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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서 민주당 의석 확대하면 개혁 드라이브 다시 걸어야"

[인터뷰]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등록 2020.02.03 08:32수정 2020.02.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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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교수는 경북 영주 출신의 사회학자다. 그는 지난 2004년 한겨레신문 선정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으로 뽑혔고, 2006년에는 제20회 단재상을 수상했다. 그의 저서 가운데 한국의 민간인학살 문제를 다룬 <전쟁과 사회>는 지난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뽑은 '한국의 책 100권'에 선정되었다. 더불어 이 책은 지난 2010년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을 대표하는 '동아시아 100권의 인문도서'로 선정됐으며, 독일어, 영어, 일본어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김동춘 교수가 지난 1월 26일부터 27일까지 영국에 사는 필자의 시골집을 방문했다. 그가 1박 2일간을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그에게 내가 살고 있는 영국의 시골 구석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또 조용한 카페에서, 또 시끌벅적한 선술집에서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는 올해 1월을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특강을 하면서 보냈다. 다음은 지난 이틀간 그와 나눈 여러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기자와 인터뷰 중인 김동춘 교수(왼쪽) ⓒ 김동춘


"한국, 여전한 경제제일주의... 환경·에너지·식량안보 관심 없어"

- 올해 1월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어떻게 강의하게 된 건가? 강의 주제는 무엇인가?
"학생 대상의 강의, 교수나 연구자들이 참석하는 세미나 등 총 다섯 번의 발표행사가 예정돼 있다. 나를 초청한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이 원래 4번의 강의 세미나를 요청했는데 파리7대학에서 '한국의 분단과 북한'이라는 강의를 하나 더 요청했다. 네 번의 강의와 세미나는 내가 한국에서 해온 작업 중 프랑스인들이 관심 가질 만한 주제로 선정했다. '분단과 전쟁정치', '한국의 이행기정의', '민주주의의 위기', '한국전쟁 70년'이 네 가지 주제다."

- 파리대학에서 프랑스인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느낀 점은? 또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파리7대학의 학부 2~3학년 한국학과(다른 과 학생들도 들으러 온 듯)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인상적이었다. 나의 서툰 영어강의가 이들에게 얼마나 정확히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00여 명의 학생들이 매우 진지하게 수업을 들었고, 현재 북한의 핵개발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언론의 편향된 보도 때문에 북한과 김정은 체제에 대해 매우 일방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강의를 진행했다. 분단과 한국전쟁이 어떻게 오늘의 북한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오늘 한국의 청년들이 남북한 분단문제에 무관심한 상황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대학 한국학과에는 한류에 대한 높은 관심 등으로 130명 입학생 모집에 1000여 명이 몰려왔다는 소문도 들었다. 어쨌든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했다."

- 우리나라가 세계평화와 환경위기 문제에 대해서 어떤 대책도 없는 2류 국가에 불과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또 우리나라가 세계평화나 환경위기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개발주의와 자국중심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과 냉전이 한국인들의 사고를 한반도의 틀 내에 머물게 만들었고, 김대중 정부 이후 문재인 정부까지의 민주정부도 박정희식의 개발주의로부터 제대로 이탈하지 못했다. 지식인들은 물론 언론도 국제뉴스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고, 학교에서도 국제문제를 다루지 않아서 거의 모든 국민이 인류가 오늘 부딪친 문제, 한국이 지구의 환경위기나 분쟁과 갈등 등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 문제의식이 없다.

가장 중요한 책임주체는 주요 보수언론과 정치권일 것이다. 국내 정치 투쟁에 사활을 걸고 있으니 막상 앞으로 한국이 맞게 될 환경, 에너지, 식량안보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다. 경제제일주의가 그들의 유일한 철학이자 가치이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들이 청소년 인권문제를 유엔에 제소하고 기후위기 관련 시위까지 하는 것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변화다."


- 1월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연금개혁 반대파업을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사회학자로서 느낀 점은? (관련 기사 : "얼마 안 쓴 젊은 대통령 중고로 팝니다")
"연금개혁안이 워낙 복잡해서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논평할 능력과 자격은 없다. 수령 연령을 늦추고, 직업별로 복잡한 연금구조를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고, 국가 재정위기를 극복하자는 게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적주의에 기반해 대학 및 연구자들을 평가하는 건 신자유주의적인 성과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대문제가 결합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처럼 특권화된 부분이 있다면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현재 연금구조가 일종의 세대 착취적 성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연대주의에 기초한 사회복지체제가 개인주의와 성과주의로 가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 같다. 특히 연구자들에 대한 평가체제의 변화는 한국에서 이미 20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이라, 그 결과가 매우 우려스럽다. 한국은 이러한 성과주의 때문에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대학과 지식사회가 망가진 상태다. 그 점에서 프랑스는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공수처 설치 등은 현대사 대사건... 사법판결 통제도 있어야"

- 지금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법개혁도 시급한 것 같다. 검찰·사법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의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지?
"공수처 설치, 검찰권한 축소, 검경수사권 조정은 70년 현대사의 대사건이다. 이 정부의 최대의 성과라 생각한다. 단지 경찰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특히 점진적인 자치경찰제도의 도입이 필요할 것 같다. 사법개혁은 아직 진도가 거의 나가지 않았다. 법원행정처 개편 등 행정 권력의 사법지배를 막을 수 있는 입법 작업이 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 같고, 사법판결에 대한 시민적 통제방안이 추진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더라도, 정치의 사법화 현실은 극복되기 어려운데, 결국은 정치가 제자리를 잡아야 사법도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특권의식과 엘리트의식으로 가득 찬 청년들이 사법부를 채우는 이 현실은 매우 심각한데, 로스쿨과 변호사 시험제도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검찰과 사법의 정치화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고 심각한 것은 검찰과 사법의 강자편향, 계급편향의 극복이다."

- 인혁당 사건에서 간첩조작으로 8년간 억울하게 옥살이 한 이창복 선생이 그 후 재심결과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배상금이 과다 책정됐다'는 박근혜 정권의 조치로 인해 지금까지 국가에 의해 '빚 고문'을 받고 있다. 이런 분의 억울한 상황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나 몰라라'하고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민간인학살사건 피해자인 채의진 선생도 이것으로 무척 고통을 받다가 결국 일찍 돌아가셨다. 정부 예산 부족을 명분으로 한 박근혜의 검토지시 한마디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기억한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통령이 정치적 조치로 원상회복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법원의 무리한 납부 독촉을 중지할 수 있도록 특별조치를 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국가가 참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지난 1980년대 재일동포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김병진 선생은 이렇게 하소연 한 적이 있다. "한국의 법체계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는데도 내가 법적으로 구제나 보상받을 길이 전혀 없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이런 분이 보상받을 길을 마련해 줄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관련 기사 : 니 마누라 윤락녀 만들고... 내 인생을 망친 고영주)
"'지연된 정의가 정의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사실 지연된 정의가 정의에 최대한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국가가 최대한 원상회복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진실위 등을 통한 진실규명은 기존 사법부에 의해서도 다시 심판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진실위의 기능은 보조적이고, 과거의 검찰 사법부 등 정부기관은 또다시 심판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법원이 재심을 하게 된 것 자체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사법부에 또다시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절망스럽게 생각했다.

여순사건 피해자들은 72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고, 판사가 사죄했다고 신문에 크게 보도했지만 검찰과 사법부가 그동안 무슨 기여를 했단 말인가? 사건의 진실규명에 앞장선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등 시민단체와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벌인 진실위가 없었다면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런 중요한 업적은 슬쩍 빠지고 사법부의 판결만 부각되는 이 현실에 대해 나는 큰 허탈감을 갖고 있다. 유족들도 이런 시민사회나 진실위의 역할들은 무시하고 변호사들만 대단하게 여긴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사법부가 정의로운 역할을 하는 길은 멀고 험하다. 피해자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으나 국가권력 자체가 이러한 한계를 갖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권변호사가 와도 이런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유족들은 물론 시민사회가 이런 문제에 대해 더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 지난 2013년 개정안이 발의된 과거사법은, 연로한 유가족들이 속이 새카맣게 타가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7년 째 국회를 표류 중이다.
"한국당의 반대보다는 민주당의 의지부족이 더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2000년 이후 몇 년 동안 1기 진실위 설립을 위해 활동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유족 내부의 분열, 시민사회의 동력이나 여론의 지지를 제대로 얻지 못한 것도 한계로 보인다. 1기 진실위 유족들은 수십 년 생업까지 포기하고 투쟁을 했던 분들이다. 이런 운동의 이력이 지금 유족들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 않다."
 

파리대학에서 강의 중인 김동춘 교수 ⓒ 김동춘


"집권 초기 100일 동안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가장 큰 문제점, 개선이 절실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불평등, 주거 빈곤, 수도권집중, 지역공동화, 청년실업, 청소년의 과도한 입시 압박과 미래 불안, 높은 노인자살률, 저출산, 소외감 등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중 첫째는 심각한 불평등과 집값 상승에 의한 불로소득이 제대로 환수되지 않는 일이라고 본다. 저출산, 주거 빈곤, 지방소멸 등도 사실 같은 문제다.

청년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좋은 나라인데, 한국은 청년들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나라다. 이 문제는 정치가 풀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과 관료 집단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남유럽형의 저복지, 가족책임체제로 가까이 가는 데서 생겨난 현상이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할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 '문재인 정부의 비판적 지지자'로 알려져 있는데, 문재인 정부가 지금 비판받아야 할 점은 무엇이고 지지받아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초기 1년, 아니 집권 초기 100일 동안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노무현 정부의 트라우마, 그리고 한국당과 조선일보의 반격을 과도하게 의식한 결과라고 본다. 부동산 정책이 가장 대표적이다. 지금 강남 집값이 내려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불로소득이 생겼다. 주거불평등은 지난 3년 동안 매우 심각해졌다.

검찰 문제, 조국 문제 등은 일반 대중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과 심화된 불평등에 견주어 보면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교육 문제에 대한 무대책도 이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나 최저임금 문제는 세밀한 준비 부족으로 성과가 반감됐다. 톨게이트 노동자 문제 등 법원 판결을 공기업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남북관계 적극성, 대미관계에서의 자주성 견지 노력, 검찰개혁 의지 등은 높이 사줄 만하다.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북한 개별 관광을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남북한 관계만 잘 풀어도 이 정부의 업적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검찰개혁은 큰 진전을 거두었다. 사법개혁 시동을 걸어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확대하면 개혁의 드라이브를 다시 걸어야 한다."
#김동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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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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