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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 피해자가 쓴 혐오표현에 대한 기록

[서평]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

등록 2020.01.26 18:04수정 2020.01.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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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켜켜이 겹쳐져 있었던 차별과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시대를 지나, 적극적인 '을들의 반격'이 자연스러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들어 몇몇 드라마나 소셜미디어에서도 이런 소재가 통쾌하고 재미있는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정의 가치를 지향하는 '을들의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숨겨져 있었던 혐오들이 '포스트 트루스'(진실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현상)라는 시대적 흐름에 편승, 뉴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도 하다. 


혐오표현을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유머러스하게 쉽게 받아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재반복된다면 어떨까? 해당 사항이 없는 사람들에겐 휴대전화 안에서 차별과 갈등을 마주할 때 무시하거나 댓글로 '정의구현'을 실현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차별과 갈등'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이 이러한 문제에 수백 수천 번 노출된다면 나의 삶과 나의 주변 인간관계를 뒤틀고 심하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이정희(지은이) 들녘 ⓒ 들녘

 
책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는 전 통합진보당 대표이자 변호사인 이정희가 썼다. 그도 당 해산 이후 끊임없이 '종북'이라는 굴레 속에서 배제돼온 당사자다. 그러나 오히려 법조인의 절제된 언어와 담백한 표현으로 써내려 읽기가 어렵지 않다. 

그는 풍부한 판례들과 국제법상 사례들을 소개하며 혐오표현의 정의와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 간의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쏟아지는 혐오표현에 비해 처벌이 구체적이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이 극심하기 만한 한국사회의 모순에 변화를 일으킬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모욕표현과 혐오표현의 차이

그는 책의 첫 장에서 모욕표현과 혐오표현의 차이에 대해 서술한다. 사실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은 타인에게 격렬한 언어폭력을 당했을 때 이를 쉽게 말해 '혐오표현' 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하게 표현의 격렬성으로 혐오표현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증오와 적의는 모욕표현에 가까울 수 있지만, 사회역사적 열위에 놓인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과 공존의 거절의 의미가 담겨있다면 이는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공존의 가능 여부는 한 사람의 삶의 안정성에도 큰 영향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관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은 단순히 타인으로부터의 생명이나 안전을 침해당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를 넘어 정치적 공동생활 목적을 위한 상호간의 승인을 뜻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상호간의 인정은,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뤄지는 법적 문제와 처벌 여부 또한 모두 헌법적 기본원리인 인간의 존엄을 지킬 권리에서 출발한다. 

혐오발언의 종류

우리나라에서 제일 끈질긴 혐오발언으로는 '종북 빨갱이'가 대표적이다. 이 수식어는, 정치적 반대자나 진보 인사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과거 제주 4.3사건과 보도연맹원 민간인 학살사건,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에 이어 현재는 간첩조작과 민간인 사찰, 내란음모사건으로 이어지는 '종북 빨갱이'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이끌어내기에 매우 위력적이었다.

심지어 '보수 우익'과 '종북 좌익'으로 칭해지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처벌받는 정도 또한 다르다. '보수 우익'의 기독자유당 전광훈 목사는 광화문 집회에서 청와대 진격과 문재인 체포 및 영빈관 접수 등의 내란음모에 가까운 발언을 주도하고, 집회에서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행태를 보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반면, 정당의 활동에서 구체적인 위험성, 실질적인 해악이 드러나지 않았음이 인정된 '종북 좌익'의 통합진보당의 경우 '추정되는 위법성'으로 해산과 당직자의 구속 및 처벌이 이뤄졌다. 이런 차이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대표적 사례는 학술적인 역사왜곡이다. 광주 민주화운동,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연세대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주장한 류석춘 교수는 학술적 객관성과 공정성의 외피를 쓰고 꾸준히 혐오선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는 식민역사부정의 논란의 중심에 있는 책 <반일 종족주의>와 이승만을 미화한 <시간을 달리는 남자>를 2020년 1학기 강의교재로 채택했고, 연세대는 그의 강의개설을 승인했다.

혐오표현의 특징

저자 이정희가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의 사례들은 모두 자유롭고 활발한 정치적 토론이 목적이 아닌, 피해자 또는 소수자가 사회 속에서 인정받고 공존할 권리를 침해한다. 또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끊임없이 합리적 근거가 없는 주장들을 내세운다.  
 
"혐오표현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평균인의 판단인 둔갑한 혐오표현이 '뉴스에도 이렇게 나오던데' '다들 그렇다던데''가 혐오표현을 해도 된다는 근거로 내세워지면, 다수가 혐오표현을 입에 담는데 주저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 "

특히, 혐오표현이 권력이 꽤 탄탄한 주도세력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경우 그 파급력은 더욱 크다고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장된 불안을 확산시키는 가짜뉴스는 여론을 왜곡시키기 쉽고, 촘촘히 줄을 서야 하는 경쟁사회 안에 있는 뇌관을 건드리기 쉽기 때문이다. 

사례는 굉장히 다양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조직화된 극우 정치집단과 극우매체, 극우 종교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뱉어낸 '동성애 혐오' '광주 민주항쟁 왜곡' '세월호 사건 왜곡' 등은 실제로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정확한 사실의 확산 속도보다 더 빠르게 대중에 침투했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 처할 경우, 피해자가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서 상황이 복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저자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 사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미 깔려버린 혐오감정을 뛰어넘고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혐오발언 처벌과 표현의 자유와의 관계

이렇듯, 혐오발언의 자율적 규제가 한계에 봉착한 경우 적절한 형사상 처벌이 꼭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처벌을 통해 특정한 선의 개념을 강요할 경우, 거대 권력의 감시기능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 또한 제기된다. 

그렇지만, 책의 내용에 따르면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혐오표현을 헌법상 표현의 자유 보호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의 발언권 보호에 국한된 '소극적 자유'를 넘어 개개인의 인간존엄 보호와 상호인정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수 집단이 표출하는 혐오표현 자체가 혐오표현을 비판하는 견해를 억누르고 퇴출시키기 때문에, 사상의 자유시장이 있다면 그곳에서 보호되어야 할 것은 '혐오표현'이 아니라 '혐오표현을 거절하고 비판하는 표현'이다."

특히 현 정부에서 제시되고 있는 의사결정형태인 숙의민주주의에는 혐오표현 규제가 꼭 필요하다. 활발한 토론과 비합리적 논쟁의 방지, 소수집단의 배제나 의사표현의 위축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혐오표현의 시장규제가 오히려 표현의 자유 보호와 양립 가능하며, 상호보완될 수 있다고 본다. 그 일관된 기준은 마찬가지로 헌법의 근본 원리인 '인간의 존엄' 보호에 있기 때문이다.   

혐오표현을 없애기 위한 방법

그 시작으로 저자는 혐오표현으로 이익을 꾀하는 정치인들이나 공직자, 정당의 간부, 등록된 언론사 임·직원 등을 처벌할 것 그리고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처벌받았거나 직접 실행, 예비·교사·방조행위를 했음이 공적으로 확인됐거나 확인된 사람을 처벌하는 게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가 구체적인 대상의 처벌까지 제시한 이유는 가해자 또는 권력을 가진 자가 혐오표현을 서슴없이 할 경우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차마 해서는 안되는 말"이라는 심리적 저지선을 없애 버리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대신, 강력한 형사처벌 조치보다 다양한 민간구제 조치 등을 확립하기를 추천한다. 피해자의 경우 공존할 권리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산정을 추가하는 한편, 가해자의 교정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바라보고 있다. 

또한, 자율규제의 본질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법적기준인 '차별금지법' 도입을 주장한다. 이는 혐오발언을 되풀이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효과와 함께, 근본적인 개선에 이바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 다름을 적 내지는 '종북 빨갱이'로 바꿔버리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한다.

혐오발언을 막기 위한 피해자의 숙고

저자는 탈무드의 일화들을 소개하며 우리가 던져야 할 최선의 질문은 '누가 더 큰 피해를 입었는가'가 아니라고 짚는다. "어떻게 해야 누구도 이런 피해를 입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가 피해자의 질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미하게 가담하거나 방관한 많은 사람들에게 까지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은 무리다.

혐오표현이 나온 역사, 구조적 연원이 있고 여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 까지 비난하고 책임을 물으려 해서는, 이들을 '공존할 권리'가 인정되는 사회로 함께 가는 동반자로 만들 수 없다. "

저자 이정희의 말은 일반적인 피해자들이 보기엔 매정해 보이는 말로 보이기도 하겠다. 자신의 피해를 극복하기도 어려운데, 타인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여유라는 것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하지만, 그가 피해자였고. 피해자이기 때문에. 짊어진 아픔이 책임이 되고 변화를 위한 열망이 되기에 그 무거운 말을 입에 담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진 않는다고 하더라. 그렇기에 이 책은 차별 극복에 필요한 낭만적인 목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차갑지만 단단하게 자리잡아야 할 최소한의 법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

이정희 (지은이),
들녘, 2019


#혐오 #차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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