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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 최제우의 '개벽사상' 승맥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53회] 수운 최제우의 후천개벽사상을 가장 깊이있게 받아들인 사람

등록 2020.02.02 17:36수정 2020.02.0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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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 동상 수운 최제우 선생 동상이다. ⓒ 김환대

어떤 의미에서 수운 최제우의 후천개벽사상을 가장 깊이있게 받아들인 사람이 김개남이다.

사전적으로 후천개벽은 개벽에 의해 선천의 구천지가 종말에 이르고, 후천의 신천지가 열리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반적으로는 후천개벽이 내세적 이상향을 의미하지만, 동학접주 김개남 등은 이를 혁명사상으로 수용하고, 마침내 봉기하여 새 왕조를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개벽'의 의미를 살펴본다.

개벽이라는 것은 천지가 혼합되어 다시 열리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별천지가 생기는 것도 아니며, 곧 옛것을 바꾸어 새롭게 꾸민다는 뜻이다. 천도가 순환함에 따라 크고 작은 사물에 개벽이 없는 것이 드물고 오직 크고 작음만 다를 뿐이다.

예컨대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드는 것은 토지의 개벽이고, 한미하고 천한 집안에서 자제들을 교육시켜 집안을 빛낸 것은 가문의 개벽이며, 우매한 풍습을 개량하여 인민의 지혜가 더해진 것은 인문의 개벽이고, 밤이 새고 날이 밝는 것은 하루의 개벽이고, 찬 기운이 다되어 따뜻함이 자리잡은 것은 한 해의 개벽이며, 황하가 한번 맑아짐에 성인이 다시 일어남은 천 년의 개벽이고, 무극대도를 내놓아 창생을 널리 구하는 것은 5만 년의 대개벽이로다. (주석 6)


김개남은 혁명을 준비하였다. 우선 독자적인 역량을 비축하여 재봉기를 시도하면서 전봉준ㆍ손화중 등 동지들과 협력한다는 구상이었다. 무기와 군량을 회복하고 병사들을 모아 훈련시켰다. 주한일본공사관의 기록이다.

15일 도착한 남원부 겸임 오수찰방 양주혁의 첩보 내용에는, "동부(同府) 회소(會所)의 동학배들이 군목색리(軍木色吏)들을 란타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고 관고에 사들여 놓은 쌀과 상납할 각 군목 20동 27필을 모두 탈취해 갔다."고 하였으며, 16일에 도착한 능주목사 조존두의 첩보 내용에는, "동학도 10여 명이 포를 쏘며 본 주로 들어와 남원 대도소 김개남의 지휘라고 하며 공형들을 불러내어 동전 2만 냥과 백목 30동을 남원 회소로 수송하라고 공갈을 하며 재촉을 하였는데 그들이 부린 행패는 다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주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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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목 이곳이 동학농민 봉기때 김개남의 부대가 주둔했던 곳임을 알리고 있다 ⓒ 하주성

 
그리고 17일 도착한 광주목사 이희성의 첩보 내용에는, "본주의 공형들이 남원 회소의 동학도 전통문을 보니 군수물자가 매우 시급하므로 동전 10만 냥과 백목 100동을 수송하되 만일 이를 어긴 공형(公兄)들은 군율을 시행한다고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김개남은 재봉기를 준비하면서 남원 주위의 여러 고을을 순방하면서 동지를 규합하고, 집강소에 들러 민정을 두루 살폈다.

김개남의 남원 정치에 대한 기록은 상세히 남아 있지 않지만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알 수가 있다. 우선, 김개남은 남원을 기점으로 주위 여러 고을을 직접 관할하고 있었다.

『동학란기록』 상권의 "거년 6월 선유 김개남지백서입구 누일불거리경탕(去年 六月 先有 金開男之白書入寇 累日不去里傾蕩)"이라는 『곡성군수장(狀)』을 보면 김개남이 6월에 곡성에 들어와서 여러 날을 머물렀다는 기록과 또 정석모가 김개남을 찾아왔다가 곤장을 맞고 남응삼의 처소에 있을 때 "정석모는 날마다 김개남 대접주가 각 고을 집강소와 접주들에 보내는 전령문장(傳令文狀) 수천 행씩을 썼다"는 것을 볼 때 김개남은 남원을 중심으로 인근 주변 고장을 직접 관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석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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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 장군 ⓒ 박도

 
김개남이 재봉기의 의지를 다지며 준비를 서둘고 있을 즈음 나라 안팎의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져갔다. 청일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주요 사건을 정리한다.

  5월 5일(양 6월 8일) - 청국군의 아산 상륙과 주둔
  5월 9일(양 6월 12일) - 일본군 혼성제9여단의 인천 상륙과 서울 진입
  6월 21일(양 7월 23일) - 일본군 혼성제9여단의 경복궁 기습 점령
  6월 25일(양 7월 25일) - 청일 함대의 풍도전투(청일전쟁 개시)
  6월 27일(양 7월 29일) - 성환전투
  7월  1일(양 8월  1일) - 청일 양국의 선전포고
  8월 16일(양 9월 15일) - 평양전투
  8월 18일(양 9월 17일) - 청일 양국 함대의 황해해전
  9월 26일(양10월 24일) - 일본군 압록강 도하
  9월 28일(양10월 26일) - 구련성(九連城)전투
  10월 1일(양10월 29일) - 봉황성(鳳凰城)전투
  10월 24일(양 11월 21일) - 여순 함락


주석
6> 이종일,「후천개벽의 설(說)」, 『천도교월보』 제34호, 1913년 5월, 1~2쪽.
7> 『주한 일본공사관 기록』1권, 신영우, 앞의 논문, 재인용.
8> 김호성, 앞의 책과 같음.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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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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