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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엔 '수위조절', 남한엔 '무응답'... 김계관 담화의 의미

[이슈분석] 북미 물밑접촉 공식 확인... 남한에는 '태도 변화' 요구?

등록 2020.01.13 18:57수정 2020.01.1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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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19년 12월 28일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열어 '국가 건설'과 '국방 건설'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를 토의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 연합뉴스

 
"조미 사이에 다시 대화가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북한이 북미협상의 기준을 재차 못 박았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의 담화를 통해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이른바 '핫라인'이 있다는 점도 과시했다. 반면,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제안한 '남북협력 방안'에는 침묵했다.

김 고문의 담화는 올해 1월 1일 전원회의 결정서를 공개한 이후 북한이 처음으로 내놓은 대외 메시지다. 그는 11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북미 대화가 재개되려면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제재와 핵시설을 바꾸자고 제안한 것과 같은 협상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이는 북한의 북미협상 조건이 2019년 10월 5일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한 제안으로 변동했다는 점을 재확인한 발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당시 북미 실무협상 후 북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회견을 통해 미국에 "(북한의) 안전 위협, 발전 저해 모든 장애물 제거"를 요구했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이 무엇을 장애물로 생각하는지 구체화해 언급했다. 지난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5차 전원회의에서다. 당시 김 위원장은 "미국이 시간벌기를 하며 대화와 체제 압살의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미군사연습과 첨단무기 도입, 추가 제재를 북한을 '압살하려는 야망'의 대표적 조치라고 꼬집었다.

결국 김 고문은 북한의 요구가 한미 군사연습 중단과 제재 완화·해제 관련돼 있다는 점을 드러낸 셈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하노이 이후부터 일관된 요구를 하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 상응조치를 보여줄 때라는 건데 미국이 답이 없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북미 물밑 협상 하고 있어"


북한은 담화에서 미국과 협상의 문을 열어뒀지만, 남한에는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먼저, 김 고문은 북미의 '소통 통로'가 열려 있다는 점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우호적인 관계'라는 점도 내세웠다.

그는 '특별한 연락 통로'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일을 축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받았다고 했다. '군사적 도발'을 언급하지 않아 미국을 자극할 여지를 줄였다.

김종욱 동국대 연구교수(북한학)는 이번 담화에서 '북미협상의 재개' 가능성을 엿봤다. 그는 "담화는 미국에 우호적이다, 북한이 협상의 기본 조건을 재확인하며 가이드라인을 제안했다"라며 "(군사적 도발 등) 미국이 생각할 때 위협적인 행위를 한다는 말도 없다, 이른바 나쁜짓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준 셈"이라고 짚었다.

북한이 밝힌 '소통 통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톡홀름 실무협상 이후 공식적으로 북미가 만나거나 협상을 이어가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물밑 협상은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통로'를 북미 간 '뉴욕 채널'로 봤다. 미국 국무부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있는 뉴욕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 채널은 별도의 주재 '연락사무소'를 두지 않는 북미 사이에서 사실상 연락사무소의 역할을 해왔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이 소통하고 있다는 걸 공식확인 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라며 "북미가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북한, 문 대통령 제안에 '무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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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발표 입장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신년사 발표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은 남한을 향해 '냉기'가 가득한 발언을 했다. 북미관계에 남쪽이 끼어들지 말라는 요구도 분명히 했다. 이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반복해서 하는 발언이다. 2019년 4월 12일에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을 "오지랖 넓은 중재자"로 지칭하며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행동하라고 요구했다.

김 고문은 정부가 북미 관계개선에서 중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과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은 조미 수뇌(정상)들 사이에 특별한 연락 통로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라며, "설레발"이자 "주제넘은 일이니 자중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방미를 마치고 귀국한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생일 축하) 메시지를 문재인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에게 꼭 좀 전달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라는 것을 빈정거린 셈이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한 화답은 없었다. 신년사에서(1월 7일)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 답방 ▲접경지 협력과 체육교류 ▲비무장지대 세계문화유산 공동 등재 등의 남북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북한의 '무응답'을 정부의 제안에 북한이 '관심 없다'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김 교수는 "북한은 남한이 미국보다 남북관계를 우선하는 '우리민족끼리'의 노선을 명확히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남북 관계에 나설 생각이 있다"라면서 "남한이 북한의 요구에 답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가 복원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구 교수는 "북한이 남한에 선긋기를 했지만 남북관계에 말을 아끼며 여지를 남겼다"라고 봤다. 그는 "북한은 남한이 나서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고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금지할 자신이 있는지 묻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부가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북한과의 요구에 답하면, 북한 역시 남북 관계를 재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담화가 '김계관 고문'의 입을 통해 전달됐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고문은 지난해 10월 북미 정상의 '친분'을 강조했다. 당시 그는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마련한다면 북미 3차 정상회담도 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 고문이 메신저 역할을 한 건 북한이 '수위조절'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북미 핵 협상의 산증인이기는 하지만 현재 북미 비핵화협상의 정책을 결정하는 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 고문은 1992년 2월 뉴욕에서 북미 고위급 회담을 수행했고,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관련 논의에 등장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시작된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최용환 실장은 "김계관은 북미 협상이 재개되거나 북미 관계가 복원됐을 때 전면에 나설 인물이 아니다, (미국을 향해) 센 발언을 해도 책임질 일 없는 사람"이라며 "북한도 이런 상황을 고려하고 김계관을 내세워 담화를 발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정부는 김 고문의 담화에 즉답을 피했다. 통일부는 13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김계관 외무성 고문 담화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해드릴 내용은 없다"라면서도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남북이 상대방을 존중하며 서로 지켜야 할 것은 지켜나가는 노력을 해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계관 #문재인 대통령 #북한 #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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