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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터처럼 따뜻한 러시아 소설 어때요?

[서평] 관계의 따뜻함을 일깨우는 청소년 소설 '스웨터로 떠날래'

등록 2020.02.04 11:05수정 2020.02.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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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나 친구들은 율라와 동갑내기인 베르카가 서로에게 둘도 없이 특별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렸을 때, 함께 다니거나 어울려 놀 때가 많았다. 게다가 옷이나 양말, 가방 같은 것들은 물론 귀걸이처럼 아주 사소한 것까지 같은 것으로 구입하는 등 이란성 쌍둥이처럼 지냈기 때문이다.

부모들끼리도 친했고 여전히 친하다. 서로의 집에서 며칠씩 자기도 하고, 며칠간 어울려 여행하기도 했다. 서로의 아이들을 제 아이처럼 챙기는 부모들이기도 했다. 엄마들은 특히 더 친해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이나 전시를 함께 보거나 쇼핑을 함께 하는 등 넷이 함께 보낼 때도 많았었다.


둘은 이제 열다섯 살로 9학년이다. 베르카와 단짝으로 지낸 것은 2학년 때까지. 베르카네가 페테르부르크로 이사한 후 7년 넘도록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성인이 되고 싶은 그런 나이다. 그동안 우린 몸도 생각도 많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친구들 기억 속 베르카는 율라에게 특별한 존재다.

어느 날 엄마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길 한다. 며칠 후부터 베르카와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같은 방을 쓰고, 같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다들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실은 괴팍하고 고약해 도저히 친구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그래서 떠올리는 것조차 끔찍하고 기분 나빠지는 그런 베르카인데….
 
베르카는 예상대로 이 영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나와 반대다. 지구상에서 나와 가장 닮지 않은 사람,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면 베르카를 따라잡을 후보가 없을 거다. 똑같은 청바지, 똑같은 신발, 똑같은 스커트…. 누구든 마음 상하지 말라고 다 똑같이 샀음에도 말이다. (140~141쪽)
 
고통과 방황, 성장통의 이야기

<스웨터로 떠날래>(바람의 아이들 펴냄)는 지난날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성격이 전혀 달라 친구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두 아이가 서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고통과 방황, 그 성장통을 잔잔하게 풀어낸 러시아 청소년 소설이다. 
 

<스웨터로 떠날래> 책표지. ⓒ 바람의 아이들

 

베르카가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율라는 지옥을 넘나든다. 하필 별일 없어도 스스로 민감한 그런 청소년기라 더욱 힘들다. 율라를 더욱 난감하게 하는 것은 베르카 엄마가 죽었기 때문에 베르카의 상실감이 크리라는 것. 그래서 가급이면 베르카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 좀 억울하거나 부당해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힘들기만 하고 혼자 삭혀야만 하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마주치는 것조차 싫은데 학교에서도 짝꿍으로 묶인 데다가 방까지 베르카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율라는 이젠 학교도 집도 즐겁지 않아 밖을 떠돈다. 그동안 매일 집처럼 드나들며 아이들과 놀던, 아이들의 천국 카페 스웨터에도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진다. 베르카의 등장으로 친구들과도 멀어졌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는 이런 율라와 함께 지낼 날을 원하며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함께 살 공간까지 마련한다. 그리고 베르카는 베르카대로 자신의 슬픔에 귀 기울여 줬다는 이유만으로 나이 많은 유부남 작가를 사랑하며 그 주변을 떠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비슷한지 생각했다. 하나하나 정리해 보면 우리가, 또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다. 만약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훨씬 오래전에 이해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원수가 아니라는 것, 원수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일 뿐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원수는 두 음절로 된 단어일 뿐이며 그것을 사용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임을.-(275쪽)

소설은 전체적으로 잔잔하다. 이런 소설이 보다 인상 깊게 와 닿은 것은 러시아 부모들의 모습에 우리의 모습이 겹쳐지면서다. 아이들의 생각이나, 나와는 다른 존재인 누군가에 대한 낯가림이나 기분, 선택의 권리 같은 것들은 나 몰라라라 꿈은 물론 친구까지 부모들 잣대로 정해주거나,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선택을 강요하는 그런 부모들 모습이 말이다.

부모 손을 잡고 다녔던 어린 시절부터 걸핏하면 붙어 다니는 것으로 수많은 것들을 공유했지만 어쩌면 그랬기에 서로에게 그다지 좋지 못한 감정과 기억을 품게 된 율라와 베르카. 둘은 다행히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며 오래전 놓았던 단짝의 손을 잡는다. 그렇게 각자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간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행복한 결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청소년기, 가출하는 아이들도 많고, 그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처럼 집과 부모를 떠났기 때문에 미래가 불안한 상태로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 소식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뉴스 주인공으로 종종 전해지곤 한다.

엄마까지 베르카에게 뺏긴 것 같아 방황하는 율라에게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이제라도 그런 딸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엄마가 없었다면 율라는 어떻게 됐을까.
 
 "추운 날, 추운 세상을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손에 쥔 당신이 따스한 스웨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역자의 말 중에서.
 
우리는 나와 같지 않은 수많은 누군가와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누군가를 끊임없이 이해하거나 배려해야만 한다. 우리는 종종 그 누군가를 위해 이해하거나 배려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 율라처럼 누군가를 미워함은 결국 자신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임을 새삼 돌아보게 한 소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계간 <우리교육> 2020년 봄호에 실립니다.

스웨터로 떠날래

안나 니콜스카야 (지은이), 김선영 (옮긴이),
바람의아이들, 2019


#스웨터로 떠날래 #러시아 소설 #청소년소설 #바람의 아이들 #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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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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