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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사라지는데 거기 꼭 도서관을 지어야 합니까

[주장] 도시공원 일몰제로 녹지는 줄어드는 상황... 친환경 건축은 대안이 아닙니다

등록 2020.02.02 19:27수정 2020.02.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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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을 만난 시민들 ⓒ 명일근린공원자연환경보존공동행동

 
지난해 12월 28일 강동구 아트센터 앞은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2020년 예산설명회'를 하기 위해 모든 자치구를 돌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그들의 손에는 커다란 현수막과 손 피켓 등이 쥐어져 있었다.

'명일근린공원(상일동산) 시설물 건립계획을 철회하라'
'강동구청은 도시공원 녹지를 보존하라'
'서울시는 비오톱 2등급 지역의 시설물 설치를 불허하라'


이상한 점은 시위에 나선 이들의 상당수가 지역에서 꽤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박원순 시장을 열렬히 지지하던 시민들이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최 측에 따르면 집회신고를 하자마자 강동구청에서 전화가 와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오는 7월부터 시행될 도시공원 일몰제와 관련이 깊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시행
 

명일근린공원 ⓒ 명일근린공원자연환경보존공동행동

 
'도시공원 일몰제'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했지만, 20년이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았을 경우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는 제도다.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가 '지자체가 개인 소유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도시계획법(4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올해 7월 1일부터 해당 부지는 공원 지정 시효가 해제된다.

문제는 이렇게 해지될 공원 부지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대도시 서울의 경우 그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데 일몰제로 인해 사라질 공원이 117.2㎢로서, 이는 서울 도시공원의 83%, 여의도 면적의 33배 크기에 해당한다. 안 그래도 부족한 도심의 녹지가 한순간에 사라질 위험에 처한 것이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우고 있다. 대중들에게 일몰제의 문제점을 알리는 공익광고를 하고 있으며, 대상 부지 중 25.3㎢를 매입해 공원으로 유지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24.8㎢를 제외한 나머지 67.5㎢에 대해서는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서울시의 노력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도시자연공원구역은 일몰 기한이 있는 도시계획시설과 달리 유지 기간이 별도로 없고, 정부의 보상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되더라도 단계적으로 보상에 나설 계획이지만 과연 그 토지의 주인들이 그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지는 알 수 없다.

황당한 사실은 이런 서울시의 노력에 찬물이라도 끼얹으려는 듯 몇몇 자치구가 앞장서서 부족한 도시공원에다가 건물을 지으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동구도 그중 한 곳이다.

도시공원에 공공도서관을?
 

강동구는 도서관 건립을 재고해야 한다 ⓒ 명일근린공원자연환경보존공동행동

 
현재 강동구는 명일근린공원 안에 공공도서관을 짓기 위해 서울시 공원조성계획 변경 심의를 준비하고 있다. 강동구가 도서관 부지로 점찍은 곳은 비오톱 2등급 지역으로서 그동안 많은 시민들이 도시공원으로 애용하던 곳이다. (*비오톱은 특정 식물과 동물들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뤄 생존할 수 있는 생물서식지다. 서울시는 2010년부터 총 5개의 등급으로 비오톱 유형을 구분해 지정하고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조례 제24조에 따라 비오톱 1등급지에 대한 일체의 개발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구청의 개발 논리는 간단하다. 고덕주공아파트의 재건축으로 인구가 증가할 예정이니 고덕, 상일동 지역의 부족한 독서문화 인프라 확충을 위해 도서관 건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청은 작년 10~11월 주민설명회 및 주민의견수렴을 거쳤으며, 이를 근거로 도서관 건립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도시공원 일몰제가 예정되면서 강동구의 녹지가 많은 부분 상실된다는 것이다. 서울환경연합에 따르면 이번 도시공원 일몰제로 강동구의 고덕산 82%, 수영산 50%, 일자산 58% 등 많은 도시공원 부지가 사라질 위협에 처해있다. 안 그래도 강동구의 녹지율은 고덕, 둔촌동의 재개발·재건축, 포천-세종 간 고속도로 건설 등으로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는데, 도시공원 일몰제는 결정타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구청이 나서서 멀쩡한 녹지를 훼손하고 공공도서관을 짓겠다고 나서니 많은 시민들이 반대할 수밖에 없다. 구청은 주위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거치면서 행정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건축을 친환경으로 하면 괜찮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굉장히 행정편의적인 발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 도시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주위에 사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아무리 친환경 건축이라고 하더라도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이번 구청의 결정에 더 크게 분노하는 이유는 도서관 부지의 대안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존 재건축되기 전 주공아파트 4단지 옆에 있었던 테니스장이 바로 그곳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구청은 구청장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는 꼭 복합문화시설을 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테니스장 부지에 도서관을 지으면 주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아파트의 조망권이 저해되고, 교통 흐름이 저해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그와 같은 문제는 복합문화시설을 지어도 똑같이 벌어질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 공간에 도서관과 복합문화시설을 모두 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는 없는 것일까?

부디 구청은 재고하길 바란다. 복합문화시설도 중요하지만 미세먼지 저감 정책도 구청장의 중요한 공약 아니었던가. 숲만큼 미세먼지 저감에 좋은 것도 없다. 그런 숲을 없애고 친환경 도서관을 짓는 것은 분명한 예산 낭비이며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사고방식일 뿐이다. 또한 서울시도 이와 관련하여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한 기조를 확고하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숲도 우리의 도서관이다.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암사생태공원 조성에 3만3334평을 쓰면서 도서관 건축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정책과 가치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고덕 주공 아파트 단지 재건축을 하면서 수십 년 된 나무를 마구 베는 과정을 힘없이 지켜보았던 주민으로서 가슴이 아팠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무력했던 우리가 이번에는 공공이 그를 자행하려는 것을 목도해야 한다. 어디까지 내어주어야 하는가. 왜 정책은 공공선을 목표로 하지 않는가." - 집회 참석 시민 
#강동구 #명일근린공원 #도시공원 일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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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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