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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진보 분열, 누구 책임인가

[주장] 과거 기준에 머무르지 말고 진보의 새 가치 찾아야

등록 2020.01.31 20:15수정 2020.01.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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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우희종 서울대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조국 사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사스와 메르스에 이어 요즘 세계를 시끄럽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질병은 마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독감처럼 향후 여러 형태로 인류에 대유행병을 보일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처럼 전에 없던 새로운 전염병이 생기는 것은 바이러스 등과 같은 병원체가 인류세가 만들어내는 급변하는 환경 변화에 따라 같이 진화하기 때문이다.

생명 현상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진화한다는 것에 있다. 생명체의 진화는 자신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같이 변화시켜 생존에 보다 바람직한 상태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진화는 이상적인 최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수용하고 그 안의 최선을 찾는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화를 멈춘 생명체는 소수 군락이 되었다가 결국 멸종의 길을 걸어 사라진다.

조국 수사와 검찰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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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19년 12월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 차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4.19 혁명, 부마항쟁, 5.18 광주 항쟁 등의 흐름 속에 여러 운동권 인사들의 희생에 기반해 87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당시 군사독재에 의한 경제개발이라는 힘든 시기에 인권은 노동 현장에서 철저히 무너졌고, 노동 문제는 진보를 상징하는 대표적 가치였다. '엘리트인 학생과 빈곤한 현장 노동자'로 이뤄진 정의로운 열사들의 아낌없는 희생으로 출발할 수 있었던 87체제가 타도할 대상으로서 인권 감수성이 없는 정치 권력과 노동 문제에 천착하는 것은 당연하다.

30여 년이 지나 2019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것은 검찰 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와 기존 특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검찰 간의 힘겨루기였고, 이는 문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의 사퇴와 기소라는 극단적 형태로 전개되었다.

검찰은 조국에 대한 전략의 첫걸음을 고교생 자녀의 대학 표창장으로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의 실권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최순실 딸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이 도화선이 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교육 공정성을 건들인 셈이다. 물론 고교생 표창장 발급은 대학에 있는 이들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예상과 같이 일반인들에게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타락한 강남 부유층의 학벌 세습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이후 과정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대변되는 검찰 행보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철저히 진행되었고, 피의자의 기본 인권은커녕 물불 안가리는 광기 찬 수사 행태였다. 표창장 하나 때문에 군사독재 시절에도 보기 힘들었던 여러 대학 동시 압수수색이나 외국 대학 과제 풀이에 대한 형사법 적용도 있었고, 심지어 학생 인턴증명서 발급 건으로 절차를 무시하고 진행한 청와대 비서관 기소 등 보는 이로 하여금 검찰의 무소불위 행보는 어디까지인가 묻게 했다.

진보의 분열

이 글은 현재 진행형의 사법 판단에 따라 이루어질 개인에 대한 평가나 분석보다는, 검찰과 검찰 부속 언론에 의해 논란 중심에 올려진 조국 교수에 대한 진보권의 분열에 대한 글이다.

크게 보면, 조국 교수가 소위 강남좌파로서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사회 양극화 체제 속 강남 계층이 하는 삶의 방식을 해 왔다는 것에 정의를 내세우며 분노하고, 강남좌파의 위선이라는 평가와 함께 검찰의 광기 어린 수사는 자업자득이라고 묵인하는 집단이 있다. 또 사회 체제개선에는 공감하되 개인의 윤리, 도덕 문제를 형사로 접근하면서 언론 흘리기를 통해 마녀재판 하는 검찰의 인권 말살과 권력 남용에 주목하는 집단이 있다.

전자는 후자에 대하여 노동 문제도 시급한데 굳이 검찰 개혁을 말하는 것은 특정인을 보호하기 위한 몸짓일 뿐이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시급한 노동자 문제를 제쳐둔 채 서초동으로 나간다는 것은 자신들의 순수한 정신과 열정에 비해 너무 느슨하고 배부른 것이고, 개인 지지의 팬덤 행태로 본다. 검찰 개혁을 언급하며 언론개혁, 교육개혁 등을 거론해도 노동개혁이 우선되지 않는 한 진정성이 없는 집회에 불과했다.

전자의 대표적 진보 인사들에게는 무엇보다 조국이라는 진보의 대표적 인사가 부유하고 재산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과 또 강남 부모들이 벌이고 있는 학벌 세습 과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없는 정의롭지 못한 삶이다. 그들의 감정도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검찰 주장처럼 형사법으로 처벌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오직 강남좌파의 위선이라는 냉소적 의미만 남았다.

강남좌파 논의는 이미 2011년 강준만 교수에 의해 제시되어 많이 이뤄졌기에 생략하지만, 위선의 강남좌파라고 비난하면서 증오에 가까운 비난과 함께 과도한 인권 말살을 보이는 검찰 수사에 침묵한 이들은 주로 87년 체제를 꾸준히 이어오면서 노동 문제에 헌신해 온 진보적 인사들에게서 많았다. 노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의당 내에서도 그런 입장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진보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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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 연합뉴스

 
엘리트와 노동자가 함께 하던 군사독재 시절과 나름의 민주화를 거쳐 30년이 지난 지금, 산업 현장에서는 열악한 노동 환경이나 구조적 문제로 여전히 목숨을 잃고 있으며 또한 외국 노동자의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의 가치와 문제 상황은 분명히 중요한 사회 의제다. 하지만 87년 민주화 흐름 이후 지금 사회는 많이 변했고 신자유주의는 일상화되었다.

다 같이 못살고 종이 인쇄물을 숨겨 나누며 모이던 87년에 비해 모든 정보와 상황을 휴대폰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양극화는 분명하지만 기본 생활환경은 나아졌고, 3D 직종엔 갈 사람이 없다. 많은 이들이 휴가철에 해외로 나간다. 지금 사회에는 다양한 계층과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 진보로서 보다 바람직한 사회를 향한 변화를 위해 강조되어야 할 가치는 2020 시대와 사회 환경에 근거해서 제시되어야만 한다.

2020년에 우리 모두 문제 많은 신자유주의라는 큰 틀 속에 살면서 이에 대한 문제 개선에 노력하지만, 주어진 사회 체제 속에서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땅에서 넘어진 자는 하늘이 아니라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하듯이, 부당한 체제는 부정하고 개선에 노력해야 하지만, 주어진 현실의 변화마저 부정하는 순간 매우 원론적이거나 관념적이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바람직한 상황을 향해 가는 생명의 진화와 다르지 않다.

진보 인사들의 착각은 촛불에 의한 현 정부를 진보정권이라 바라보는 데에 있다. 촛불? 강남좌파? 2008 광우병 사태 때 강남 어머니들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왔고, 박근혜 때 강남만이 아니라 영남층도 나섰다. 현 정권은 진보가 세운 정권이 아니라, 과거의 진보-보수 구분 없이 국민이 세운 정권이며, 이번 검찰 사태에서 강남좌파를 비난하는 이들이 냉소하는 강남 부유층과 영남이 함께 해서 세운 정권이다.

요즘 정부에 사회개선을 요구하는 계층은 노동자나 운동권 내지 진보라는 이들만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진영논리에 따라 광화문에 태극기를 들고 나선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투는 물론 성소수자 인권이나 심지어 동물 학대에 따른 동물권 요구까지 다양하다.

이제 87년 체제의 노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좌파 내지 진보는 고민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87년 이후의 진보가 자신들만의 힘으로 당당하게 현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이는 노동의 가치와 문제점이 적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화에 따른 많은 가치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여러 문제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 문제의 근간은 인권임에도 이번 검찰 사태와 같이 노동이 아닌 형태의 인권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선택적 인권의 기형적 모습이자, 87년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모습이다. 30년이 지나면서 분화된 다양한 사회 계층과 모습을 직시하기보다는 여전히 노동과 권력 간의 흑백 대립 구도와 진영논리에 근거해 과거 엘리트와 노동자가 하나였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보인다.

진보의 가치

진보라 함은 주어진 사회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바람직한 체제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자세일 것이다. 지금의 검찰 사태를 강남좌파나 87년 노동 가치를 배반한 정부가 맞이하는 당연한 상황으로, 혹은 진영논리로서 바라보는 좌파 내지 진보 인사가 있다면, 그 스스로 얼마나 과거에 머무르는 보수적인 모습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대강 사업 등으로 실정이 거듭되던 이명박 정권이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것은 국정원 댓글 등의 외부 요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명박 시절 시도했던 진보 진영의 통합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그 당시 상황에서 드러난 진보 갈등의 입장 차이가 형태만 달리했을 뿐, 이번 검찰 사태의 진보 분열에서도 엿보이고, 지금도 여전히 진보 정당 내에서 갈등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각자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진보 통합에 실패했던 당시,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이들이 실패에 대한 반성은커녕 지금도 여전히 훌륭한 멋진 원론만을 말하면서 상대방을 탓하는 모습과도 이어진다.

지금은 남북 대립의 시대도 아니고, 좌우 진영 싸움할 때도 아니다. 또 진보에도 진보와 보수 자세가 있고, 보수라 칭하는 이들이나 계층에도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있다. 지금 사회는 진영논리로 설명되지도 않고, 그리 접근해서도 안된다. 다양하게 분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과거의 진보는 의식 있는 엘리트와 노동자라는 단일 구도로부터 강남좌파나 재벌좌파까지 보다 다양하게 등장해야 하고, 또한 진보는 이를 수용해야 여러 계층으로 이뤄진 이 사회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

사회는 개인의 선호와는 별도로 변화한다. 노동 문제 제기는 매우 중요하고 옳은 이야기이며 우리 함께 해야 하지만, 여전히 87체제에 머물러 노동만을 강조하거나 노동 외의 다른 가치는 부차적이라고 하는 이들은 과거 독재 타도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진영 내의 많은 성폭력 상황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향후 사회변화를 위해 강조되어야 할 가치는 시대와 사회 환경에 따라 변한다. 87체제에는 인권과 그에 기반한 노동을 말하는 것이 진보였다면, 2020년에는 인권을 넘어 생명과 동물권을 말하는 이들이 진보가 된다.

인간에 대한 애정

진보의 진화 속에서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시대와 문화를 관통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자 '생명의 고통'이다. 2020년, 그에 대한 공감과 행동이 중요한 것이지, 빈부 계급이나 계층으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과거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이들은 단순한 이념이나 체제 논리를 넘어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고통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에 자신의 목숨까지 던질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없이 단지 한때의 정의감이나 이념과 가치만으로는 그리 하지 못한다.

그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살아남아 2020년을 맞이하는 이들이라면 조금은 겸허해야 한다. 살아남은 자가 마치 자신이 모든 정의와 공익을 대변하는 듯이 목소리 높여 부의 유무나 도덕의 잣대로 주어진 사회 체제 속에서 나름의 문제의식을 지니고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기준을 들이대면서 인간을 정죄하는 건 역사상 일부 종교인들이 옳지만 맞지 않는 원론을 내세우며 마녀재판 하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이번 검찰 사태에서 인권에 기반한 노동 문제를 강조하는 이들 중 일부이기는 해도 한 개인과 집안의 기본 인권이 검찰 권력에 의해 파괴되는 상황을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진보의 보수화를 본다. 선택적 인권과 정의 속에 여전히 87체제의 가치만을 지니고 있다면, 사회를 다양한 회색이 아닌 흑백으로만 본다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만 본다면, 변화하는 사회에 맞지 않는 옳은 말만 한다면, 그런 이들은 사회를 위해 목소리 낮추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 좋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바람직한 사회변화를 생각하는 이의 자세는 지금에 머무르지 않으며, 머무를 수도 없다. 이는 진보건 보수건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다. 삶의 현장을 떠나 변화하지 않는 진보에 대한 경종이 고 노회찬 의원의 '6411번 버스' 연설에 담겨 있어, 보다 더 낮은 곳을 향해 변화해야 함을 말해줬다면 이번 검찰 사태에서는 진보가 다양한 사회집단을 품을 수 있도록 넓게 진화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 셈이다.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 그러나 성찰 없이 진화를 멈춘 진보는 주변에 맞춰 자연스레 흘러 넓어지지 못하는 강물처럼 결국 다양한 사회를 수용하지 못하고 말라서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사라져야 할 대책 없는 보수가 된다. 생명력 지닌 진보는 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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