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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애 보는 애'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들부터 10대 소녀들까지, 영화 '메리포핀스'를 보며 떠올린 사람들

등록 2020.01.15 20:01수정 2020.01.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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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던 우리집에는 늘 아이를 돌봐주는 분들이 계셨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지금처럼 방과후교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돌봄교실 같은 곳도 없었다. 그 시대 맞벌이 여성들은 자기 역량에 따라, 알음알음 아이들을 돌볼 사람을 구해야 했다.

'남의 손'에 내 자식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는지 그 당시에는 대부분 친척들에게 아이를 맡겼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잘 알지 못하는(지금도 잘 알지 못하는) '집안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들의 나이는 대략 60세 후반이나 70세 초 정도? 머리에 쪽을 지었고, 한복을 입었고, 담뱃잎을 말아서 피웠다. 기간을 정해놓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여건 되는 사람이 며칠 있다 가면, 또 며칠 후에는 여건 되는 다른 할머니가 왔다. 엄마는 아마도 그녀들이 집 안을 쓸고 닦고 치우고, 아이들에게 뭔가 영양가있는 음식을 해먹이길 원했을 테지만, 그런 걸 적극 부탁하기에 그녀들은 너무 낯설고 어렵고, 연로한 시댁 어른들이라는 존재였다.

남동생은 밥을 잘 안 먹어서 여러 할머니들을 애태웠는데, 그나마 양조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 밥을 제일 맛있게 먹었다. 할머니들이 먼저 자기 입에 넣어서 오물오물 씹은 다음 그걸 남동생에게 먹이곤 했다. 그러면 입 짧은 남동생은 잘도 받아 먹었다(요즘 같으면 어림없는 얘기다).

그렇게 우리집에는 늘 '잘 알지 못하는 집안 할머니들'이 드나들었다. 지금에 와서야 엄마가 자녀 양육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짐작해본다. 오죽했으면 사돈의 팔촌쯤 되는 집안 할머니들까지 수소문해서 '육아 품앗이' '동냥 육아'를 해야 했을까. 우리집은 낯선 할머니들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어수선한 정거장 같은 곳이었다.
 
어느날, 젊은 언니가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젊은 언니'가 왔다. 그 젊은 언니는 사촌언니였다. 당시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니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취업을 했는데, 아마 취업을 하기 전, 집에서 노느니 차라리 친척 삼촌네 애들이나 돌봐주라는 주변 분들의 추천(?)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왔던 것 같다. 자세한 속사정은 모른다. 언니를 명절날이나 집안 행사때 여러 사촌들과 함께 본 적은 있지만, 언니가 우리집에 와서 생활하는 건 처음이었다.

언니는 할머니들과 달랐다. 부지런하고 싹싹했고 잘 웃고 발랄했다. 지금도 그 언니를 떠올리면 잊히지 않는 것은 언니의 말하는 '입'이었다.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하는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언니의 입 모양을 마치 마술에 홀린 듯이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적당한 높낮이와 억양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우리 삼남매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지금 봐도 그럴 것 같다).
  

나에게도 메리포핀스가 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영화 <메리포핀스>(1964)중 한 장면 ⓒ 월트디즈니

   
그 당시, 엄마는 당시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구연동화 테이프 세트를 사주었는데 그 중에 <메리포핀스>가 있었다. 어렸을 때라 그 내용 자체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동풍이 불어오면 우산을 들고 날아온다는 메리포핀스 캐릭터는 어린 내 눈에 정말 멋졌고 근사했다. 검은 우산에 검은 모자, 큰 여행 가방을 들고 날아오는 모습에 왠지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바람이 불면 정말 어디선가 날아올 것 같았다.


주제가도 무척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곡은 '슈퍼칼리프라질리스틱익스피알리도셔스'라는 경쾌한 곡이다. 말문이 막혔을 때 이 희한한 단어를 외우면 말이 술술 나온다는 주문이다.

사촌언니랑 우리 삼남매는 함께 집안 청소를 하면서 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곤 했는데 빗자루와 먼지털이를 들고 온갖 괴상망측한 춤을 추고 까르르 울고 뒹굴면서 난리 법석을 떨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내 기억 속 메리포핀스는 말괄량이풍의 유쾌하고 발랄한 순정 만화같은 영화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사촌언니의 모습도 그랬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정확히 말하면 내가 엄마가 되고 난 후, 영화 <메리포핀스>를 다시 보았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슬펐다. 슬펐다기보다는 좀 짠한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영화처럼 낯설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사촌언니와 빗자루를 들고 춤을 췄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자식 셋을 잘 모르는 할머니들에게 맡겨두고 날마다 출근해야 했을 엄마 생각도 났다. 낯선 집에 와서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 손주 셋을 보며 담배를 피웠던 할머니들 생각도 났고(지금쯤 다 돌아가셨겠지), 부지런하고 싹싹했던 사촌언니도 떠올랐다. 지금쯤 환갑 즈음 되었을 것이다.

'식모' '애 보는 애'로 불렸던 그 많던 '경숙이들'

나중에 나처럼 부모가 1970~1980년대에 맞벌이를 했던 친구나 지인들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역시 대부분 친척이나 '애기 보는 언니'에 의해서 돌봄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식모'라고 부르기도 했고 '애 봐주는 애'로 불렸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앨범을 뒤적거리다 어떤 한 사진을 봤다. 흑백사진이었고 때는 1970년대 초반. 젊었던 시부모님 모습, 남편의 아기 시절 모습, 그리고 형제들의 어린 시절 모습, 그런데 한 구석에 당시 아기였던 남편을 안고 있는 한 젊은 여자의 모습이 있었다. 내가 이 여자는 누구냐고 물어보자 시어머니는 '경숙이'라고 했다. 당시, 살림도 도와주고 애기도 봐주는 '애'였다고 했다.

'경숙이'는 정말 애였다. 열일곱, 열여덟쯤 되어 보였다. 지금 같으면 친구들과 철없는 수다를 떨고 떡볶이를 먹고 휴대폰으로 SNS를 하며 낄낄댈 나이. '경숙이'는 약간은 어색하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서 있었다.

모든 '경숙이'가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주인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돌봤다. 주인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월급은 따로 받지 않았다. 나이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 나중에 결혼하거나 해서 그 집을 나갈 때 한 살림 장만해주는 것으로 그동안의 '월급'을 지불하는 식이었다.

시어머니는 경숙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경숙이가 얼마나 얌전하고 영리하며 손끝이 야무졌는지, 그에 반해 그 후에 왔던 '영숙이'는 겉멋만 들고 얼마나 덜렁거렸는지를 추억처럼 늘어놓으셨다.
 

영화 <메리포핀스>(1964년)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열여덟살 경숙이'들의 존재가 당시 엄마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그 당시에는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남의 집에 들어가서 살림해주고 애를 봐주던 '경숙이'같은 여자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결혼 전까지 일했는데, 거의 가족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족같은 존재로 대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허한 마음까지 채워주진 못했을지 모른다. 또래들이 다니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집안에서 살림을 해야만 했을 그 앳된 모습들.  그들에게도 분명 꿈이 있었을 텐데, 그 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 큰 딸이 올해 열아홉살이라는 걸 떠올리니, 작은 한숨과 함께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시어머니는 '경숙이'가 결혼한 후, 1~2년간은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어느 순간 그 마저도 끊겼다고 한다. 지금은 어디에서 사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남편은 아기 시절이라 경숙이 누나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사촌언니는 내가 고등학교 때 결혼했다. 워낙 싹싹하고 부지런하고 애교 있는 성격이라 잘 살거라 다들 믿었다. 그런데 결혼한 뒤, 아들을 낳고 남편과 헤어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여러 상황으로 언니 이름은 친척들 사이에서 금기였다.

나도 언니 소식이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는 걸로 궁금증을 달랬다. '언니가 아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줬다면 그 아들이 정말 좋아했을 텐데...'라는 아쉬움만 들었다. 10년 정도 흐른 뒤 언니 소식이 풍문처럼 들려왔다. 언니가 재혼을 해서 외국으로 갔다는 소식이었다. 마치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떠난 메리포핀스처럼.

결혼 후, 육아에 지치고 감당 안 되는 살림에 기절할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 참 어이없게도 '갑자기 동풍이 불어 메리포핀스가 날아와 준다면...' 하고 바랄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런 일 따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엔 정말 간절했다. 징징 대는 아이들을 달래고, 어지럽혀진 방안을 치우고, 무엇보다도 늘어지고 우울한 나 자신을 유쾌하게 치켜줄 사람. 아마 엄마에겐 그 사촌언니가, 시어머니에겐 '경숙이'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육아에 허덕이는 시기는 지났지만, 그럼에도 난 가끔 메리포핀스를 떠올린다. 곧 환갑이 될 사촌언니와 수많은 '경숙이'들도. 다들 어디에서 무얼하며 살까. 그녀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도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사촌 언니가 잘 살고 있는지, 혹시 풍문으로 들은 소식은 없는지 엄마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영화 <매리포핀스>

<메리포핀스>는 1964년 버전(줄리 앤드류스/딕 반 다이크 주연). 에밀리 블런트가 주연한 2019년 버전 <메리 포핀스 리턴즈>도 있다. <메리포핀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원작자와 월트디즈니의 이야기를 담은 2014년 작품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엠마톰슨, 톰 행크스 주연)도 있다. 세 작품 모두 매력적이고 나름의 개성이 있지만, 나에겐 1964년 버전이 단연 오리지널이다. 기분이 울적하고 지칠 때면 신나게 '슈퍼칼리프라질리스틱익스피알리도셔스' 주문을 불러보시라.
#메리포핀스 #줄리앤드류스 #어른을 위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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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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