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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교 근무를 오래해서"... "섹드립" 여중 교사의 변명

[스쿨미투, 교복을 벗고 법정에 서다②] 미투 교사가 법정에서 한 일

등록 2020.01.26 11:50수정 2020.01.2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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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6일, 한 통의 메일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해 죄송하다"며, 아주 사려깊고 예의 있는 인사로 글은 시작됐습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지난해 3월에 제가 인터뷰했던, 충북여중 스쿨미투 SNS 계정주인 A 학생이었습니다. 충북여중 스쿨미투는 지난 2018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충북지역 학생들의 미투운동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학교의 (성)폭력을 낱낱이 고발했고, 일부는 경찰조사를 받거나 직위해제 됐습니다.

A는 법원으로부터 '증인소환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재판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막막하다고도 했습니다. 조금 미안했습니다. 여론의 눈이 쏠려 있을 때만 찾고, 잠잠해지니 나 몰라라 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A와 대화를 이어나갔을 때는 화가 났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받고자 떠오른 사람이 '기자'라니.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당한 일을 용기 내 고발한 학생이 처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A와 재판 전 과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법정에 선 A와 충북여중 스쿨미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국 '스쿨미투'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모든 일의 집약일 겁니다. 교육현장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북여중 스쿨미투' 그 이후를 A와 함께 기록합니다... 기자말 


[이전기사] "애들이 양심도 없이" 법정에서 미투 제자 탓한 교사

충북여중 노 모 교사는 국어 담당이다. 노 교사는 현재 직위해제된 상태다. 지난 2018년 스쿨미투 당시 몇몇 학생들이 노 교사의 평소 행실을 고발했다. 학생들은 노 교사가 "X같다", "섹X" 등 불필요한 욕이나 언어를 사용하거나, 남자 성기를 닮았다는 마사지 기구로 학생들의 목을 문지르고 다녔다고 털어놨다. 검찰은 지난해 노 교사를 아동복지법위반(아동에대한음행강요·매개·성희롱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에 대한 결심 공판이 지난 10일 청주지방법원에서 나경선 부장판사(제11형사합의부)의 심리로 진행됐다.

노 교사는 앞서 열린 1차 공판에서 자신에 대한 공소사실 전부를 자백했다. 그러나 결심 공판에서 그는 말을 바꿨다. "그런 행동과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희롱 목적이 아니라 분위기 환기를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마사지 기구를 이용한 건 "자는 아이들을 깨우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해당 행위 자체가 15세 미만 아동의 정서를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탁동완 검사는 벌금 500만 원을 구형하며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

"피고인은 별 뜻 없이 한 행동이고 자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을 하나, 남자 성기를 닮았다는 마사지 기구로 자는 학생들의 목을 문지르고 굳이 '섹드립'이라는 단어를 표했습니다. 그 자체가 아동의 건강이나 복지를 해치거나 정서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충분한 성적 폭력 및 가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재판에서 다뤄진 사건 외에도, 학생들이 스쿨미투 운동 당시 노 교사에 대한 공통적인 피해 사실을 진술한 점에 주목했다.

"피고인에 대한 범죄사실이 두 개로 특정돼 있기는 하나 학교 자체 조사 결과 학생들이 피고인에 대한 성토를 대단히 많이 했습니다. 평소에도 격분해서 교실에서 욕설을 하고, '여자들은 아기를 못 낳으면 절에 가야 된다' 이런 발언들을 했던 것도 전수조사 결과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점들 참작하시어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 원, 수강 명령, 취업제한 10년을 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판사 앞에서 제자 다그치고 막무가내 사과까지

노 교사는 기자와 A가 방청석에 들어설 때부터 노골적으로 A에게 시선을 뒀다. 덤덤한 표정이었던 노 교사는 A를 알아본 후 곧바로 낯빛을 바꿨다. 기자가 A의 상태를 살펴야 했을 정도로 노 교사의 표정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불안한 마음은 현실이 됐다. 노 교사가 최후 진술을 하는 중이었다. 마사지 기구가 남자 성기를 닮았다고 말한 체육 교사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A의 실명을 부르더니 매섭게 노려보며 다그쳤다.

"ㅇㅇ아, 너도 (그 교사) 알지? 그치? 어? 알지?"

대답을 종용하자 나경선 부장판사가 "피고인의 진술을 하라"고 제지했다. 노 교사는 행동을 멈췄다. 노 교사는 재판이 끝나고도 A를 찾았다. 그는 방청석에 있는 A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A의 대화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SNS 계정주였던 A에게 당시에 "내 손으로 잡겠다"고 협박을 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트위터 계정 캡쳐(A학생 제공) ⓒ 충북인뉴스


그러면서 노 교사는 "내가 사과를 했으니까 나는 나쁜 감정이 하나도 없어"라면서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 법정을 떠났다. '나쁜 감정'이 있는지는 없는지는 학생들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었다. 가해자에게는 '사과'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폭력'이었다.

선생님이 아프면 폭언해도 되나요?

노 교사 측은 '그가 얼마나 힘든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꽤 긴 변론 시간을 할애했다. 노 교사 측은 우울증 진단서를 재판부에 참고서류로 제출했다. 재판에서 그는 자신의 가정이 겪은 아픔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어머니가 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복수의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노 교사는 이 때문에 우울증을 얻어 학교를 휴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노 교사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게(마사지 기구) 무슨 남자 성기 같다고 그래?"라고 학생들 앞에서 발언한 게 '혼잣말'이었다는 것이다. 먼저 떠난 자신의 가족들이 평소 표현을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자신만은 표현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혼잣말을 하며 푸는 습관이 오해를 낳았다는 게 노 교사의 주장이다. 학생들 앞에서 "섹드립"이라는 단어를 크게 이야기했던 것도, 청력을 잃은 어머니와 몇 년 간 대화하다가 생긴 "크게 말하는 습관" 탓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기자에게 전한 이야기는 노 교사의 설명과 많이 달랐다. 그는 실내화를 신고 등교한 학생에게 "슬리퍼 신고 등교하는 X들은 다 찢어 죽여버려야 돼"라고 말하거나, 학생과 대화하던 중 "머리에 든 것도 없는 X이 공부한다"는 등 폭언을 빈번하게 했다. 그의 주장처럼 혼잣말이었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될 발언이라는 건 분명하다.

재판을 참관한 A는 "재판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울증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폭언을 해도 되는 거냐"라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남학교에서 하던 대로
 

(왼) 서원재단 정문 (오) 운호중,고 건물 ⓒ 충북인뉴스


노 교사는 자신이 여학교에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문제가 됐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노 교사와 그의 변호사의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같은 재단 남학교인 운호중학교, 운호고등학교에서 18년 동안 근무하다가 지난 2017년 3월 처음으로 여학교에 부임하게 됐다. 노 교사의 변호사는 이 점을 강조했다.

"남학교에서 하던 대로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고, 크게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충북여자중학교로 가서 맡았던 업무가 환경주임업무였기 때문에 학생들을 지도해야 했고, 이 때문에 불가피하게 학생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좀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을 거 같아서 수업 중에라도 친근한 이미지로 대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었습니다."

노 교사 스스로도 "남자아이들을 다뤄왔던 터라 실수를 한 걸 인정한다"고 말했다. 남학교에서 교사들이 어떤 발언과 행동을 할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덧붙여 변호사는 "재단이 배려를 해준 것인지 현재는 여중이 아닌 남자고등학교로 전보를 해준 상황"이라고 밝히면서, 피고인이 교직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재판부의 선처를 구했다.

서원재단은 실제 스쿨미투가 터진 직후, 학생들의 고발 명단에 오른 교사 대부분을 재단 내 남학교로 전보조치했다. 노 교사가 남학교에 가면 정말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노 교사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2월 7일 청주지방법원에서 열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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