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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수업에서... "너는 마녀상이야, 남자 잡아먹을 상"

[여자의 소설] 임솔아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속 작품 '추앙'

등록 2020.01.22 09:25수정 2020.01.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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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설가가 통찰력 있게 그려낸 여성 서사를 통해 여성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여성에게 의미 있는,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여성 서사가 우리 삶에 스며들길 기대합니다.[기자말]
몇 년 전, 책을 같이 내기로 한 공저자들과 처음으로 만났다(책은 무산됐다). 첫 만남 이후 우리는 여러 번 더 만났다. 글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서인지 우린 비교적 쉽게 마음을 열었고, 술자리도 자주 가졌다.

지방에서 인문학 관련 일을 하면서 시도 쓰고 소설도 쓴다는 J는 유독 나를 편하게 대했다. J는 사람 좋은 표정으로 이런저런 얘길 들려주길 좋아했는데, 그날은 이야기를 통해 내게 어떤 깨달음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시작됐다. 어떤 위대한 스님이 제자와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스님은 제자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리석은 제자에게 깨달음을 줘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스님이 취한 행동이라는 게, 이렇듯 놀랍다. 논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농사를 짓던 한 여인의 신체 부위 만지기. 

지금은 스님이 제자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기 위해 그런 극악한 행동을 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면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스님이 논에서 한 행동을 듣고는 바로 J의 말을 뚝 잘라버렸다. 여성의 몸을 도구화한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있기 쉽지 않으니 그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J는 본인의 말을 내가 뚝 끊었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지, 몇 시간 후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의 말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글을 쓰는 사람인 내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해 실망스럽다는 것이 하나, 어떤 사안을 볼 땐 큰 틀에서 봐야지 지엽적인 것에 연연하면 안 된다는 것이 둘이었다.

J는 그 위대한 스님의 행보에서 어떤 예술성을 본 듯했고, 또 타인의 신체를 침범한 행위를 지엽적인 것으로 본 듯한데,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은 있었다. 

"예술이 뭐 대수라고요, 선생님. 그러면 '나 예술합네' 하는 사람은 아무나 막 만지고 다녀도 되는 건가요? 선생님, 잘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이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해서 선생님 신체를 허락 없이 만지작만지작한다고 해 봐요. 선생님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그렇게 해서 얻은 깨달음에 선생님은 감탄이든 감동이든 인생을 바꿀 결심이든 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다음에 만나서도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 끝내는 말싸움까지 했다. 문단 내 성폭력에 관해 이야기하던 끝이었다. 그는 여성 문인들을 성추행한 한 노시인을 두둔하며 예술을 위해선 '그 정도쯤은' 희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인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철저히 무심한 것이 이해도 안 되고 답답해서 그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았지만, 나는 일 년에 몇 번쯤 그날의 그 말싸움을 기억하곤 한다.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서라면 

그러면서 생각한다. 만약 J가 J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그가 내 인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K나 L이었다면, 나는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히 다 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 정도로까지 솔직히 다 말할 순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를 악물고 그 시간을 조용히 버텨내거나, 그가 위대한 스님이 어쩌고 저쩌고 할 땐 동의하는 척하며 고개만 무의미하게 끄덕거렸을 수도 있다. 

임솔아 작가의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서 소설 '추앙' 속 정원이 그랬다. 정원은 교수 A의 억지스러운 수업 방식이 의심스러워도 의심하길 주저했고, 강사 B가 술자리에서 "따먹고 싶었다", "따먹었으면 먹고 버렸을 거다", "죽어버려라" 등등의 말을 해도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진 자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자의 대화는 평등할 수 없었다. 정원은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고, 일방적으로 수긍해야 했다. 정원은 매번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했고, 내 생각은 다르다는 말이 안에서 쌓여갈수록 그것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꼈다."

소설 '추앙'은 임솔아 소설가가 대학생 시절 겪은 경험을 소설화한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제가 용기 내어 적은 첫 글"이라고 밝힌 이 소설에서 소설가는 정원의 입을 빌어 이 소설을 쓴 이유를 밝힌다. "개인적 경험이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B강사가 정원을 성추행한 그 순간에 집중하기보다, 성추행을 가능하게 했던 '문단 내의 어떤 확고한 분위기'를 전한다. 

그 분위기란, '시적 허용'과 이를 '추앙'하는 이들이 정교하게 맞붙어 돌아가는 분위기를 말한다. 보통 '시적 허용'은 섬세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 시에서만 특별히 허용되는 비문법성을 말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시인이 자유를 위해 일상의 문법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책표지 ⓒ 문학동네


실제로 소설 속 K교수와 B강사는 일상에서의 문법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남들이 하지 않는 행위를 해야만, 남들이 하지 말라는 행위를 해야만 시심을 얻게 된다는 듯, 정말 '별 짓'을 다한다. 

유명 시인이면서 대학 강사인 B가 정원을 성추행하기 전에 한 행동도 시 한 줄 써보지 않은 내 눈엔 그저 개그 프로의 한 장면 같기만 하다. 술집 주방에서 양파를 가져와 본인 포함 학생들에게 먹이는 B. B는 양파를 씹으며 눈물을 흘렸고, 정원도 어쩔 수 없이 양파를 먹고는 눈물을 흘렸다. 정원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B는 "네가 시인이다"며 정원을 치켜세웠고, 이후 그는 그녀를 성추행했다.  

정원은 "B강사가 취한 행동의 저변에는 자신이 '시적 영혼'의 소유자라는 합리화가 깔려 있었다"고 말한다. 시적 영혼의 소유자라면 필시 금기를 깨야 하고 그 금기를 깨는 밑바탕엔 자유를 향한 열망이 있다는 것. 시인이라면 삶이 강제하는 문법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그 너머로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시인이라면 순간의 충동에 의미를 부여해 앞뒤 보지 말고 내질러야 한다는 것. 순간의 충동이 눈 앞에 앉아 있는 여성 제자를 만지라고 하면, 정말이지 앞 뒤 보지 말고 만져야 한다는 것. 아마, B강사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을 것이다. 

그래서 정원은 '시적 허용'이라는 말이 싫어졌다. 
 
"이제 '시적 허용'이라는 말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말이 어떤 부당함을 시적 특권으로 포장하는 듯했다. 그 특권을 누리는 자들은 그것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표현하고는 했지만, 그들의 디오니소스적인 면모는 타자, 그중에서도 유독 약자 앞에서만 강하게 분출되는 특징이 있었다."

여전한 문단 내 성폭력 

아마 몇 년 전에 나와 다툰 J 역시 '시적 허용' 같은 말에 경도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예술의 이름으로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된다는 듯 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들은 정원의 말처럼 '강약약강'인 경우가 많다. 강자 앞에선 허용하지 않는 '시적 허용'을 약자 앞에서만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에겐 여성 또한 약자다. 

김현 시인이 쓴 산문집 <질문 있습니다>를 읽고 나서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시적 허용'을 허용하며 사는지 가늠이 안 갈 정도였다. 김현 시인은 이 책에서 문단 내 남성 시인들이 여성 시인들에게 행하는 성폭력을 폭로한다.

그의 짧은 글을 읽다 보면 과연 이런 일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데 경악하게 된다. 지금 내가 읽는 글 속의 남성 시인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에 활동한 시인이 아닌, 80년대생 시인의 눈에 포착된 시인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날 정도다.

여자 후배에게 맥주를 따르게 해 놓고 가득 따르지 않자 "자신의 바지 앞섶에 컵을 가져가더니 성기를 잡고 오줌 싸는 시늉"을 한 시인이 누구일지 나는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다.

이 글에서 김현 시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폭력을 자행하는 남성 시인들을 남자 1, 남자 2로 부르다가 이내 숫자 3,4,5로 부르고, 그 숫자는 늘고 늘어 13까지 갔다. 어쩌면 1부터 13까지 숫자 중에 소설 속 정원을 성추행한 B강사 또한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적 허용'을 다른 말로 하면 "사회의 윤리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문학을 추앙하는 태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 곁엔 "그런 태도를 가진 자들을 추앙하는 태도" 또한 있다. 임솔아 소설가는 둘 중 하나의 추앙만으로는 문단 내 성폭력이 지금까지처럼 공고하면서도 은밀히 자행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 개의 추앙이 만나야 비로소 공모는 완성된다. 

두 번째 추앙을 대변하는 소설 속 인물이 현석이다. 정원과 동기인 현석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발 벗고 뛰는 인물이다. 무지개색 팔찌를 차고 다니며 퀴어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페미니즘 세미나를 개최하고, 장애인 학생을 위해 운동하고, 정원이 B강사에게 당한 일을 말하자 "문학계에 뿌리 박힌 여성 혐오의 오랜 역사를" 개탄하는 인물. 

그런 인물이 사건의 진상을 다 알고도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A교수와 B강사를 꼽는다. "그 시인들은 매 순간 시인이며 그들의 인생 자체가 시다"라는 이유로. 정원은 어떻게 현석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며 동시에 성추행범을 추앙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저런 추측 끝에 정원이 도달한 이미지엔 '형들을 졸졸졸 따라다니는' 현석이 있다. "형이 침을 뱉으면 따라 뱉고, 형이 여자를 때릴 때 망을 봤으면서도 그 여자와 함께 형 욕을 해대고, 그러다가 다른 형에게로 옮겨가는 삶."

왠지 멋져보이고 있어 보이는 형들을 추앙하는 사람들. 이런 이들의 추앙에 힘 입어 본인의 가부장적이고도 마초적인 성향을 '시적 허용'이란 이름으로 마음껏 휘두르는 사람들. 이들의 죄의식없는 연결이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 되어버린 결과 터져나온 #문단_내_성폭력.

정원은 B강사가 자신을 성추행한 일을 학교에 신고했는데도, "별일 아니라는 결론"을 내버린 학교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학교와 함께 글쓰기도 그만둘 생각"으로 정원은 자퇴서를 쓰기 시작한다. 처음엔 한 문장으로 시작했던 글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정원은 글쓰기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이제 정원에게 자퇴는 중요한 일이 아닌게 됐고, 오로지 글을 완성하기 위해 쓰고 또 썼다. 아마 정원이 완성한 그 글이 이 소설일 것이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수업 장면은 하나같이 우스꽝스럽다. 학생들은 A교수가 시키는 대로 나무를 껴안고, 나무에게 말을 걸고, 나무를 느낀다. ⓒ Pixabay

 
소설에서 묘사하는 수업 장면은 하나같이 우스꽝스럽다. 시인이라면 본디 이런 식으로 자연과 교감해야 한다는 듯 A교수는 교감 방법까지 일러준다. 학생들은 A교수가 시키는 대로 나무를 껴안고, 나무에게 말을 걸고, 나무를 느낀다. 학생들은 A교수가 계곡에 발을 담그면 같이 담그고, 그가 시원하다고 하면 같이 시원하다고 하고, 그가 노래를 부르면 같이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그가 "가슴이 무너진 적이 없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없다"는 등의 멋진 말을 하면 이 말을 받아 적는다. 이렇게 일방적인 수업이 끝난 어느 날. 쓰레기를 줍고 있는 정원에게 A교수가 다가와 말했다. 
 
"너는 마녀상이야. 남자 잡아먹을 상이야. 잘해라."

정원이 A교수의 말을 듣고 모욕감을 느낄 때 현석은 동기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교수님 정말 시인이지 않냐?" 

임솔아 소설가는 이 소설을 마무리하며 "성폭력 피해자들의 첫 목소리들이 한 세계를 끝내고 다음 세계를 열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소설가의 희망 섞인 문장을 읽으며 나는 작년에 읽은 한 산문집을 떠올렸다.

2016년에 등단한 90년대생 문보영 시인은 그녀의 첫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에서 자신이 정신과를 찾아간 이유로 "갓 등단하고 경험한 폭력에 대한 기억"을 들었다.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분노했지만, 어쩌면 나는 조금 희망해도 됐던 걸지도 모르겠다.

임솔아 소설가의 말처럼 이렇듯 "첫 목소리들"이 쌓이고 쌓여 무시하지 못할 목소리가 되어버린다면 생각보다 빨리 "한 세계"가 끝이 날 수도 있으니까. 추앙하지 말아야 할 것을 추앙하는, 추앙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추앙하는 뒤틀린 세계가 정말이지 끝이 날 수도 있으니까.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은이),
문학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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