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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군, 호남53개 군현에 집강소 설치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49회] 집강소는 동학농민혁명 이전부터 향촌사회에 있어왔던 민간의 자치기관이었다

등록 2020.01.29 17:22수정 2020.01.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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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깃발과 당시 집강소 간판 당시 동학 깃발과 집강소 현판 ⓒ 고광춘

동학농민군 지휘부는 호남의 각 군현에 집강을 임명하고 이들이 지역에서 집강소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전주에는 총본부인 대도소(大都所)를 두고 전라도 53개 군현의 관청 안에 집강소를 설치케 하였다. 농민이 직접 참여하는 일종의 민정(民政) 자치기관이었다.

집강소에는 책임자인 집강 밑에 서기(書記)ㆍ성찰(省察)ㆍ집사(執事)ㆍ동몽(童蒙) 등의 임원을 두어 행정사무를 맡도록 하였다. 1894년 여름과 가을에 호남 일원에 정부의 행정관청 안에 동학농민군의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형식상으로는 이원화 형태의 조직이었지만, 실제로는 동학농민군이 통치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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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고등학교 <한국사>에 수록된 그림. ⓒ 삼화출판사

 
동학군 봉기로 피신했다가 돌아온 관청의 수령들은 형식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고, 군현의 이서(吏胥)들까지 동학에 입적한 경우에만 행정사무를 맡겨서 실질적으로 동학농민혁명군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다.

집강소는 동학농민혁명 이전부터 향촌사회에 있어왔던 민간의 자치기관이었다. 글자 그대로 지역사회의 '기강'을 바로잡는 민간조직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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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백산창의비. ⓒ 안병기

 
1860년 전라도 구례에서 간행된 『봉성현지(鳳城縣志)』의 향규(鄕規)에는 "향청(鄕廳)에서 과실을 범하거나 폐단을 일으키면 집강이 보고 들은 바를 문서로 적어 관청에 제출하도록"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향촌사회에 집강이 있어서 그 지역사회의 기강을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도 안동에서도 비슷한 사례의 기록이 『안동부읍지(安東府邑誌)』에 나타난다.

동학농민군에 의한 집강소의 설치와 집강소의 농민통치는 비록 전라도 53개 군현의 일부지방에서의 일이지만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농민이 권력을 장악하고 농민을 위한, 농민에 의한, 농민의 정치를 실행했다는 면에서 한국근대사에서 매우 특이하고 획기적인 사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집강소의 농민통치의 내용과 성격 여하에 따라 갑오농민전쟁의 역사적 성격이 좌우되는 측면이 매우 크기 때문에 동학농민군의 '집강소'는 반드시 심층에서 밝히지 않으면 안 될 한국근대사의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주석 3)


전라도의 각 고을을 접수한 동학농민군은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고 탐관오리를 척결하는 등 행정업무를 집행하였다. 악질 토호와 부호들을 잡아다가 처리하고 폐정개혁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악질 토호라도 집강소에서 이들을 죽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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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전주입성비 동학농민군 전주입성비 ⓒ 황의선

 
농민군 지휘부는 각 군현의 집강들을 통해 폐정개혁을 위한 12개항의 행정요강을 공포하고 이를 집강소 운영의 준칙으로 삼도록 지시하였다.
  
집강소 12개조 행정요강

① 도인 (동학교도)과 정부와의 사이에 오래 끌어 온 혐오의 감정을 씻어버리고 모든 행정에 협력할 것.
②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조사해 내어 일일이 엄징할 것.
③ 횡포한 부호들은 엄징할 것.
④ 부랑한 유림과 양반은 징습(懲習)할 것.
⑤ 노비 문서는 불태워버릴 것.
⑥ 칠반천인(七般賤人)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 머리에 쓰는 평양립(平壤笠)은 벗겨버릴 것.
⑦ 청춘과부의 재가를 허락할 것.
⑧ 무명잡세는 모두 거둬들이지 말 것.
⑨ 관리의 채용은 지벌(地閥)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⑩ 외적과 내통하는 자는 엄징할 것.
⑪ 공사채를 물론하고 기왕의 것은 무효로 돌릴 것.
⑫ 토지는 평균하게 나누어 경작케 할 것. (주석 4)



주석
3> 신용하,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 161쪽, 일조각.
4> 오지영, 앞의 책,『동학사』.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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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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