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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의 반이 잘려나가는 아픔'은 언제 쓰는 말일까?

가족들과 사별하는 아픔... 남편, 아내, 형제자매, 자식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비유

등록 2020.01.23 08:35수정 2020.01.2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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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 고분 신라시대 고분이 석탑과 함께 있다. ⓒ 배남효

 
얼마 전에 후배를 만났더니 형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쓰러졌는데 구조가 늦어졌다고 했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았으나 5일 만에 산소호흡기를 뗐다고 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조차 제대로 못해 너무나 어이가 없어 힘들다고 했다.

예로부터 가까운 가족과 사별하는 아픔은 매우 힘들어, 특별히 이름을 붙여 그 아픔을 표현했다. 남편, 아내, 형제자매, 자식이 떠나면 그 아픔이 다 다르게 느껴져 제각각 이름을 붙인 것이다. 붕성지통(崩城之痛), 고분지통(叩盆之痛), 할반지통(割半之痛),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 부르며 아픔을 구분했다.


붕성지통은 남편이 죽으면 성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는다고 해서 붙인 말이다. 진시황 때 아내가 부역나간 남편을 찾아갔는데 이미 죽어서 크게 통곡하니, 성이 무너지고 남편의 시신이 나타났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얼마나 슬펐으면 그토록 크게 울어 성이 무너지기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경북 안동에서 원이 엄마라는 아내가 남편이 죽은 시신에 써서 같이 묻은 편지글이다. 이 편지가 420년이 지나 발굴되어 세인을 놀라게 했다. 편지글에 드러난 망부의 애절한 슬픔을 보면서, 남편을 잃은 애통함이 어떤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어린 자식을 데리고 임신한 몸으로 남편을 잃었으니, 하늘 아래 그런 지독한 슬픔은 없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고분지통은 부인이 죽으면 겪는 아픔이다. 동이를 두드리는 고통이라는 뜻인데 다소 엉뚱하기도 하다. 장자(莊子)가 부인이 죽자 슬퍼하지 않고 동이를 두드리며 장례를 치렀다고 하여 나온 말이다. 실제로 상처를 하면 매우 슬프고 힘든데, 고분지통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音容一隔杳難追  그 모습 한번 멀어지니 추억조차 아득하고
卅載光陰片夢疑  삼십 년 세월이 한 조각 꿈과 같구려
此日傷心無限事  오늘 아픈 마음은 끝이 없으니
何由報與九泉知  어찌해야 구천의 당신이 알게 하리오



조선시대 문인 강세황(1713-1791)이 아내를 잃고 지은 시 '도망팔절(悼亡八絶)'의 첫수이다. 아내가 떠나고 나니 같이 지낸 추억도 아득해지고, 잠깐 꿈을 꾼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혼자 남게 되니 슬픔과 허전함으로 인생무상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그런 마음을 구천의 아내에게 전하고 싶지만, 알릴 길조차 없으니 더욱 애닯은 것이다.
 

큰형 묘소 돌아가신 큰형의 묘소를 마련하여 화장한 유골을 묻었다. ⓒ 배남효

 
다음으로 할반지통은 형제가 죽으면 자기 몸의 반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는다고 하여 붙인 말이다. 퇴계 이황이 어려서 형이 피흘리며 다친 모습을 보면서. 자기 몸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느꼈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실제로 형제자매의 죽음을 겪어보면 마치 자기가 당하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낄 수 있다.

我兄顔髮曾誰似  우리 형의 얼굴은 누구를 닮았던가요
每憶先君看我兄  아버지가 그리울 땐 형을 보곤 했지요
今日思兄何處見  오늘 형이 생각나서 어디서 볼까 하다
自將巾袂映溪上  내 옷차림 바로하여 시냇물에 비춰봅니다


연암 박지원이 형을 잃고 쓴 시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을 그리워하며)인데, 그 슬픔을 잔잔하게 느낄 수 있다. 아버지와 형이 같고, 또 형과 자신이 같다는 비유를 통해, 형제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를 절감하게 만든다. 바로 형은 자기의 분신과도 같아, 그 죽음은 자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끝으로 상명지통(喪明之痛)은 자식이 죽으면 너무 슬퍼서 많이 울어, 눈이 멀기까지 한다고 붙인 말이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자식을 잃고 많이 울어 실명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정말 자식이 먼저 죽으면 잊히지 않고 너무 힘들어 눈물이 절로 쏟아진다고 한다. 눈까지 멀 수도 있고, 세상에 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아픔은 없는 것이다.

哭盡復垂淚  통곡을 다해도 또 눈물이 흐르고
淚收還嗚咽  눈물을 거둬도 또 울음이 터지네
嗚咽復何言  울음이 터지는데 또 무엇을 말하랴
猿腸寸寸絶  애간장만 마디마디 끊어져 나가네


영조 때 좌의정을 지냈던 조태억(趙泰億, 1675~1728)이 둘째 아들을 잃고 쓴 연작시 곡자(哭子)의 열째 수이다. 자식을 잃고 슬퍼서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 그쳐지지 않는 참상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통곡, 눈물, 울음 등의 모든 말을 다해, 눈물이란 눈물은 다 나오고 있음을 비통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슬프게 계속 울다 보면 실명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의 사별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런 지극한 슬픔을 겪지 않는 것이 좋은데, 생자필망의 운명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장자처럼 달통하여 아내가 죽어도 고분지통으로 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속인의 생활에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서 부러울 뿐이다. 작년에는 큰형을 잃는 할반지통을 겪었는데, 올해는 이런 고통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면 좋겠다.
#붕성지통 #고분지통 #할반지통 #상명지통 #가족 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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