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산다] 비건과의 점심 식사

채식을 하면서 생긴 변화

등록 2020.01.28 13:45수정 2020.01.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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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채소와 과일 ⓒ 백두산

 
나는 요즘 비건(Vegan; 절대적으로 식물성 음식만을 먹는 식단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완전한 혹은 절대 채식주의자라고도 한다)인 친구와 점심을 함께 먹는다. 이유인즉슨, 우리 모두 어찌 됐든 매일 요리를 하고 있고, 혼자 밥하고 반찬을 만드는 데 정해진 시간 안에 맞추기가 힘들어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혼자 요리하고 혼자 먹는 것이 별로 즐겁지 않은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우리 둘만 먹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기숙사에는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하나 있다. 우리는 그곳을 '공동의 공간(Common Room)'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곳에서 점심을 함께 먹자고 모두를 초대했다. 처음에는 한 둘이 와서 함께 먹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우리 둘만이 남았다.


그렇다고 실망한다거나, 마음이 상하지는 않는다. 함께 무언가를 규칙적으로 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어쨌든 그러한 연유로 브라질에서 온 매튜(Mathew)와 월요일에서 금요일 점심 식사를 함께한다. 이 친구는 나보다 2살이 많지만 덩치도 크고 생각하는 것도 깊어서 나이를 떠나 큰 형같이 느껴진다. 그렇게 비건과의 점심식사는 시작되었다.

 

채식으로 구성된 한 끼 식사 이곳에서 먹는 흔한 식사입니다. ⓒ 백두산

 
매일 아침 우리는 어떤 것을 요리할 것인지 상의한다. 크게 복잡할 것이 없는 것이 밥을 지을 것인지 아니면, 달(dal; 인도의 음식 중 하나로 깐 녹두와 야채를 넣어서 걸쭉하게 만드는 음식)을 요리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둘 중 하나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어느 것을 고르든 요리하는 시간은 30분 안쪽에서 끝이 나는 간단한 요리이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비건과 함께하는 식사이기에 고기-생선을 포함한 어떤 동물성 기름이나 식품도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나에게는 힘들 것이 없는 것이 나는 이곳에서 고기나 생선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고기나 생선을 구해서 요리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 한 이유이고(이곳은 채식주의자들이 많아서 특정 장소에서만 고기나 생선을 구할 수 있다), 다른 이유는 이미 채식을 하는데 익숙해져서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다.

단지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요리를 하는 데 사용할 오일을 정하는 데 있다. 보통 나는 이곳에서 요리할 때 기(ghee; 정제 버터)를 쓰는데, 이것이 우유에서 나온 음식이고 우유는 소에서 짜내기 때문에 동물에서 나온 음식을 일절 먹지 않는 비건은 이것 또한 먹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식물성 오일을 선택해서 써야 한다. 그래서 점심에는 참기름이나 코코넛 오일 또는 올리브 오일을 사용한다. 그 외에는 따로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은 없다. 나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나도 어느 정도 비건에 굉장히 근접한 식단을 꾸려가고 있었다. 

흔히 내가 인도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보통 약간은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왜?!"라며 놀라거나, 안쓰러운 듯이 쳐다본다. 그런 반응이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것이, 살면서 한 번도 고기를 먹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을 가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나도 인도에 오기 전에는 그런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이해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고기와 생선을 먹는 문화권에서 자랐으니, 그 외의 것을 생각하거나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사람들이 채식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고기와 생선을 많이 먹어온 내가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겪은 약간의 경험담을 나누고자 한다.

처음 내가 인도에 와서 고기를 먹지 않기 시작한 건, 첫째로 고기를 구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닭고기를 사려면 특정 지역(무슬림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가야 한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닭을 죽이는 모습을 봐야 하기에 시작부터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손질을 하고 피를 빼고 간을 하는데만 3-4시간이 훌쩍 소요된다. 거기에 요리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적어도 하루 반나절을 소비해야만 닭고기 한 접시를 내 입안에 넣을 수 있게 된다. 10분이면 없어질 것 때문에 하루 반나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요리하고 고생하느니 먹지 않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직접 요리하지 않고 가끔 고기를 요리하는 음식점에 한 번씩 가서 먹게 되었다. 

둘째로 이곳에서 고기를 먹으면 소화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자주 소화불량으로 고생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이것에 대한 이유는 나중에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고기를 먹는 것을 잘 생각해보면, 왜 내가 이곳에서 고기를 소화하는 것이 어려웠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고기를 먹을 때 마늘과 술 그리고 발효음식(김치나 장아찌 등)을 곁들여 먹는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먹는 음식이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고기, 생선)을 잘 소화하게 도와준다. 기후나 지역의 영향 또한 한몫을 한다. 내가 지내는 이곳은 덥고 건조한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으로 소화력이 약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고기를 먹는 횟수가 줄었다. 

세 번째 이유는 주위의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을 기회가 적어지고, 나중에는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환경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흡연자가 흡연자들과 함께 지내면 더 많은 담배를 피우게 되고, 비흡연자들과 함께 생활하면 피우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이 환경 설정의 힘이다. 주변에서 다들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하면 나도 자연스럽게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같은 이유로 나도 자연스럽게 채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던 내가 몇 년 전부터 인도에서는 거의 채식을 유지하고, 한국에 가서도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횟수로 고기를 먹게 되면서 이루어진 변화는 살이 빠진(사실 너무 말랐다고 살을 더 찌워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외형적인 변화와 감정적 기복이 적어지고 정신이 명료해진 내적인 변화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이 단지 채식을 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른 기후와 지역에서 생활하고 다른 종류의 음식을 다른 방식으로 조리해 먹는 것과 계속해서 읽고 공부하는 환경에 속해있었다는 점들이 부가적인 요인에 속할 것이다. 그럼에도 채식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 외적인 그리고 내적인 변화를 관찰하고 목격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하는 일보다는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이 많은 나에게 소화하기 힘든 음식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채식은 나에게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이것 또한 개개인에 따른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음식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내가 속한 문화와 삶의 방식에서 잠시 벗어나서 바라볼 수 있는 것으로 꽤나 많은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곳에서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살아온 사람들과 교류하며 내가 'A=B'라고 철석같이 믿어온 사실들이 우리나라와 문화에 국한된 것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다름을 더 많이 보고 느끼며,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조금씩 넓어진다. 매일매일에 배움이 넘쳐난다. 그래서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중복게재 합니다.
#인도에산다 #비건 #채식 #식사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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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대학 아유르베다 전공. 인도 아유르베다 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 후 동 대학원 고전연구학 석사를 마치고 건강상담, 온/오프 특강을 통해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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