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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50대 남자 혼자 바이킹 타고 깨달은 것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살던 나... 죽음의 공포에서 찾은 삶의 의미

등록 2020.01.28 14:43수정 2020.01.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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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은 원래 중세 북유럽의 해적들을 이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그 무리들이 타고 다니던 배(longship, 돛과 노를 함께 쓰는 배)의 모양을 본 떠 만든 놀이기구를 뜻한다.


전국의 유명 놀이공원에는 다 있다. 특정한 장소에 기구를 고정시켜 놓고 한번에 20~30명 정도를 태우는 게 일반적이다. 1톤 트럭 짐칸에 설치해 동네방네 다니면서 승객들을 찾아나서는 이동식도 있다. 작은 아이들 1~2인승이다.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모터에 연결된 롤러로 모형 배를 한껏 밀어 올렸다가 정점에 이르면 자연중력으로 낙하시킨다. 앞뒤로 흔들리는 모양새가 그네와 같다. 배는 꼭대기에서 잠시 잠깐 멈췄다가 툭 떨어진다. 사람들은 바로 그 순간 공중에 붕 뜬, 혹은 몸이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순간적으로 무중력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머리칼이 쭈뼛 서고 아찔하면서도 짜릿하다.

그러니까 바이킹은 중력과 속도 그리고 관성의 법칙까지 응용해 만든 제법 과학적인 놀이기구인 셈이다. 거기에다 바이킹은 사람들의 피학적 욕망을 적절히 충족시켜 준다.

배가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떨어지는 그 순간 사람들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괴로워하면서도 승객들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게다가 그 야릇한 느낌은 중독성까지 있다. 사람들이 적잖은 돈을 내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유다.

그래서 바이킹의 성능과 품질은 승객들의 비명소리에 비례한다. 데시벨이 높을수록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며 품질이 뛰어난 바이킹이라 보면 된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바이킹은 인천 월미도에 있다.


혼자 월미도에 갔다, 바이킹을 탔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월미도 바이킹. 아직 덜 올라간 게 저 정도다. 한바퀴 뺑그르르 돈다는 괴소문도 있다. ⓒ 이상구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바이킹 좀 탄다는 사람들에게 월미도는 성지와도 같다. 1년 사시사철 도전자들이 모여든다. 탑승객들은 대부분 승선 전부터 겁에 질려 있다. 개중 몇몇은 마치 에베레스트에라도 도전하는 양 비장한 표정을 짓는 이도 있다.

월미도 바이킹은 일단 높이부터 남다르다. 보통 70도 정도 올라가는 여느 것과는 달리 월미도 바이킹은 90도 이상 치솟는다. 눈대중으로 100도도 넘어 보인다. 거짓말 좀 보태 360도 뺑 돈 적도 있다는, 그래서 몇 명이 떨어져 사망했다는 괴소문이 돌 정도다.

높이 오르는 만큼 떨어질 때의 가속도가 엄청나다. 꼭대기에 오르면 맞은편의 승객 얼굴이 직각으로 내려보인다. 내려가면 그 반대다. 인간의 얼굴이 저렇게까지? 싶을 만큼 일그러져 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공포감이 그대로 묻어있다.

운항 시간도 그렇다. 다른 곳은 평균 3~4분 정도 태운다. 반면 여긴 DJ(기계 작동은 물론 음악과 재기 넘치는 멘트까지 날리는 사람) 마음대로다. 특히 평일에 손님이 별로 없을 땐 10분도 좋고 20분도 좋다.

승객이 제발 내려달라고 울며 불 때까지 흔들어 댈 때도 있다. 실신 직전까지 가기도 하지만 자비는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온갖 놀림과 희롱의 대상이 된다. 밑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를 동정하면서도 재밌어 죽겠다는 이율배반적인 표정을 짓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게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바이킹을 탄다. 서로 꼭 붙어 앉아 서로에게 의지하며 무서움을 덜어보자는 심산이다. 물론 아주 가끔 혼자 타는 이도 있긴 하다. 월미도 바이킹 도장깨기에 나선 타지역 출신 도전자이거나, 일행과 함께 오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죄다 포기하고 혼자 남은 경우 등이다. 

나도 그날 그 살벌하기로 유명한 월미도 바이킹을 혼자 탔다. 근데 나는 아무 이유 없었다. 그냥 끌리듯 혼자 월미도엘 갔고, 홀린 듯 홀로 바이킹을 탄 거였다. 게다가 그건 첫 경험이었다.

평일 오후인지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방학 중인지라 친구들과 함께 온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있었다. 동반자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이윽고 안전바가 내려오고 천천히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0도, 20도, 30도. 배는 조금씩 고도를 높여갔다.

그럴 때마다 스릴감도 조금씩 커졌다. 자연히 안전바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배가 정점으로 치달았다. 오를 때면 머리칼리 쭈뼛 섰고 내릴 대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허리 위 상체는 허공에 그대로 남아 있고 허리 아래쪽만 밑으로 쑥 빠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과연 명성 그대로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자연히 두 눈이 질끈 감겼다. 고개를 옷깃 속으로 푹 파묻혔다. 흡사 지구 종말의 날에 구원을 갈구하는 자의 자세였을 것이다. DJ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여어, 회색 목도리 아저씨. 누구한테 차이셨어요. 혼자 뭐 해요? 지금 기도해요? 그러니까 평소에 잘 하지."

그 회색 목도리는 분명 나였다. 순간 욱 했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럴 힘도 없었거니와 창피하기도 했고, 화냈다가 밉보이면 보복 당할 것 같아서였다. 일단 빨리 내려는 게 급선무였다.

그냥 그 자세 그대로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속절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두려움이 익숙해져 갔다. 무뎌졌다. 견딜 만했다. 그럴 때 쯤 돼서야 바이킹은 서서히 그 가공할 폭주를 멈췄다.

배가 완전히 멈췄다. 서둘러 내리고 싶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양팔엔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욕지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명치께가 허전하고 서늘했다.

내 삶도 '그 까짓 거 별 것도 아니'길 
 

사투의 흔적, 나름 명품 코트의 단추가 두 개나 떨어져 나갈 정도의 사투를 별였다. 그 중 하나는 아예 산산조각 났다. ⓒ 이상구

 
외투 앞섶의 단추 두 개가 떨어져 나가 바람이 들어와서 그랬다. 안전바를 손으로만 잡은 게 아니라 아예 온몸으로 붙들고 늘어진 거였다. 굵은 실로 잘 매어 둔 단추까지 떨어뜨릴 만큼 악착같이 안전바에 매달려 발버둥 친 거였다.

오십 중반 중늙은이가 멀쩡하게 차려입고 평일 벌건 대낮에, 게다가 청승맞게 혼자서 바이킹까지 탄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만큼 제 정신이 아니었던 거다. 속은 완전히 썩어 문드러졌고,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지경으로 화가 나 있었으며,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로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요 며칠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삶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없었다. 그냥 맘 같아선 월미도 앞바다에라도 뛰어들고 싶었다. 그래서 거기까지 간 거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삶이 지긋지긋하다고 했지만 기실 나는 누구보다 생명에 집착하는 인간이었다. 스스로 제 목숨을 어찌 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소심한 겁쟁이였다. 아무 미련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삶 자체가 미련 덩어리였다.

정말 사고라도 나서 어찌 됐더라면 억울해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했을 터다. 발밑에 떨어져 나뒹구는 단추는 그런 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 중 하나는 아예 박살이 나 있었다. 비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없이 창피했다. 다리에 힘이 돌아오고, 양팔의 경련도 멈추었건만 나는 좀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주위에 있던 모든 구경꾼들이 내게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것 같았다. 내가 이 배에서 내리면 일제히 알나리깔나리 희롱하며 놀려 먹을 것 같았다. 고개를 처박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목도리 아저씨 뭐해요. 돈 떨어졌어요?"

한껏 이죽거리는 DJ의 타박을 듣고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는 여전히  외투 속에 파묻은 채 서둘러 배에서 내렸다. 그 자세 그대로 냅다 뛰었다.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바닷가까지 정신없이 뛰었다. 힐끔거리며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파묻었던 고개를 빼냈다.

석양으로 벌겋게 물들었던 바다엔 어느 사이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어스름 초저녁 하늘 끝자락에 성미 급한 작은 별 하나가 벌써 떠 있었다. 그 모래알보다 작고 보석처럼 예쁜 별이 내게 속삭였다. 제발 거짓말하지 말라고. 넌 그냥 천성이 게을러 일하기 싫은 것뿐이라고. 게다가 그걸 남 탓하는 건 참 못나고 한심한 짓이라고.

갯내음을 한껏 품은 바닷바람이 날카롭게 뺨을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조그만 별에게 혼 나고 바람에게 보기 좋게 한 대 맞은 셈이다. 그래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치스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지만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허리도, 어깨도 쭉 펴졌다. 상쾌했다. 시원했다. 즐거웠고 행복했다. 저 멀리 바이킹 승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까짓 거 별 것도 아니더만'. 피식 빈 웃음이 터졌다.
#바이킹 #월미도 #공포 #삶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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