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아나운서는 나이 들면 쓸모 없다? MBC에 묻습니다

[주장]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특별기고 ①

등록 2020.01.29 19:11수정 2020.01.2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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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아나운서라는 직종에서 채용 성차별이 극심하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대전MBC 아나운서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과장된 것이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설마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었습니다. 채용 과정의 성 차별 문제가 불거진 것은 대전MBC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동안 방송에서 나이가 지긋한 연륜 있는 여성 아나운서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문제를 이상하다 인식조차 못했습니다.

그건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아니면 여성 아나운서들의 자의였을까요? 우리 모두 젊고 예뻐야 한다는 기준 아래 여성 아나운서를 소비해 왔던 것은 아닐까요? 오죽하면 한 방송사 직원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 남성 아나운서보다 여성 아나운서에게 빨리 질리고 거부감도 강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고정관념과 시청 태도를 빌미로 지상파 3사 이외의 대부분의 방송사들, 특히 재정이 열악한 지역 방송사들은 입사 과정에서부터 차별을 둡니다. 남성 아나운서는 대부분 정규직, 여성은 거의 모두가 비정규직 또는 프리랜서로 고용하는 것이 합리적 인사이며 경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비정상이고 부끄러운 것이며,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함께 개선하자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쁘고 젊은 여성 아나운서만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 과정에서부터 부당한 진입장벽에 부딪쳐야 하는 상황을 이제 중단해야 합니다.
 
 
제가 일하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정권에서 갖은 탄압으로 공공성을 잃어 버렸던 MBC가 정상화되기를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2017년,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파업하던 MBC 노동자들과 함께 매주 집회를 열고 시민들에게 공영방송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영방송만이 해낼 수 있고 해내야 하는 책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고 우리 사회의 감춰진 부조리와 갑질을 고발하며, 평등과 정의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역할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이 상황은 과연 시민들이 그렇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기대와 염원을 보냈던 MBC의 모습이 맞는지, 아프게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대전MBC 사측은 유지은 아나운서 문제에 대해 채용 성차별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8년에 신입 공채 전체 7명 중 여성이 3명이니 채용 성차별 없다'는 식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 사안은 분명 채용 성차별입니다. 실제 대전MBC는 오랜 시간 유독 여성 아나운서만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고용해 왔습니다.

대전MBC는 자신들만 그런 것도 아니라며 억울해 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은 대전MBC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와 함께 하고, MBC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이유는 '정상화된 MBC', '공영방송 MBC'는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언론사에서 횡행하던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부끄러운 관행이라면, 모두가 쉬쉬하던 그 문제가 불거졌을 때, 법의 틀 안에서만 주물럭거리며 방어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방송계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전MBC 사측의 태도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유지은 아나운서가 맡고 있던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진행자를 교체해 놓고, 그것은 보복성 조치가 아니라 편성규약의 독립성을 보장한 정상적인 개편이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유지은 아나운서의 책상을 치우고, 그에게 줬던 명함은 선물이었을 뿐이라고도 말했다고 합니다.

대전MBC 측에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2018년 한 해의 공채만을 얘기하는 것도, 신입 공개채용 전체 인원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성 아나운서는 나이가 들면 쓸모가 없다는, 대전MBC 사측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뿌리 깊은 성차별적 인식이 그동안 현실로 드러나지 않았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MBC에 거듭 요구합니다. MBC 정상화를 바라마지 않았던 시민들은 MBC 구성원들이 채용 성차별 문제를 상식과 정의에 따라 해결하기를 요구합니다. 대전MBC가 그럴 수 없다면, MBC 본사가 나서야 합니다. 시민들이 MBC와 함께 지키려고 했던 것은 약자와 소수자,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공영방송, 그리고 그 공영방송에서 노동권을 잃어버린 언론인들의 권리였습니다. 우리는 과거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에서 MBC와 함께 했던 그 마음으로,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와 함께 하겠습니다. MBC가 채용 성차별의 근본적 해결책을 함께 찾기 위해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으로,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와 함께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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