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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노무현, 그리고 1월 13일

[대한민국 검찰실록 15] 검경 수사권 조정의 역사적 의의

등록 2020.01.15 08:16수정 2020.01.15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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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법 반대1인, 기권1인은 누구?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166인에 찬성 164인, 반대 1인, 기권 1인으로 통과됐다. 표결 결과가 본회의장 전광판에 찬성은 초록색, 반대는 빨강색, 기권은 노란색 동그라미로 투표한 의원 이름 옆에 각각 표시돼 있다. 새로운보수당 이혜훈(서울 서초구갑) 의원은 '반대'를, 바른미래당 이상돈(비례대표) 의원은 '기권'한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 남소연

 
검찰개혁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단락됐다. 지난해 12월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이 13일 저녁 국회를 통과했다.

자유한국당의 불참 속에 형소법 개정안은 재적의원 295명 중 167명이 참석한 가운데 165명 찬성,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의결됐다. 검찰청법 개정안은 166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64, 반대 1, 기권 1로 통과됐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개혁 법안들에 대한 한국당의 저항력은 갈수록 약해졌다. 지난해 12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 때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동안 가슴을 움켜잡고 있어야 할 정도로 한국당의 몸싸움이 대단했다. 3일 뒤 공수처법 통과 때는 한국당이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다가 법안 표결 때는 퇴장했다. 이번 수사권 조정안 통과 때는 불참했다.

이 결과 일부 수사권 주체가 검찰에서 경찰로 바뀌게 됐다.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나 경찰관 범죄를 제외한 나머지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아닌 경찰이 수사권을 갖게 된다.

앞으로는 검사가 수사에 원칙상 개입할 수 없게 된다. 단, 경찰 수사가 법령에 위반되거나 인권을 침해하거나 권한 남용에 해당하거나 혹은 고소인의 이의신청이 있는 경우 등에는 검사가 예외적으로 관여할 수 있게 된다.

경찰과 검찰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신념에 찬 경찰관이 거악을 척결할 목적으로 의욕적으로 수사하는 도중에, 갑자기 현실 타협적인 검사가 등장해 제동을 거는 장면이다. 앞으로는 경찰관이 법령 위반, 인권 침해, 권한 남용 등을 저지르지 않는 한, 검사들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수사권 조정의 결과로, 검사들은 본연의 모습인 법률가로 되돌아가 법률 적용과 재판 준비에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경찰 수사를 지휘하지는 못하지만 견제할 수는 있으므로, 인권 감시관이나 호민관(평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고대 로마의 관직)과 같은 이미지를 가질 기회도 갖게 된다. 한마디로, '인기 검사', '국민 검사'가 등장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앞으로는 경찰이 인권을 침해하는 현장에 검사들이 등장해 제동을 거는 장면이 드라마에 많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또 이번 개혁을 통해, 검사들은 수사관의 모습을 많이 지우고 법관이나 변호사의 모습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게 됐다. 좀더 친숙한 법률가 집단으로서 국민과 함께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개혁이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여주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국민의 힘으로 이룬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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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검찰청앞 시민들 분노 폭발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2019.9.28 ⓒ 권우성


검경 수사권 조정은 해방 직후부터 논의됐던 문제다. 검찰 권력이 과도하다는 인식은 그 시절에도 있었다. 그처럼 오래된 적폐에 대해 본격 개혁을 시도했던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4년에 그는 검경수사권 조정 협의체를 구성해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검찰의 반대로 무산됐고, 결과적으로 그는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그렇게 무산됐던 일이 2020년에 비로소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노무현의 비참한 최후를 아파하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이번 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 큰 원동력은 지난 가을부터 토요일마다 촛불을 들고 검찰개혁을 외친 국민에게서 나왔다. 촛불집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SNS로 응원을 보낸 수많은 국민도 함께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국민이 그런 역량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4+1 협의체(민주·바른미래·정의·민주평화+대안신당)가 한국당과 검찰, 수구 언론의 반발 앞에서 견결한 공조를 유지하며 개혁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검찰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문제 등을 무기로 로비를 벌이던 검찰 조직이 이번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국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촛불을 들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에 이어 검찰개혁까지 이뤄낸 촛불의 힘을 절감한다. 숨만 내쉬어도 훅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태양보다 뜨거운 한국 국민들의 촛불이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데 이어 검찰 내 적폐세력까지 누르고 얻은 성과다. 국민보다는 보수 권력에 기대왔던 검찰 상층부의 정치 검찰을 도태시키게 될 이번 사건은 국가권력이 소수 집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복무하도록 하는 촉매제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하나의 의미, 일제 식민 잔재 극복

이번 개혁이 띠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한국 현대사의 근원적 적폐인 식민 지배, 그 흔적 중 하나를 지우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조선왕조를 비롯한 역대 왕조들이 역사에 끼친 해악도 적지 않지만, 한국 현대사의 온갖 해악은 일제 식민지배에서 기인한 측면이 매우 크다. 일본제국주의는 이 땅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복무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것이 한국 현대사의 근원적 모순을 잉태했다. 그런 식민지배자들에게 부역하거나 그들을 묵인하며 이익을 누려온 보수세력은 8·15 해방 뒤에도 계속해서 권세를 누리며 식민 유산을 유지해왔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지금까지도 그 모순의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검찰개혁은 그 같은 식민잔재 중 하나를 제거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땅의 검찰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막강해진 것은 일제강점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자국 내에서보다 한국에서 강력한 검찰 제도를 운영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식민지 한국인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일원화된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독립운동과 민중 저항을 억압했다. 검사들 자신이 강해서 검찰권이 강해진 게 아니라,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의 의지와 비호 때문에 이들이 강해졌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형사 재판 ⓒ <서울2천년사> 27권, 국가기록원

 
2009년에 <내일을 여는 역사> 제36호에 실린 문준영 부산대 교수의 논문 '한국적 검찰제도의 형성'은 "한국의 검찰은 비교법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중앙집권화되어 있고 수사 중심의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다"라면서 "이 점 역시 한국의 검찰이 1945년 이전 일본의 제도와 이론, 의식을 계승한 것"이라고 한 뒤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에 의해 식민지에 이식된 검찰제도는 식민지의 치안 유지를 위해 국가기관의 권력을 극도로 강화하고 기관 사이에 협력적 관계를 설정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따라서 일본의 제도보다도 훨씬 더 왜곡된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다.
-  한국적 검찰제도의 형성
 
식민지 검찰이 일본 검찰보다 훨씬 더 왜곡됐다는 점은 송해은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직무대리가 <저스티스> 1994년 12월호에 기고한 논문 '한국 검찰의 연혁에 관한 고찰'에서도 확인된다. 아래 글 속의 '명치'는 메이지 일왕(천황)의 연호가 사용된 1868~1912년을 가리킨다.
 
1912년의 조선형사령은 당시 일본에서 시행 중이던 형법 등 실체적 형벌법규 11종과 형사절차에 관한 소위 명치(明治) 형사소송법 1종을 의용하도록 하는 한편, 많은 예외규정을 두고 있었다.
- 한국 검찰의 연혁에 관한 고찰
 
식민지 검찰이 일본 검찰보다 강한 권력을 갖도록 한 그 '많은 예외규정' 가운데 하나는 조선형사령 제12조다. 내용은 이렇다.
 
검사는 현행범이 아닌 사건이라도 수사의 결과로 급속한 처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때는 공소제기 전에 한하여 영장을 발부하여 검증·수색·물건차압을 하고 피고인·증인을 신문하거나 또는 감정을 명할 수 있다.
- 한국 검찰의 연혁에 관한 고찰
 
이 조문 속의 검사는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는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발부한다. '영장을 발부하여'의 주어가 판사가 아니라 검사다. 현행범 사건이 아닐지라도 검사가 '급속한 처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런 권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검찰이 수사권을 갖는 정도가 아니라 영장 발부 권한까지도 임의로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백년만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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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1일 새벽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2009.5.1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처럼 식민지 검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 같은 권력이 다소 완화된 형태로 대한민국 검사들에게도 상속되었다. 이 막강한 권력을 검사들은 평범한 국민들에게 휘두르며 백 년이 넘도록 자리를 유지해 왔다.

일제 총독부는 물론이고 해방 이후의 보수 정권들도 검찰 권력이 과도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방치한 이유 중 하나는 강력한 검찰이 국민 통제에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식민지 시절에 뿌리를 내린 검찰의 과잉 권력이 백 년을 좀 넘긴 2020년 1월, 역사의 저편으로 넘어가게 됐다. 노무현을 비롯한 개혁가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그 과제가 4개월간의 촛불집회로 '비교적 싱겁게' 역사적인 실현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검찰개혁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 그렇지만, 지금 정도의 성과만으로도 한국사의 승리이자 한국 국민의 승리라고 평가해도 과하지 않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검찰개혁 #일제 식민잔재 #수사지휘권 #검찰 수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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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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