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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오라잍141화

"설날에 시댁 안 가는 법" 시아버지가 검색해 봤더니

[이런 명절 어때요?] 가족 모임, 말하지 말고 들어줍시다

등록 2020.01.21 12:13수정 2020.01.2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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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증후군, 가부장적 차별, 세대간의 불화... 왜 명절이 되면 똑같은 문제와 갈등이 돌림 노래처럼 되풀이되는 걸까요. 불편한 사람 없이 모두가 즐거운 명절은 아득한 걸까요. '이런 명절 어때요?'는 저마다 바꾸고 싶거나 새롭게 도입하고 싶은, 새로운 명절 문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이 있다. 칼럼의 부제는 '명절을 잘 보내는 법'으로 친인척들의 '관심'을 가장한 '오지랖'에 대처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김영민 교수는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는 그 질문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질문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당숙이 "취직은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을 하면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물어보고, "추석이라서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면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다시 물어보라고 권한다. 이런 식으로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오가다 보면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려 무력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접한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고 한다. 명절이 부담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보듬은 글이기 때문이다. 난 이 글을 읽으며 '질문'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았다. 단, '명절'에 부모가 자녀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한정해서 따져보았다. 세 가지 특성이 떠올랐다.

질문자, 그리고 피질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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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한 장면. ⓒ KBS

 
명절에 오가는 질문의 가장 큰 특성은 주로 '강제적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명절이라 오랜만에 모인 가족 모임에서 질문이 나오는 경우는 어색한 분위기나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단기 처방일 때가 많다. 그런 생산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질문자가 마음에 품고 있던 피질문자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압축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여기서 '피질문자'라는 단어를 썼는데 사전에 없는 단어이다. 하지만 많은 명절 대화가 마치 수사관과 피의자 사이에 벌어지는 심문을 연상시켜서 '피질문자'라는 단어를 썼다. 물론 질문자는 주로 부모이고 피질문자는 자녀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대개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취업 준비는 잘 돼 가니?", "결혼은 어떻게 할 거니?", "아이 소식은 언제 들려줄 거니?" 등 질문자는 피질문자가 가진 약점이나 상처를 드러내곤 한다. 그나마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면 다행이지만 어쩌면 단 한 번의 질문으로 대화 자체가 끊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명절) 질문의 두 번째 특성이 있다. 피질문자에게 추궁이나 공격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위에 예로 든 질문들처럼 피질문자의 아픈 구석 혹은 가리고 싶은 구석을 굳이 밝히려는 질문들은 질문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피질문자에게 상처로 다가갈 수 있다. 입은 물론 마음까지 닫게 만든다.
 
이렇듯 (명절) 질문의 마지막 특성은 명절 분위기를 좌우한다. 공격적 질문과 수비적 대답이 오가다 보면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아예 입을 닫게 만든다. 공격자든 수비자든 관중이든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드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명절에 나오는 질문의 특성들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는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명절에 가족을 만나는 걸 부담스럽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된다.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2010)에서 '따로 사는 부모와의 접촉 빈도'를 보면 매일 한 번 이상 부모와 접촉하는 자녀가 22.4%, 일주일에 한 번이 23.9%, 한두 달에 한 번 접촉하는 자녀가 36.9%이다. 그리고 '명절 등 특별한 날'에만 부모와 접촉하는 자녀도 16.8%나 된다. 10년 전 조사이지만 지금도 시사점을 주는 분석이다.
 
이 통계를 반대로 해석하면 저 숫자만큼의 부모가 저 빈도만큼 자녀와 접촉하는 것이다. 자녀와 매일 얼굴 맞대고 살아도 궁금한 게 많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하물며 오랜만에 명절이라고 얼굴 보여준 자녀에게 궁금한 게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평소에 걱정과 궁금함을 차곡차곡 담아 놓았다가 명절에 단 몇 문장으로 질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압축된 그 단 몇 문장이 사달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뭔가 듣고 싶어서 묻는 건데 자녀가 말을 할 준비가 되었는지 살피지는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듯 가족 간 대화가 쌍방향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 가족이 그랬다.

해피엔딩을 위한 경청
 
우리 가족은 부부와 아들 세 가족이었다. 과거형을 쓴 이유는 지금은 결혼해서 며느리까지 넷이기 때문이다. 아, 며칠 후 2월이면 손주도 태어나서 곧 다섯이 된다. 가족이 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가족이 나눴던 대화들이 생각난다.
 
2년 전 어느 날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 아들이 결혼한다고 선언했다. 허를 찔린 우리 부부는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 제정신이니?" "네 나이에 이르지 않니?" "혹시 서두르는 이유가 있는 거니?" 축하를 받으리라고 생각한 아들은 상처를 받았다. 아들은 자기가 한 여인과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털어놓기도 전에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모가 야속했을 것이다.
 
평생 품 안에 있을 것 같았던 외동아들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보인 우리 부부의 첫 반응은 어쩌면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있다. 놀랐지만 웃는 얼굴로 차근차근 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궁금한 게 많더라도 아들이 속마음을 맘껏 털어놓을 수 있도록 충분히 들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단 몇 문단으로 우리 가족이 겪은 갈등과 화해와 축복의 과정을 압축할 수는 없다. 다만 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에게 치중된 게 아니라 참여자 모두가 균등한 역할을 했다. 모두 할 말이 많았겠지만 우선 서로의 말을 들어주었다. 한참을 듣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대화는 끊어지지 않았고, 해피엔딩으로 이어졌다.
 
그때의 교훈으로 난 말을 아낀다. 가족 모임에서도 주로 난 듣는다. 그렇게 듣다 보니 아들에게 어떤 고민이 있고 무슨 계획이 있는지, 며느리 직장에서 '아기 엄마'는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고 싶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역시 들어주는 게 중요했다. 물론 내게 조언을 청하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준다. 아들 내외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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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과연 명절에 찾아오고 싶은 집일까 ⓒ unsplash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명절에 집 혹은 시댁에 안 가도 되는 법'과 같은 정보가 떠돈다. 유튜브에 검색했더니 관련 영상 수십 개가 올라온다. 관련 키워드도 여러 개다. 웃자고 올린 콘텐츠도 있지만 나름 진지한 이야기도 있다. 동영상들을 보며 우리 집은 과연 명절에 찾아오고 싶은 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은 왜 부담되는 행사로 자리 잡았을까. 그 이유를 찾아 올라가다 보니 (거창하지만) 한국 문화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가부장적 문화와 위계질서가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웃어른의 말씀이 곧 법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관계에서도 그렇고 집안 대소사를 진행할 때도 그렇다.
 
특히 명절은 강력한 위계질서가 펼쳐지는 날이다. 윗세대는 어른답게 굴어야 하고 아랫세대는 아랫사람답게 굴어야 한다.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도 홍해 가르듯 갈린다. 명절이 되면 집은 자연스럽게 남자의 공간과 여자의 공간으로 나뉘고, 일도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로 나뉜다. 아무리 봐도 평등한 모습은 아니다. 이 모든 게 전통이란 이름으로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난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내가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만큼은 이번 명절에 웃어른 노릇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걸린 감기가 독감이 될 수 있다는 핑계로, 며느리의 며칠 남지 않은 출산을 핑계로, 가족 모임 없이 조용하게 넘어가려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형식보다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냐고 변명해 보려고 한다.
 
그래도 만나게 된다면 아무 질문 않고 그냥 들어주기만 할 생각이다. 대화는 듣는 것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리커버 특별판)

김영민 (지은이),
어크로스, 2018


#명절 대화 #가족 간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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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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