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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혐오 부추기는 '신종 코로나' 보도, 괜찮습니까?

[주장] 대중의 공포에 탑승하는 무책임한 저널리즘 그만둬야

등록 2020.01.27 14:45수정 2020.01.2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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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간토) 지역에 일어났던 관동 대지진은 리히터 규모 7.9~8.4의 큰 지진으로, 일본 내무성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만큼 혼란의 연속이었다. 당시 일부 일본 신문들이 조선인에 대한 각종 유언비어와 허위보도를 일삼으면서,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헛소문이 돌았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일본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들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희생자 수는 6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재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혹자들은 '우한 폐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나, 이는 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와 이에 따른 언론보도가 90여 년 전 그때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공포에 기대는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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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대학 중난병원의 집중치료실에서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를 돌보고 있다. ⓒ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27일 0시 기준, 중화권 전역 확진자는 2744명으로 늘었고, 사망자는 80명으로 알려졌다. 피해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공포가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사회적 재난이 일어나면 흔히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인종차별적인 언어들이 난무했다. 사실 명확한 치료법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확산되는 전염병 앞에 대중들은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대중의 공포감에 언론이 탑승하는 경우다.

지난 23일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은 26일 20만 명을 넘어서게 됐다. 26일 SBS뉴스 페이스북 페이지는 해당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은 것을 보도하면서 "미세먼지에 이제 코로나까지 수출하는 중국..?!"이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즉시 SNS에서 거센 비판이 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게시물은 지워졌다. 하지만 이후 사과문이나 입장문은 올라와 있지 않는 상태다.

인사이트의 기사 역시 심각하다. 지난 25일 인사이트는 '국내 첫 우한폐렴 확진 중국인 여성 치료비 정부 전액 부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기사에서는 "한국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세금이 우한폐렴을 국내로 들여온 중국인 여성의 치료비에 쓰이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세금 낭비', '무임승차' 따위의 반응을 독자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끌어내게 만든다는 점에서 굉장히 문제적이다. 

전염병에 대한 치료는 국제적인 공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중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인사이트 기사는 치료비 부담의 근거가 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41조 1항'을 언급하면서도 위와 같은 표현을 담아 기사를 작성했다.


더불어 해당 조항에는 외국인 지원에 대한 부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오해하기 쉽다. 해당 법률 67조에는 국가가 경비를 부담하는 항목이 적혀 있는데, 67조의 9에 따르면 "외국인 감염병환자등의 입원치료, 조사, 진찰 등에 드는 경비"가 국가 부담에 포함된다.

사회적 재난 앞에서 국가가 져야 할 책무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SBS뉴스나 인사이트나 대중의 공포를 이용하여 오해와 편견, 혐오를 불러 일으키기 좋은 방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또 다시 무너진 보도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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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쓰고 입국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네 번째 확진 환자가 발생한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마스크를 쓴 외국인 관광객들이 입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기자협회의 재난보도준칙에는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뿐만이 아니라 급성 감염병 등의 질병 재난에 대해서도 지켜야 할 지점을 강조하고 있다.

언론은 재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기여해야 하며(제5조) 사실 전달 뿐만이 아니라 새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제6조). 또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용어, 공포심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제 16조).

앞서 지적한 인사이트 기사에서도 한국 정부가 중국인을 치료하는 것은 "빠르게 감염병 확산을 막고 조기에 종료시키는 게 사회적 비용 차원에서도 이득이라고 보기 때문에 시행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십시일반 낸 세금' 같은 얘기가 아닌 이런 정보를 강조해서 전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러나 인사이트는 결국 제목은 자극적으로, 내용은 중국인을 탓하는 뉘앙스로 내보내고 말았다. 

다시, 처음 예시로 든 관동 대지진으로 돌아가 보자. 학살로 인해 희생된 조선인들이 많았던 이유는 이를 경계해야 할 일본제국 경찰과 언론이 묵인하거나 동조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24시간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으며 설 연휴 기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며 경계를 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언론의 역할이 중요해지기 마련이다. 과연 잘못된 언론의 전철을 9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밟을 셈인가.
#전염병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관동대지진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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