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3년생-93년생 서울 살이 비교

등록 2020.01.30 16:15수정 2020.01.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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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광주는 아니고 더 남쪽으로 가면 있는 도시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서울로 와서 거처를 옮겼다. 스무 살 서울 살이는 꽤나 낯이 설었다. 서울 말씨 쓰는 사람들 틈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도 어색하고, 지하철이라는 것을 일상적으로 타고 다니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면부지의 타지에서 스스로 먹고, 자고, 입으며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막막하고 적적했다.


그때 처음 살았던 곳은 다니던 학교 근처 교회에서 마련한 반지하 방 두 칸짜리 작은 빌라였다. 그곳에서 총 4명이 함께 살았는데, 내 위로 형들 세 명이 룸메이트였다. 보통 '교회 학사'라 불리던 그곳에서 매월 5만 원의 아주 기본적인 생활비만 내고 지냈다.

지방 학생들을 위한 교회의 파격적인 혜택 덕분에 서울 살이의 주거 생활비가 비현실적이었던 이유로, 주변 친구들에게 내 사정을 꺼내 놓기가 약간은 민망했다. 그때 하숙집 월세는 보통 30만 원에서 40만 원까지 됐었고, 고시원은 그보다 10만 원 정도 저렴했다. 원룸에 들어가려면 보증금 1000에 월 50은 기본으로 생각해야 했으니까. 기숙사를 살지 않는 이상, 지방 학생들의 서울 살이 비용은 웬만한 가계에 적잖은 위협 요소가 되었다. 2002년의 일이다.
 

93년생 이철빈 씨의 서울 살이를 듣기 위해 얼마 전 입주했다는 사회주택 '앤스테이블'에서 만났다. ⓒ 김재광

 
93년생 2020년 서울 살이 

이철빈씨는 1993년 구미에서 태어났다. 대학은 울산에서 다녔고,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을 잡은 것은 2019년 3월의 일이다. 철빈씨는 지금 공간 공유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앤스페이스'에 재직 중이다.

서울로 오기 전 직장을 먼저 구했다. 그 나중에 서울에서 살 집을 알아보던 중, 셰어하우스 온라인 플랫폼을 뒤적거렸다. 몇 군데 직접 답사도 하면서 물색해 보았다. 첫 거처는 월세 25만 원에 비교적 저렴하고 깔끔한 셰어하우스였다. 그리고 얼마 전 거처를 옮겼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운영사로 참여한 서울사회주택리츠 1호, '앤스테이블 대치'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앤스테이블은 강남 대치동 언덕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대치는 원래 '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 언덕이 보통 생각하는 여느 언덕과는 다르다. 마천루와 네온사인이 '대치'를 온통 매웠다. 그 틈 사이로 난 금싸라기 땅을 서울시와 SH공사, 운영사 '앤스페이스'가 청년들을 위한 사회주택을 지어 보자는 뜻으로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해서 사회주택 앤스테이블이 탄생했다.


1층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카페와 바가 열려 있고, 2층은 공유 오피스가 들어 차 있다. 3층부터 6층까지는 주거 공간이다. 철빈씨가 사는 방은 투룸과 비슷한 구조인데, 주방과 화장실은 공유하고 침실은 단독으로 사용한다. 생활 전자제품과 기본 가구는 모두 제공된다. 보증금의 70% 정도를 무이자 대출로 받을 수 있고, 입주자 월세 부담은 주변 시세의 80% 이하까지 내려간다. 2019년 현재의 일이다.
 

서울서 지낼 곳을 찾다가 셰어하우스 플랫폼을 만났다. 두번째 거처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운영사로 참여한 사회주택 1호 '앤스테이블'로 정했다. ⓒ 김재광

 
83년생 버전 NGO 단체, 93년생 버전 스타트업   

다시 2002년으로 돌아간다. 83년생의 이야기다. 스무 살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중간에 군대도 다녀오고 졸업은 2008년도에 했다. 졸업 후에는 NGO에서 일할 생각이 컸다. 그때 눈앞에 보였던 진로는 대개 무슨 무슨 '단체'로 통칭되는 곳들이었다. 각각의 단체들은 제 나름의 가치로운 활동을 표방하고 있었고, 범주로 나누자면 손으로 꼽히는 몇 가지 카테고리 안에 모두 포함될 수 있었다. 환경, 노동, 평화, 통일, 종교, 등등...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간사로 불리었다.

주변에 ngo 계통에서 일하는 또래의 무리들은 모두 간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고, 어쩐지 말투와 옷차림도 비슷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일했던 곳은 그 범주에 속하는 단체들이었고, 거기서 모두 간사로 일했다. 세 번째 지금 일하는 곳도 역시 같은 분류에 속하는 곳이다. 대신 지금은 간사는 아니고 팀장이 되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철빈씨도 2017년 학부 3학년의 반환점을 돌면서 진로 고민이 많았다. 너도나도 선호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가기 위해 맹목적인 취업 활동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남들이 말하는 조건좋은 직장, 안정적인 직장 대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NGO 단체들도 눈여겨보았다. 졸업 전에 인턴 생활도 경험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고민이 생겼다. 우선 두 가지가 걸렸다. 첫 번째 질문은, '지속 가능한가?'였다. 나이가 40대, 50대가 되어도 여기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졸업하자마자 단체의 간사로 입문해 10년, 20년을 한 단체 내지는 유사 관련 단체에서 경력을 쌓으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되뇌면서 질문을 해 봤는데, 영 답이 시원치가 않았다. 솔직히 불안해 보였다.

두 번째 질문은, '배울 수 있을까?'였다.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나도 무언가 특수한 영역의 지식이나 경험을 배움으로 터득하고 싶은 동기가 컸다. 그런 점들을 두루 보장하고 장려하는 곳을 찾고는 싶은데, 답을 얻기 쉽지 않았다.

졸업을 1년 남겨 놓고 스타트업 창업 경험이 있는 형과 대화 나눌 기회가 있었다. 형의 제안을 따라, 서울에서 진행되는 사회혁신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혁신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다양한 스타트업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대표도 그즈음 처음 만나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전율이 일었다.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으면서도,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고, 구성원들이 위계나 권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일도 하고 서로의 역량도 개발해 나갈 수 있다는 밑그림이 그려졌다.

머릿속 구상이 구체화하면서, 몸은 쉽게 움직였다. 인터뷰 이후 이 회사에 반드시 취업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학교로 돌아가 사회혁신과 부동산, 임팩트 투자 등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회사의 연구 프로젝트 내용을 졸업논문으로 써보지 않겠냐는 대표의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졸업 학기에는 유휴 부동산을 활용하는 새로운 부동산 모델에 대해서 연구했다. 졸지에 취업 준비가 아닌, 졸업논문 쓰느라 무척이나 바쁜 이상한 4학년이 되기는 했다. 덕분에 논문주제는 서울연구원에서 주최한 작은연구 좋은서울 사업에 선정되어 정식 보고서로 발간되었다. 그리고 2019년 3월 그 스타트업에 첫 출근을 하였다.
 

"제 또래 백 명이 있다면, 백 명의 이야기가 있겠지요." 밀레니얼 세대론에 대한 철빈 씨의 생각도 한편으로 들을 수 있었다. ⓒ 김재광

 
밀레니얼? 글쎄요... 

2020년 1월, 서른일곱의 각종 단체 간사 경력 10년 차와 스물일곱의 스타트업 신입 1년 차가 한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절묘한 인연 때문이었다. 83년생 팀장이 일하는 단체에서는 지금 기독교 기반의 실험적 대안 금융 운동을 벌이고 있다. 스웨덴 야크은행(JAK)을 모델로, '희년은행'이라는 협동조합형 자조 금융을 만들어 무이자 저축과 무이자 대출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청년들 대상으로 무이자 전환 대출과 주거 보증금을 지원하는 대출 프로그램도 있는데, 철빈씨는 이 은행의 조합원이다. 최근 두 번째 거처 앤스테이블로 이주를 하면서, 주거 보증금은 그동안 희년은행에 출자해 놓은 출자금으로 충당했고, 이사 비용 및 기타 쓰는 비용은 조합원 대출을 이용했다. 이번 만남은 그 대출 사례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83년생 팀장의 제안으로 성사된 것이었다.

철빈씨에게 물었다. 왜 이 은행에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이번에 출자금 활용이나 대출 이용 사례는 이 은행의 운영 취지와 걸맞는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꼭 NGO에서 간사로 10년 정도 일한 자가 던질 법한 질문들이다.

철빈 씨의 대답은 의외였다. 실익이 있어 보였다는 것이다. 희년은행 조합원에게 주어지는 대출 포인트가 매력적이었다고 답했다. 그래서 목돈이 들어오면 일부러 희년은행에 출자를 해 왔다는 속사정도 전해 주었다. 고금리 부채 때문에 힘들어하는 또래 청년들을 돕는 취지도 좋지만, 당장 조합원으로 가입했을 때 나에게 주어지는 혜택에도 눈길이 간다는 것이다.

남을 돕기 위해, 사회적 의미를 위해, 그야말로 좋은 일에, 후원도 하고 참여도 하는 것이 의미 있기는 하지만, 철빈씨의 생각은 여기서 조금 더 나간다. 실익. 나에게도 혜택이 돌아오는 일이면 좋겠고, 그걸 통해 나도 뭔가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83년생 단체 경력 10년 차 팀장은, 철빈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서울 살이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회적 의미 창출을 위해 비영리단체나 스타트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이들의 진로 선택과 직업 활동의 반경 내지는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93년생 스타트업 1년 차 철빈씨는 사회 혁신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자기 삶과 사회에 대한 일종의 투자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언뜻 실속을 먼저 차리고 자기계발만을 노리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을 그런 말들이, 왜인지 그저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의 계산법으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이것이 소위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려나? 하지만 철빈씨는 이 질문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밀레니얼? 글쎄요... 제 또래 백 명이 있다면, 백 가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밀레니얼 세대를 손쉽게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는 저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뿐이고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희년은행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희년은행 #야크은행 #앤스테이블 #앤스페이스 #밀레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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