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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 이렇게 막았다

[아파트 회장 분투기 29] 적폐세력 대변할 동대표 0명

등록 2020.01.23 12:26수정 2020.01.2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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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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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자료사진) ⓒ 연합뉴스

 
정상적인 아파트 운영과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는 입주민을 대표하는 동대표들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불법과 비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아파트에서는 공동체 활성화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공동체 활성화는 언제나 상식과 정의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괜찮은 입주민들이 입주자대표회의의 다수를 차지할 땐 아파트가 좋아지다가 그들이 임기를 마치면 나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다시 시원찮은 사람, 몰상식과 탐욕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가 그랬다. 기록을 찾아보니 1990년대 후반 우리 아파트는 아파트 자치운동의 효시와 같은 곳이었다. 당시 발생한 비리 문제를 주민참여로 해결하고 그 에너지를 모아서 재능 나눔과 같은 공동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많은 언론에 주목을 받았다.

개혁되었다가 다시 후퇴하는 것이 아파트의 현실

그런데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사하고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입주자대표회의와 선거관리위원회로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아파트는 빠른 속도로 나빠졌고, 급기야 2000년대 중반 '몸통'이 입주자대표회의에 등장한 후 아파트는 비리와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많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현재는 남기업 회장과 동대표들이 최악의 아파트를 괜찮은 상태로 개혁해 놓았지만 그들이 임기를 마치고 과거 적폐세력들이나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장악하면 아파트가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이지 않겠냐는 걱정이었다.

물론 동대표 중임제한 규정 때문에 이미 여러 번 동대표를 했던 적폐세력들이 동대표가 될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지금의 중임제한 규정은 각 선거구에 두 번 동대표 출마공고를 했는데도 출마자가 없을 시에만 출마의 기회를 주고 있다.

다시 모이는 적폐세력들

그렇다고 안심은 금물이었다. 선거가 다가오니 적폐세력들이 모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들도 어떤 방법으로든 차기 입주자대표회의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이다. 자신들이 동대표일 때 횡령하거나 불법적으로 지출한 돈을 회수하기 위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데, 그 소송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입주자대표회의를 자기들 편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이번 선거는 그들에게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좋은 동대표와 회장을 세우는 것을 내 회장 임기의 마지막 과업으로 삼고 동대표 선거전에 돌입했다.

선거를 제대로 치르려면 선거관리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내가 두 번째 회장으로 무난하게 당선된 것도 당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상식적인 사람들로 채워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들은 선거방식을 투개표 부정이 불가능한 모바일 투표로 바꾸었고,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 애를 썼다. 이런 까닭에 나는 동대표 출마자 모집에 앞서 선거관리위원 후보자부터 물색해야 했다.

2019년 8월 2일에 선거관리위원회 총 7명을 선출한다는 공고가 떴다. 선거관리위원은 동대표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입주민들에게 부탁해서 10명이 지원을 하게 되었다. 7명 뽑는데 10명이 지원했으니 선거관리위원회는 안심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적폐세력 쪽에서 선거관리위원회 후보를 9명이나 낸 게 아닌가. 거기에는 몸통을 위시해서, 내가 첫번째 회장 할 때 동대표로서 나를 말할 수 없이 괴롭혔던 사람 6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중임제한 때문에 동대표 출마는 불가능하니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해서 선출된 동대표들을 통제하는 것으로 전략을 세운 것이다. 선관위를 장악해서 자기들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하는 동대표를 잘라버리겠다는 전략 말이다.

긴장하여 손을 떠는 '몸통'

8월 14일 수요일 저녁 7시에 추첨이 있었다. 지원한 19명 모두 참석하였다. 7명 뽑는데 19명이 지원하다니, 아파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나중에 들으니 추첨 장소인 관리사무소 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한다. 그런데 쉴새 없이 주절거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몸통이었다. 누구보다 긴장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제비를 뽑기 위해 자기 손을 상자에 넣을 때도, 나중에 참석자 서명을 할 때도 손을 떨었다고 한다. 선관위를 자기들이 장악하지 못하면 '임박한 환란', 즉 자기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를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추첨 결과 우리 쪽의 상식적인 사람들 4명, 적폐세력 쪽 3명이 위원으로 뽑히게 되었다. 3:4가 아니라 4:3이 된 건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3명 안에 몸통도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위원장을 누가 맡느냐가 중요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위원장의 의중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위원장을 '몸통'이 맡게 되면 선거가 엉망이 될 것이고 그러면 동대표에 나서려고 할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우리 쪽 4명은 미리 1명을 정해 놓고 회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그쪽에서도 몸통을 위원장으로 생각하고 왔을 것이다. 위원장은 각자 쪽지에 이름을 쓰고 많은 표를 얻은 사람으로 정하는데, 당연히 다수를 점했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정해 놓은 인물이 위원장이 되었다.

'몸통'은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왜냐면 자기가 위원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통'은 우리 쪽 4명 중 2명은 회장 남기업과 무관한 사람이고 2명이 기권하거나 다른 이름을 쓰면 3표를 얻은 자기가 위원장이 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래서인지 그는 선관위 회의 때마다 회장 남기업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입술을 떨면서 말이다. 그에겐 날개 없이 추락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적폐세력을 대변할 동대표 0명

선관위원 구성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었다. 2019년 9월 2일부터 4일까지 동대표 후보자 등록이었다. 나는 모든 선거구에 출마시킬 목표로 후보를 물색했다. 먼저 나와 같이 동대표를 한 사람, 그러니까 현직 동대표 중에 동대표를 한 번 더 할 사람을 찾았는데, 다행히도 4명이 출마하겠다고 결심했다. 또 평소에 '나비정원'에서 꽃 심고 물주는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던 입주민, 초등학교 친구,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내의 친구에게까지 연락해서 동대표를 권유했더니 고맙게도 출마를 결심해주었다. 또 아파트에서 알게 된 어떤 입주민에게 연락해서 동대표 출마를 권유했는데, 결국에는 그가 아니라 그의 아내가 출마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출마를 결심했다가 마지막에 포기하는 사람도 꽤 되었다.

또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정년 퇴임한 시인도 동대표로 출마했다. 2019년 5월 초 수원에서 있었던 '노무현대통령서거10주기' 행사장에서 만났던 그는 거기서 감동적인 자작시를 낭독했었다. 행사를 마치고 회식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다가 같은 아파트에서 산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선거 때가 되어서 연락한 것이다. 처음엔 주저했지만, 감사하게도 결단을 내려 주었다.

이렇게 내가 권유한 사람들,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이 추천해서 출마한 사람들은 모두 합쳐 11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적폐세력 쪽에서는 겨우 1명만 후보로 나온 게 아닌가. 결국 그 1명도 선거에서 떨어지고 우리 쪽 후보 모두가 동대표로 당선되었다. 내가 두 번째 회장 할 때는 적폐세력의 대변자가 3명이나 있었고 그들 때문에 성가신 일이 많았는데, 이제 그들을 대변할 사람이 입주자대표회의에는 하나도 없게 된 것이다.

다음은 회장 선거다. 그러나 동대표 선거에서 적폐세력 쪽이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기 때문에 회장 선거는 걱정이 없었다. 회장은 동대표만 출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자가 3명이었는데 다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누가 당선되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자유는 영원한 경계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

결국 적폐세력들은 선거관리위원회 장악도 실패하고, 입주자대표회의에는 자기 사람을 한 사람도 들여보내지 못했다. 그들은 이제 아파트에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이제 그들은 다가오는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아파트는, 한때 개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동대표일 때는 아파트가 잘 돌아가다가 그들이 임기를 마치면 다시 과거의 부패와 갈등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여 나는 새로 회장이 된 사람에게도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당신의 임무의 범위는 차기 입주자대표회의를 잘 구성하는 것까지라고, 자유는 영원한 경계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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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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