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김개남, 남원에 둥지를 틀다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48회] 혁명적인 개혁안은 못 되었어도 동학군이 제시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이 수용된 셈

등록 2020.01.28 16:53수정 2020.01.28 16:53
0
원고료로 응원
 
a

김개남 장군 ⓒ 박도

전봉준ㆍ김개남ㆍ손화중 등 동학농민군 지휘부는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전주성을 관군에 넘겨준 후 향후 대책을 숙의하였다.

청군과 일본군이 국내로 밀물듯이 들어오고 있어서, 당초 봉기했던 때와는 상황이 크게 변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국가안위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동학군의 서울 진격 계획은 중단되었지만, 적폐청산과 국정개혁의 봉기 목표를 접은 것은 아니었다. 그럴수록 5백년 왕조의 썩은 시정을 바로잡아 도탄에 빠진 민생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일이 절박해졌다.

정부로서도 동학농민군이 외군의 출병이라는 상황변화로 비록 전주성을 떠나갔지만, 언제 다시 봉기할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농민군 지휘부가 폐정개혁안을 정부 측에 제시하고, 6월 11일 전봉준ㆍ김학진ㆍ홍계훈 사이에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혁명적인 개혁안은 못 되었어도 동학군이 제시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이 수용된 셈이다. 이른바 '전주화약'이 성립된 것이다.
  
a

교룡산성 성벽 이곳이 김개남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의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팻말을 누군가 세워두었습니다. ⓒ 서부원

 
동학농민군 지휘부는 '전주화약'을 맺은 후 집강소를 호남 일원에 설치하고자 각자 연고지를 택해 책임을 맡았다. 김개남은 전라좌도를 중심으로, 전봉준은 전라우도를, 손화중은 전라 아랫 지역을 담당하여 각각 집강소를 설치, 운영키로 하였다.

김개남이 맡은 전라좌도는 남원이 지역의 중심지였다.

전통시대의 남원은 전라좌도의 수부(首府)로서 그 역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있으면서 지리산의 정신사 또는 저항사와 밀접한 관련 속에서 역사를 전개해 왔다. 따라서 내륙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바깥 세력에 시달려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주민의 저항적 기질이 결부되어 정체성이 생성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남원지역은 전라좌도에 속해 있으면서 지리산을 중심으로 경상우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으면서 지정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동학농민전쟁 당시에도 특별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주석 1)

 
a

동학깃발과 당시 집강소 간판 당시 동학 깃발과 집강소 현판 ⓒ 고광춘

 
남원은 동학과 특수한 인연이 깃든 지역이다. 최제우가 이곳 은적암에 10개월 동안 머물면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등 동학경전을 완성하고, 이후 호남 포교를 하고, 1892년에는 교조신원을 위해 삼례집회에 남원에서 수 백명이 참가하였으며, 광화문 복합상소에도 이곳 출신 유태홍이 참여하였다.

김개남은 7월 27일 남원에 들어갔는데 전라도 동북부 군현들인 순창ㆍ용담ㆍ금산ㆍ장수 등지의 동학 조직을 장악해서 독자세력으로 활동하였다. 김개남이 거느린 세력은 규모가 매우 컸다. 60여 일 동안 결집한 세력이 적어도 5~6만에서 무려 7만 명이 되는 막대한 세력이라고 하였다. (주석 2)

이와 관련 황현의 『매천야록』은 이렇게 기록한다.

호남적 김기범이 남원을 점령하였다. 그는 전봉준과 2대로 나누어, 전봉준은 전주에서 김학진을 인질로 잡고 일도(一道)를 호령하며 형세를 보아 가면서 진퇴계획을 짰다. 김기범은 동학란이 일어날 때 남원으로 들어가 그곳의 풍부한 농산물을 보고 매우 부러워하였다... 그는 격문을 먼저 보낸 후 들어왔으므로 관리와 백성들은 감히 그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다.

남원에 자리잡은 김개남은 새로 동학농민군을 조직하는 한편 집강소를 설치하고 운영하여 민심을 얻고자 하였다.


주석
1> 이이화, 「남원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성격과 현재적 의미」, 동학학회 제35차 추계 학술대회 발표논문, 2014년 11월 7일, 남원 춘향문화예술회관.
2> 신영우, 「1894년 남원 대도소의 9월 봉기론과 김개남군의 해산배경」, 동학학회 제35차 추계학술대회 발표논문.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AD

AD

인기기사

  1. 1 [전문] "존재감 없음"... "검찰 대응 수월"... '판사 불법사찰' 문건 공개
  2. 2 윤석열 총장의 위기, 자업자득이다
  3. 3 윤석열 검찰총장님, 이런 과거가 있습니다
  4. 4 '사법농단' 알렸던 이탄희 "판사사찰, 양승태 때와 같은 일"
  5. 5 판사 출신 이수진 "위헌적 사찰문건, 윤석열 탄핵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