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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에게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절

[유네스코 세계 유산 한국의 산지승원 6] 한국 최고의 불보사찰, 양산 통도사

등록 2020.02.05 11:08수정 2020.02.0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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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총림 통도사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불보 사찰인 양산 통도사 ⓒ 변영숙



조성기 작가의 <통도사 가는 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왜 통도를 '通道'로 알았을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통도사의 통도는 '通道'가 아니라 '通度'다. 통도사가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을 하던 인도 영취산과 통하기 때문이고, 또 승려가 될 사람은 모두 이곳 금강계단에서 수계의식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도사는 부처에게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 본 통도사는 영축산 기슭에 건설된, 엄격한 부처의 계율에 의해 지배되는, 부처의 왕국 자체라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영축산문'을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소나무들은 2007년 처음 통도사를 찾았을 때보다 10년의 세월이 덧대어져 관록과 원숙미로 빛나고 있었다. 한겨울이었지만 소나무의 청아한 기상은 결코 퇴색됨이 없었다. 인간과 달리 늙을수록 멋을 더하는 나무들을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저절로 포행의 시간이요, 수행의 시간이다. 통도사 '무풍한송로'는 산림청이 선정한 '아름다운 숲' 대상을 수상한 명품 숲길이니 만큼 한번쯤은 온전하게 걸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남녘의 겨울은 포근했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겨울 추위보다는 코 앞에 다가와 있는 봄냄새가 풍겼다.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도 봄을 알리는 듯 경쾌하기만 했다. 경내의 넓은 주차장마다 빼곡하게 주차된 차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도사를 찾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이곳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리라.

통도사,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
  

영축총림 통도사 해발 1,081 m 의 영축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된 금강계단을 있는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이다. ⓒ 변영숙

 
646년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통도사는 법보사찰인 해인사,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보사찰 중의 하나인 불보종찰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인 불법, 그리고 그 불법에 따라 수행하는 스님을 일컬어 불교의 가장 중요한 보물, 즉 3보라 하는데,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불보사찰이다. 부언하자면 부처가 모셔져 있는 사찰이다.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정골사리와 치아사리 3과와 금란가사를 봉안해 금강계단을 세우고, 출가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도록했다. 그후 통도사는 불교 계율의 근본 도량이 됐고 신라의 승단을 체계화하는 중심 사찰이 됐다. 

일주문 주련에 적힌 '불지종가 국지대찰'이라는 문구가 강원, 율원, 선원의 수행체계를 갖춘 통도사의 위엄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통도사의 가람배치 

통도사의 가람 배치는 부처가 있는 금강계단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수행의 길을 연상시킨다.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차도와 인도 두 갈래로 나뉘었던 길은 다시 일주문으로 모이고 천왕문과 불이문으로 이어진다.  

흥선대원군의 '영축산 통도사'라는 친필 현판이 걸린 일주문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통도사 경내가 시작된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전각들이 촘촘히 배치돼 있어 당혹스럽다. 그러나 동서로 길게 무질서하게 중구난방으로 앉혀진 듯 보이는 불전들도 '금강계단'을 꼭지점으로 하여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구분한 가람배치를 이해하면 일순 일목요연해진다. 

하로전은 일주문에서 불이문까지의 영역으로 영산전과 극락보전, 약사전, 만세루가 ㅁ자형 공간을 이룬다. 중심전각인 영산전은 동서로 길게 난 법당구조와 서쪽에 봉안된 부처가 눈길을 사로잡는데, 이러한 구조는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마곡사의 대광보전을 들 수 있다. 
 

통도사 영산전 벽화 하로전의 중심전각인 영산전. 벽화 52점이 그려져 있고, 특히 서쪽벽에 통도사에서만 볼 수 있는 견보탑품도가 그려져 있다. ⓒ 변영숙

 
불이문에 들어서면 중로전의 중심전각인 대광명전(보물 1827호)과 관음전과 용화전이 나온다. 용화전 앞에 놓인 커다란 봉발탑이 눈길을 끈다. 봉발탑이 커다란 사발 모양을 닮았다.

보물 제 471호인 봉발탑은 부처의 옷과 그릇을 56억 7천만년 후에 오시는 용화전의 주불인 미륵불이 이어받을 것임을 상징하는 탑이다.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증거로 계송을 지어주거나 가사나 발우를 전하는 불가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문화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이 봉발탑은 정확하게 금강계단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고 한다. 역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통도사에만 있다. 
 

통도사 대웅전 통도사의 대웅전과 금강계단 영역은 일괄적으로 국보 제 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5칸으로 된 대웅전 건물에는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면인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잘보이지 않는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 변영숙

 
상로전은 국보 제 290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금강계단 그리고 응진전 영역으로 통도사의 핵심 영역이다. 정면 3칸, 측면 5칸으로 된 대웅전 건물은 조선왕릉 정자각처럼 J자형 지붕을 가졌으며, 사방에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면인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금강계단과 대방광전은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통도사 대웅전은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기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화려한 불단만 조성돼 있다. 불단 뒤편으로 부처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 불사리탑이 잘 보이도록 커다란 창문이 나 있다. 

통도사 영산전 견본탑품도
 

통도사 영산전 벽화 견보탑품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통도사 영산전에 그려져 있는 '견보탑품도'. 법화경의 가장 극적인 장면인 다보탑이 솟아오르고 현세불과 다보여래가 만난다는 내용을 그림으로 가장 잘 재현한 변상도로 평가받고 있다. ⓒ 변영숙

 
영산전에 들어서면 벽을 빼꼭하게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에 사뭇 놀라게 된다. 어둠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팔상도와 각 포벽마다 그려져 있는 크고 작은 벽화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불화의 문외한이 봐도 예사롭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통도사가 우리나라 '불화의 보고'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통도사는 대웅전, 영산전, 약사전, 용화전, 명부전 등에 조선시대인 18세기 초에서 20세기에 제작된 550여 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2011년 일괄적으로 보물로 지정된 영산전 벽화들은 무위사 아미타삼존벽화, 선운사 대웅보전 삼불벽화와 함께 우리나라 사찰 벽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벽화로 꼽힌다. 

통도사 영산전 서쪽벽에 그려진 '견보탑품도'를 놓쳐서는 안 된다. 법화경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이 변상도는 우리나라에서 벽화나 탱화로 조성된 예가 없는, 유일하게 통도사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벽화다(나주 다보사 대웅전 외벽에도 견보탑품도가 조성돼 있다고 하는데, 조성된 시기나 작품성에서 많이 뒤떨어진다고 한다).

어두운 영산전 한 켠 그것도 목을 한껏 뽑아야 볼 수 있는 '견보탑품도'는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파할 때 갑자기 칠보탑이 땅을 뚫고 솟아오르고, 부처 설법에 감탄한 다보여래가 석가모니를 맞이하자 이를 본 사부대중과 청중들이 예경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탑의 옥개석과 탑신은 모두 황금빛 기왓장과 보배구슬로 장식되어 있어 무척이나 화려하다. 탑 주변에 모여든 대중보살들은 열린 문으로 모습을 드러낸 현세의 석가여래와 과거세의 다보여래를 경배하고 있다.  탑 주변에는 연꽃과 구름들이 둥실둥실 떠 다녀 신비롭고 축제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작품은 희귀성이나 세세하고 화려한 표현력에 있어서나 세계 사찰벽화의 백미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통도사 금강계단 
  

영축총림 통도사 금강계단 통도사 금강계단에는 부처님의 정골사리와 치아사리 3과가 모셔져 있다. 통도사의 금강계단에서 행해지는 계의식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다는 의미를 갖는 중요한 곳이다.?통도사의 근본이 되는 신성한 장소이자 통도사의 존재 이유가 되는 곳이다.? ⓒ 변영숙

 
계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를 의미하는 계단(戒壇)은 석가모니 당시 누지보살이 비구들의 수계의식을 집행할 것을 청하자 기원정사의 동남쪽에 단을 세우게 된 데서 유래했다. 통도사의 금강계단에서 행해지는 계의식은 부처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다는 의미를 갖는 중요한 곳이다. 통도사의 근본이 되는 신성한 장소이자 통도사의 존재 이유가 되는 곳이다. 

자장율사는 중국의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진신사리를 가져와 경주 황룡사와 태화사에 봉안하고 일부를 통도사 금강계단에 봉안했다. 이 사리는 후에 분골해 탑을 건립하며 사리신앙의 중심지가 되는데, 태백산 정암사, 팔공산 동화사, 오대산 상원사, 금강산 건봉사 등에 봉안된 사리는 통도사 진신사리의 분사리로 알려져 있다. 

통도사 금강계단에 봉안된 사리는 여러차례 개봉되기도 하고 왜적에 의해 수난을 당했다.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에는 통도사 주지인 월송스님이 왜적의 찬탈을 피해 사리를 가지고 개경까지 피난을 갔다는 기록이 있다.  
 

통도사 대웅전 일대 솟을 삼문 형식의 개산조당과 세존비각 및 개산조당이 보인다. ⓒ 변영숙

 
조선시대 선조 36년인 1603년에는 사명대사가 왜적의 침탈에 대비해 2개의 사리함에 넣어 금강산의 휴정대사에게 보냈다. 그러나 휴정은 계를 지키지 않는 자에게 사리는 목적이 아닐것이니 원래 자리인 금강계단을 보수하고 다시 사리를 봉안하라면서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함은 태백산 정암사에 봉안하게 했다고 한다. 개산조당 앞 세존비각에 이에 대한 기록을 새겨져 있다. 

사명대사는 금강계단을 수리하고 휴정에게 돌려받은 사리를 안치했다. 이후 금강계단은 세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뒤편에 위치한 금강계단을 참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참배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매월 음력 초하루~초삼일, 음력보름(음 15일), 지장재일(음 18일), 관음재일(음24일) 오전 11시~오후 2시까지만 개방된다. 까치발로 담장 너머 금강계단을 간신히 눈에 담았다. 

부처의 정골사리와 치아사리 3과가 봉안돼 있는 커다란 종모양의 사리탑과 보호난간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내문에는 참배시에 신발을 벗게돼 있다. 그만큼 귀하고 성스러운 장소인 것이다. 

금강계단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통도사를 빠져 나오며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일주문에서 불이문을 지나 대웅전까지 몇 억년을 걸어도 도달할 수 없는 길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한국의 산지승원 #영축산 통도사 #양산 통도사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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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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