보인다. ⓒ 유성호

  

검찰 잘 들어라? 원고에 없던 추미애의 '애드리브' ⓒ 유성호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로의 첫 출근 때처럼, 추 장관은 환한 웃음을 자주 내보였다. 그 절정이 지난 3일 열린 장관 취임식이었다. 추 장관은 준비된 취임사 원고를 읽어 내려가면서도 곳곳에서 '애드리브'를 선보였다(관련기사 : 검찰 잘 들어라? 원고에 없던 추미애의 '애드리브').

특히 추 장관은 검찰개혁을 강조하면서 취임식에 참석한 검찰 관계자 및 법무부 직원들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어 "이제 박수치셨으니까 약속하신 것", "이 박수 소리는 다 녹음, 녹취가 됐기 때문에 꼭 지키셔야 한다"며 미소 띤 얼굴로 뼈있는 말을 내던지기도 했다. 그는 취임사 마무리 역시 원고에 없는 말로 채웠다.

"조직 내 특권의식을 배제해 개개인이 국민을 위한다는 긍지와 신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법무행정, 조직내부 쇄신을 통한 지원을 하도록 하겠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취임사를 마무리한 후 추 장관은 이례적으로 단상 아래로 내려가 검찰 고위 관계자 30여 명과 마주했다. 좌석 앞 세 줄을 차지하고 있던 검사 중 앞 두 줄과는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눴고, 뒤 한 줄과는 목례를 주고받았다. 윤대진·배성범·박찬호 검사 등과는 악수를, 한동훈 검사 등과는 목례를 나눴다. 검사들이 자신의 보직을 이야기하며 손을 내밀자, 추 장관은 밝은 미소로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닷새 뒤 추 장관은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그때 악수와 목례를 나눈 검사 대부분이 이번 인사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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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이 3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행사장을 나서자,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추 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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