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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외상센터 갈등, 정부 손 놓고 있을건가

수익성 따지는 병원으로선 감당 어려워... 의료복지차원에서 국립센터 운영해야

등록 2020.01.17 16:22수정 2020.01.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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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청 잔디광장에서 열린 응급의료전용헬기 종합시뮬레이션 훈련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신현대 ㈜한국항공우주산업 운영본부장, 스테픈 듀리에 주한미군 의무여단 중령, 조창래 경기도소방재난본부 특수대응단장, 아주대학교 닥터헬기 항공의료팀원 등 관계자들이 탑승한 뒤 탁터헬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2019.8.29 ⓒ 경기도

 
유희석 아주대병원 의료원장과 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사이에 벌어진 갈등으로 권역외상센터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권역외상센터는 일반 응급실에서의 처치 범위를 넘어서는 총상, 다발성 골절, 출혈 환자 등 중증외상환자에게 신속한 응급수술 및 치료를 할 수 있는 시설·장비·인력을 갖춘 외상전용 치료센터를 말한다.

지금과 같은 병원 운영 시스템에서는 병원 경영진과 권역외상센터 책임자 사이의 갈등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나아가 존재 이유가 분명한 권역외상센터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 또한 버리기 어렵다.

권역외상센터가 병원 경영진의 천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이다. 병원은 적자 발생이 눈에 보이는 의료시설을 자발적으로 끌어안을 유인이 매우 적다. 손이 많이 가고, 긴급한 환자를 돌봐야 하는 외상센터는 스트레스가 많아 의사들도 기피하는 곳이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권역외상센터를 지정할 수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병원에 외상전용 중환자실, 입원 병상 확충 등의 명목으로 80억 원 정도를 지원하고, 추가로 전문의 인력 충원 비용도 지원한다. 이러한 정부 지원에도 권역외상센터는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성을 포기할 수 없는 민간 병원에서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다.

일반 병원에서 권역외상센터가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응급수술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사회적 배경과도 관계가 있다. 심한 골절이나 출혈이 생기는 외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 작업 현장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피하는 일터가 생각날 것이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단순 노무직 종사나 중장비, 기계를 다루는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그들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중증외상센터 9곳을 찾은 환자 중 직업을 밝힌 1576명을 분석한 결과 건축·토목 공사 현장 인부들이 21.4%로 가장 많았다. 이들을 포함하여 기계 관련 노동자, 농업·임업·어업 종사자, 기능공 등 육체노동을 하는 계층이 중증외상 입원환자의 63%에 이른다. 여기서 의료급여 수급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높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중증외상 환자들이 장기간 입원 치료에 들어가는 병원비를 감당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수익성을 중시하는 병원에서 가만 두고 볼 리 만무하다. 따라서 환자를 받으면 받을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를 민간 병원에 떠넘겨서는 안된다. 수익성에 치우친 병원 운영이 빚어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돈의 논리에서 벗어난 병원... 정부만이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나올 수 있는 대안이 정부가 직접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예산을 민간 병원에 지원하면서 갈등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공공의료기관을 거점으로 외상센터를 설치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경제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중증외상센터 운영을 정부가 의료복지라는 면에서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중증외상센터가 공공의료 영역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모든 갈등의 씨앗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에 예산을 배분하는 부처 또한 경제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정부 예산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한 기준으로 각 기관의 예산 현황을 분석하고, 예산 배분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관의 특성에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경제성 논리를 대입하는 것은 민간 기관과 다를 바 없다.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의 견제를 받는 공공의료기관들이 경제적 지표가 포함된 성과평가의 불합리함을 호소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간 병원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이 경제성을 평가받는 공공의료기관 시스템의 변화 없이 적자가 뻔한 중증외상센터를 설치하는 것은 문제와 갈등의 수평 이동일 뿐이다.

2013년에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폐쇄된 진주의료원 사례를 쉽게 지나쳐선 안 된다. 공공의료기관을 바라보는 방식과 예산 배분의 권한을 가진 정부의 인식이 변해야 '국립중증외상센터'의 설치와 운영도 순조로울 것이다.
#권역외상센터 #경제성 #의료복지 #공공성 #이국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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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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