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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군, 전주성 점령했으나 진퇴양난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41회] 동학혁명의 1차적 성공이고 최후의 승리였다

등록 2020.01.21 16:28수정 2020.01.2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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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남문 전주성의 남문이다. 앞에는 남부시장이 있다 ⓒ 김수종


동학혁명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것은 갑오년 4월 27일(음)이다. 동학혁명의 1차적 성공이고 최후의 승리였다.

하지만 '성공'에는 많은 부담과 난제가 수반되었다. 정부와 맺은 '전주화약(全州和約)' 그리고 전주성을 관군에 넘겨주고 후퇴, 이런 과정에서 전개된 전봉준과 김개남의 노선 갈등, 이어서 청군과 일본군의 조선 내침, 집강소 설치와 농민자치, 우금치 전투의 패배와 일본군과의 전쟁, 전봉준ㆍ김개남 체포와 처형 등으로 동학혁명이 좌절되고, 국제적으로는 청일전쟁의 발발로 이어졌다.

전주성은 호남의 수부임과 동시에 조선왕조의 본관지역이다. 여기에는 이성계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당시 백성들은 동학혁명군의 전주점령을 조선왕조의 멸망을 예고하는 사변으로 인식하고, 항간에서는 이와 관련한 각종 참언과 소문이 나돌았다. 고종 왕실이 그만큼 중대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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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깃발과 당시 집강소 간판 당시 동학 깃발과 집강소 현판 ⓒ 고광춘



동학혁명군은 전주성을 점령했지만, 내부사정과 국내외 정세는 이곳에 오래 머물기도, 퇴거하기도 난감한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갈림길이 되고 말았다. 

동학농민군은 며칠 동안 전주성에 포진하고 있었다. 관군도 산발적으로 포를 쏘아 위협할 뿐 피아간에 접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주성이 10여 일 동안 소강상태가 유지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농민군이 두 번의 패전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자 전봉준도 점차 앞날을 비관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간헐적인 전투와 소강이 유지되는 가운데 5, 6일이 지나갔다. 경군이나 혁명군 어느 쪽도 전주성을 둘러싼 공방전에 더 이상의 유혈을 원치 않았다. 홍계훈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주성 탈환도 자신이 없거니와, 전주는 왕조의 본관이니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조정의 분부를 거역할 수도 없었다.
 
 

황룡전적지 기념탑에 조각된 동학농민군들. 장태를 굴리며 관군에 맞서는 모습이다. ⓒ 이돈삼



전봉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 전투에는 자신이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는 우선 자신이 최초로 거병했던 당시의 소명인 탐관오리들이 어느 정도 제거되었거나 아니면 그 뜻이 위에 전달되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병력으로는 더 이상 관군과 지원병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봉준을 주저하게 만든 것은 정부의 외국군대 차용논의와 북접의 시기에 찬 눈초리였다. 그가 애당초 기병한 궁극적인 동기는 "국기(國基)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함"이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자신의 그와 같은 처사가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괴로워했다. (주석 1)


동학군 지휘부의 고심은 날로 깊어갔다.

'광제창생'과 '제폭구민'의 기치 아래 거병하여 그동안 몇 차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탐관오리들을 처단하고 악질 부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름 없는 수많은 백성들로부터 구세주와 같은 지지와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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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티 고개에 세워진 장승, 공주 우금티 동학농민전쟁 기념사업회에서는 이곳에서 매년 장승제를 지내오고 있다 우금티 고개에 세워진 장승, 공주 우금티 동학농민전쟁 기념사업회에서는 이곳에서 매년 장승제를 지내오고 있다 ⓒ 송성영



그러나 완주 싸움에서 많은 병졸의 사상자를 내면서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무엇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정부가 동학농민군을 초제(剿除) 하고자 청국에 원병을 요청하고, 일본군도 침입해 올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동족간에 피 흘리는 것도 차마 못할 일인데 외군의 원병 소문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국가의 안위나 백성의 생활보다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눈이 먼 민씨 수구파 정권은 관군의 연패와 전주성의 함락소식을 듣고 청군을 불러오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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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앞에 세운 '갑오동학농민군집결지'라는 빗돌. ⓒ 장호철



먼저 4월 4일 전주탈환을 위한 중신회의에는 민씨 정권의 핵심멤버들이 참석하여 동학농민군 토벌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였다. 참석자는 다음과 같다.

중신 판부사 심순택과 김홍집, 좌의정 조병세, 판부사 정범조를 시작으로 하여 제학(提學)인 민영준, 민응식, 민영환, 직제학 (直提學)인 민영소, 김성근, 조동면, 이원일, 직각(直閣)인 김세기, 민영달, 박봉빈, 서상조, 민경호, 윤헌, 민영철, 민영주, 남규연, 심상한, 지교 (持敎)인 김규식(金奎軾), 이용선.


주석
1> 신복룡, 앞의 책, 151~152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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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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