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소외의 주범, 대구의 전쟁 유적들

[대구 완전 학습] 계성학교, 팔조령, 녹동서원, 달성토성, 신숭겸 유적지 등을 찾아서

등록 2020.01.17 19:09수정 2020.01.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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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이던 1954년 10월 31일 대구 계성학교에서 2군사령부가 찰성되었다(왼쪽 사진은 계성학교 아담스관 건물). 대신동 계성중학교 교내로 들어가 50계단 입구에서 왼쪽으로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길가에 '2군 창설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오른쪽 사진). ⓒ 정만진

 
2020년은 '6·25전쟁' 70주년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2019년에 그와 관련되는 행사들이 많이 열렸으니 2020년은 6·25전쟁 70주년을 되돌아보는 일들로 분주할 것이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38선에서 개전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된 전쟁의 이름이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 '종전'에 이르지 못한 이 전쟁을 흔히 'The Korean War'라 부른다. 우리말로 '한국 전쟁'이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싸움이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볼 때 1950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싸움은 Republic of Korea(대한민국)라는 국가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라는 두 국가가 싸웠으니 전쟁일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그에 따르는 섬들을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1950년 싸움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다. 이는 1861년 미국에서 일어난 남북전쟁을 'American Civil War'라고 부르는 것과 맥락이 같다. civil war는 국가 간 전쟁이 아니라 민간의(civil) 싸움(war), 즉 내전(內戰)이라는 뜻이다.

1950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은 전쟁인가, 아닌가

또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은 1950년만이 아니다. 중국‧일본‧조선이 뒤엉켜 싸운 임진왜란도 있고, 중국(청)과 조선이 싸운 병자호란도 있다. 유독 1950년의 전쟁만 'Korean War'라고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6·25전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6·25사변'이나 '6·25동란'으로 불러 왔는데, 이제는 남한(Republic of Korea)과 북한(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 둘 다 UN 가입국인 탓에 궁여지책으로 '6·25전쟁'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국제전이었던 1950년의 전쟁

6·25전쟁은 국제전이었다. 국제전은 세 나라 이상의 국가들이 서로 편을 나누어서 싸운 전쟁을 가리킨다. 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캐나다‧그리스‧벨기에‧룩셈부르크‧콜롬비아‧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필리핀‧터키‧타이‧남아프리카공화국‧에티오피아가 UN군으로서 남한을 도왔고, 중국과 소련(러시아)이 북한을 도왔다.
 

만촌동 소재 2군사령부 정문. 1950년 전쟁 당시 대구 계성학교에서 창립되었던 2군사령부는 지금도 대구에 그대로 남아 있다. ⓒ 정만진

 
우리나라에서 국제전이 벌어진 것도 1950년이 처음은 아니다. 1592년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중국(명)과 조선이 일본 군대에 대항하여 1598년까지 7년 동안 싸웠다. 7세기에는 고구려‧말갈‧백제‧일본의 남북 세력이 중국(당)‧신라의 동서 세력과 겨루었다.

전쟁터의 한복판이었던 대구

예나 지금이나 대구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은 부산 상륙 이후 평소 사신이 오갔던 영남대로를 중심 행군로로 삼아 서울과 평양까지 진격했다. 전세가 역전된 뒤 일본군은 다시 영남대로를 따라 부산으로 후퇴했는데, 명나라와 조선의 추격군도 그 길을 행군했다.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나 외국군은 대구를 거쳤다. 대구는 외국 군대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핵심 경로였던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대구는 군사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경상도의 중심으로 부각되었다. 1601년부터 1910년 조선이 망할 때까지 대구에는 경상도를 관할하는 경상감영이 줄곧 설치되었고, 당연히 경상도 최고위 관리인 경상감사가 머물렀다. 당시의 경상도는 지금의 부산‧대구‧울산‧경상북도‧경상남도 전체였고, 경상감사는 행정권만이 아니라 군사권까지 가진 막강한 권력자였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소서행장 군은 부산>밀양>청도를 거친 다음 팔조령을 넘어 대구로 진입했다. 흔히 경산을 거쳐 대구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팔조령을 넘는 길은 그 무렵 영남대로의 일부였다. 사진은 영남대로 팔조령 지점의 북봉대 터의 모습이다. ⓒ 정만진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을 말살하려 든 일제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킨 이래 대구를 전승(戰勝) 기원 성역지로 만들려 했다. 그들은 1905년 달성토성을 공원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의식 말살을 시도했다. 신라 시대 이래 국가 군사 시설이었던 달성토성(達城土城)에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를 잔뜩 심은 후 일본 국왕 소재지를 향해 절하는 요배전을 설치하고(1906년), 서울 남산에 이어 두 번째로 웅장한 신사도 세웠다(1914년).

불행 중 다행은 대구가 6·25전쟁을 비껴갔다는 사실이다. 북한군은 1950년 8월초 대구로 들어오는 북쪽 관문인 유학산까지 밀려왔지만 결국 그곳에서 물러갔다. 덕분에 대구는 문화‧교육‧경제‧정치 등 여러 측면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인간소외를 일으키는 최고 주범 전쟁을 피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피란을 온 문인들은 청포도 다방(북성로1가 81-3), 모나미 다방(북성로1가 31), 백조 다방(북성로1가 21-14) 등에 모여 전쟁문학을 꽃피우기도 했다.

인간의 비인간화를 유발하는 전쟁, 가난, 질병, 독재

인간소외를 유발하는 것으로는 전쟁 외에 질병, 가난, 독재, 관료주의, 차별 등을 더 들 수 있다. 너무 아프면 사람답게 살기 어렵고, 적빈(赤貧)도 비인간화를 일으킨다. 정치와 행정의 독재도 사람의 삶을 핍박하고, 온갖 차별 또한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킨다. 그런 점에서 좋은 정치는 인간사회에서 소외를 없애는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중국 고대 요임금이 길을 가다가 농부의 격양가(擊壤歌)를 듣고 기뻐했다는 고사는 시사점을 준다. 농부는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는데.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면서,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경지의 세상이 이상사회라고 노래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荷政猛於虎)는 공자의 지적과 겉으로는 정반대되는 표현이지만 속뜻은 같은 말이다.

전쟁이 없고, 질병‧가난‧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정치가와 관료들은 있는 나라, 언젠가는 현실에 되어 우리 앞에 놓일 '우리의 소원' 통일한국은 꼭 그런 나라이기를 소망해본다.

대구 대표 전쟁 유적들을 소개하면

대구에서 보는 대표 전쟁 흔적은 1954년 10월 31일 제2군 사령부가 창설되었던 계성학교이다. 중구 달성로 35(대신동 277-1) 교정 안으로 들어가 50계단 입구 왼쪽 오르막 중간쯤에 서면 2군 창설 기념 표지석과 만나게 된다. 지금도 2군사령부는 대구에 있다.
 

남구 이천동의 미군 부대 캠프헨리의 정문.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 80연대가 주둔했던 곳인데 해방 이후 미군부대가 그 자리에 대신 들어왔다. ⓒ 정만진

 
1919년 대구 만세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일본군 80연대 주둔지도 남구 이천동에 남아 있다. 1945년 이후 그곳은 미군 부대 'Camp Henry'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캠프 헨리는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9월 1일 경북 안동에서 전사한 프레드릭 중위(Frederick F. Henry)를 추모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구에서 장보고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그에 비해 왕건의 유적은 동구 지묘동의 신숭겸 유적지(기념물 1호), 시량리의 신숭겸 장군 유허비(문화재자료 46호), 앞산의 왕굴 ‧ 안일사 ‧ 은적사 ‧ 임휴사 등을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신숭겸이 발휘한 절묘한 지혜 덕분에 왕건이 살아났다는 뜻의 지묘동 등 왕건과 관련되는 설화가 지명(地名)으로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대구에 현전하는 왕건 관련 지명들
지묘동 : 신숭겸이 발휘한 절묘한 지혜 덕분에 왕건이 살아났다.
독좌암 : 왕건이 도망치던 중 혼자 앉아 있었던 바위
왕산 : 왕건이 도망칠 때 넘은 지묘동의 산
불로동 : 노련한 남자들은 전쟁에 동원된 탓에 없고 여자와 아이들만 있는 마을이라 하여 왕건이 동명을 붙였다.
연경동 : 선비들의 책 읽는 소리가 대단하다고 왕건이 상찬한 마을
무태 : 적과 대치 중이니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고 왕건이 훈시한 마을
시량리 : 실왕리失王里의 변음, 왕건이 피신 중 문득 사라진 마을
안심 : 도피 중 멀리 벗어났다 싶어 왕건이 마음을 놓은 마을
반야월 : 왕건이 도망치던 중 밤이 되어 반달이 뜬 곳에 이르렀다.
전탄(箭灘) : 견훤군과 왕건군이 맞서 싸우며 날린 화살이 강을 이룬 곳으로, 동화천의 최하류 지점
안일사 : 왕건이 편안하게 숨어 지냈던 앞산 사찰
은적사 : 앞산으로 들어온 왕건이 처음으로 몸을 숨겼던 사찰
왕굴 : 안일사와 은적사 뒤편의 왕건이 숨어 있었던 굴
임휴사 : 안일사를 떠난 왕건이 성주로 향하기 직전 잠시 쉬었던 사찰
둔산동 : 왕건의 군대가 주둔했던 마을
 

그런가 하면, 대구를 대표하는 임진왜란 유적으로는 팔조령(일본군이 청도에서 대구로 진격하며 넘은 고개), 망우공원의 임란 의병관 ‧ 임란 호국 영남 충의관 ‧ 홍의장군 곽재우 동상, 녹동서원(일본군 항장 김충선 제향 서원)과 한일 우호관, 부인사(공산의진 본부가 설치되었던 사찰), 동화사(1592년 당시 대구부사 휘하의 관군 주둔지, 사명대사의 영남 승병 본부) 등을 들 수 있다.

설 연휴에 혹 시간이 나면, 대구에 남아 있는 이런저런 전쟁 유적들을 답사해보는 것도 좋은 여가 선용이 될 듯하다. 그래서 답사 순서까지 정하고 주소를 밝혀서 소개해 본다.
 
대구 임진왜란 유적 답사 순서
01. 임란 의병관 : 효목동 1234-2 망우당공원
02. 임란 의병관 동쪽의 임란 호국 영남 충의단과 홍의장군 동상
03. 동호서당 : 동내동 1115-1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뒤
04. 용암산성, 옥천 : 도동 산35, 기념물 5호
05. 백원서원 : 도동 497 / 06. 동화사 : 도학동 35
07. 염불암 : 동화사에서 팔공산 동봉으로 등산
08. 비로봉(공산성) : 염불암에서 계속 등산
09. 삼성암 터 : 비로봉에서 서봉을 거쳐 부인사로 하산
10. 부인사 : 신무동 356-1, 기념물 3호 / 11. 삼충사 : 지묘동 871-1
12. 연경서원 : 복원 예정으로 답사 불가
13. 서계서원 : 서변동 881 / 14. 표절사 : 동변동 235
15. 압로정, 서산서원 터 : 검단동 1325
16. 구암서원 : 산격동 산79-1
17. 용담재 : 산격동 878 / 18. 매양서원 : 매천동 46
19. 병암서원 : 용산동 521, 와룡산
20. 용호서원 : 다사읍 서재리 693
21. 이강서원 : 다사읍 이천리 277
22. 금암서당 : 다사읍 매곡리 1102-1
23. 하목정 : 하빈면 하산리 1043-4, 유형문화재 36호
24. 현풍곽씨 12정려각 : 현풍면 지리 1348-2, 문화재자료 29호
25. 이양서원 : 현풍면 대리 907-4, 문화재자료 32호
26. 화산서원 : 구지면 화산리 898
27. 송담서원 : 구지면 도동리 234-2
28. 관수정 : 도동리 65, 문화재자료 36호
29. 홍의장군 묘소 : 구지면 대암리 182
30. 예연서원 : 유가면 가태리 539, 기념물 11호
31. 사효굴 : 유가면 양리 360 / 32. 인흥서원 : 화원읍 본리리 730
33. 낙동서원, 월곡역사박물관 : 상인동 660
34. 남지장사, 백련암 : 가창면 우록리 865
35. 녹동서원, 한일 우호관 : 우록리 585
36. 무동재 : 파동 581-129 / 37. 봉산서원, 상동 340-1
38. 청호서원 : 황금동 산79-4, 문화재자료 16호
39. 모명재 : 만촌2동 716 / 40. 고산서당, 성동 171
41. 망월산성 : 욱수동 419 불광사 왼쪽에서 등산 출발
* 각 답사지의 상세한 내용은 정만진 저 《대구 임진왜란 유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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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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