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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자영업자'가 남긴 유서

[관점] 문중원 기수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록 2020.01.14 08:09수정 2020.01.1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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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경마기수 고 문중원 유족 폭행 경찰 사과촉구 및 책임자 처벌 민주노총 기자회견'이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2005년 부산경남 경마장이 개장한 이래 7명의 말관리사와 기수들이 연쇄적으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나라에서 경마장은 서울, 부산경남, 제주에 있고 모두 공기업인 한국마사회가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부산경남 경마장에서만 죽음이 이어지는 것일까? 특정 장소에서 연쇄적인 죽음, 그것도 자살이라는 형식의 죽음이 이어질 때 그 원인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우울증과 같은 개인적 취약함으로 돌리기 전에 한번쯤 그 장소의 구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기수의 유서를 보면, 마사회-마주-조교사-기수로 내려가는 불평등한 지배력 아래 기수가 놓여 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는 마사회와 마주-기수의 관계를 "스포츠의 감독과 선수가 구단과 계약을 맺는 것"과 같으며 '상호 계약관계'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사회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기수가 '자영업자' 신분이라는 데에 있다. 다른 스포츠 선수와 같이 기수 역시 자영업자일 뿐이고, 이에 근거해 구단주 역할을 하는 마주와 개인 트레이너 역할을 하는 조교사와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사회는 일본의 프로야구나 미국의 NBA, 유럽 축구 선수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선수이자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야기 하지 않았다.

마사회의 주장과 달리 기수들은 "우리는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하청들에 불과해요"라고 말한다. 이런 기수들에게 마사회와의 관계는 매끈한 계약서 아래서 작동한다.

어떤 사건의 구조적인 원인을 따진다는 것은 표면적인 '계약' 이면에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관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사회는 조교사와 기수를 표면상 자유로운 신분으로 만들면서 이들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해왔다.

1993년까지 마사회가 직접 고용한 기수들은 일찌감치 자영업자 신분으로 외주화 되었다. 하청업체로 외주화한 것이 아니라 개인신분으로 외주화하면서 이들의 노동자성을 지웠다.

오늘날 기업의 지배력은 전통적인 갑을관계를 해체하면서 형성된다. 마사회가 이야기하는 '갑과 갑' - 자유로운 주체들 간의 상호계약은 전통적인 노사관계를 기형적인 갑질구조로 대체한다. 이러한 고용구조에서 노동자들은 더욱 위험에 내몰리게 된다. 마사회가 부산경남 경마장에 도입한 '선진경마' 모델은 이러한 개인화된 노동 위에 극단적인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7명의 죽음은 이러한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했다.


더구나 한국마사회는 공기업이다. 공기업에서 공공성이 사라지면 독점과 폐쇄성만 남는다. 독점은 독단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토양이 된다. 마사회는 7명의 연쇄적인 죽음에 대해 '상호간의 계약'을 근거로 공적인 책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에도 주말마다 마사회가 주최하는 경주는 계속되고 있고, 거액의 상금이 걸린 합법적인 도박에 관중들은 열광하고 있다. 마사회의 독점적 성격 아래 거대해진 도박산업은 기수들을 '위장된 자영업자' 신분으로 만드는 것과 함께 성장했다. 이들의 고립된 노동에 기반해 극단적인 경쟁은 도박과 맞물려 마사회에 매년 8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려주고 있다.

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처럼 문중원 기수의 죽음에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구조적 원인이 자리한다. 외주화는 노동자에게 고립을 의미한다. 위험은 물리적인 기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제된 삶 그 자체에 있다.

문중원 기수는 '위장된 자영업자'로서의 고립감, 극단적인 경쟁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겪는 무력감에 고통스러워했다. 고립은 자유로운 개인의 고독과 다르다. 사회적인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는 두려움이 공포가 되었을 때, 부당한 갑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함이 온몸을 에워쌀 때, 기수 문중원은 새벽에 유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유서마저 고립된 메시지, 전달되지 못하는 메시지로 남아야 할까.
덧붙이는 글 전주희 기자는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입니다.
#마사회 #문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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