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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성별 따라 '처벌' 달라... 지금 사법부에 필요한 것

[함께 쓰는 성폭력사전 기획연재 ③] 차별적 성별규범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눈 '성인지 감수성'

등록 2020.02.03 17:52수정 2020.02.0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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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들은 일상이었던 성차별·성폭력 경험들을 공론의 장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말하기'를 통해 성폭력은 '일부' 여성들이 겪는 남의 일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것, 그 원인은 성차별과 성폭력이 용인되는 현실에 있다는 것을 수면 위로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폭력을 정당화는 시선들과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2차 피해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미투 이후, 현재 여성들의 현실과 일상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리고자 <2019년 함께 쓰는 성폭력사전(아래 함께사전)>을 기획했습니다. 여성들이 직접 적어준 892개의 경험과 생각으로 엮은 내용과 더불어 미투 이후의 이슈를 담은 기획기사를 앞으로 4번에 걸쳐 다뤄 볼 예정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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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비디오' 사이트 폐쇄를 알리는 공지. ⓒ 홈페이지 갈무리


[1편: 성폭력 사건인데, '우리 부장님이 그럴리 없다'는 직원들]
[2편: 
일상 곳곳에 스며든 '강간문화', 그것을 멈추는 방법]

2017부터 시작된 '웰컴투비디오'(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 및 성폭력 영상 불법 유통 사이트)에 대한 32개국 국제 공조수사 결과 운영자와 223명 이용자(검거된 310명 중)가 한국인이었다.

'웰컴투비디오' 이용자와 운영자에 대한 법적 판단은 어땠을까? 223명의 이용자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운영자 손아무개씨는 '나이가 어리고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으며 회원들이 올린 음란물이 많다'는 이유로 징역 1년 6개월 징역형(1심은 징역2년 집행유예3년)이 선고되었다.

'웰컴투비디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을 협박해 성폭력 영상을 촬영하고 피해자의 신상정보와 영상을 유포한 소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의 청원인이 21만 명을 넘어섰지만 발 빠른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피해자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처벌의 강도가 다르다?

반면 2018년 누드화 수업 과정에서 남성모델의 사진을 유포한 여성 피의자에 대해서는 징역 10개월, 2500만 원의 배상 판결이 났다. 이 사건의 피의자도 초범이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재판부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피의자의 반성만으로 책임을 다할 수 없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처벌의 강도가 달라질 수는 없다"고 밝혔지만 판결문 분석결과는 달랐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지난 2011년 1월 11일부터 2016년 4월 30일까지 선고된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판결문 1866건을 분석해 '2017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99%가 여성이며,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1심 양형에서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5.32%로 가장 낮았고 벌금형 71.97%, 집행유예 14.67%, 선고유예 7.46%였다 

촬영물이 유포된 66건의 1심 판결에서 48건(72.72%)은 선고유예, 벌금형, 집행유예였고 18건(27.27%)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또한 2018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불법 음란물 사이트 운영자와 헤비업로더 191명을 고발했지만 단 2명만 실형을 받았고, 189명은 초범이라는 이유는 불기소 처분되었다.
  
성폭력을 음란물로 인식하는 사법부에 필요한 '성인지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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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감수성'이 필요하다 ⓒ pixabay

 
사법부는 '웰컴투비디오'를 '음란물' 제작∙배포∙유포 사안으로 보았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처벌했다.

성폭력특례법의 카메라이용촬영 조항은 아예 적용하지 않았다.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해 불법영상을 촬영하도록 강요하거나, 당사자의 동의 없이 성적인 영상을 촬영하고 유통해 이윤을 얻는 행위는 단순히 성적 내용을 담은 영상(소위 음란물)이 아니라 성착취, 성폭력이다.

불법영상을 음란(음탕하고 난잡한, 국어사전)물의 유통으로 보는 사법부의 인식부터 달려져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터, 지하철, 숙소 등의 화장실에 불법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전)애인으로부터 불법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유포 피해를 겪고 있는 여성들이 사법부의 문을 두드렸을 때 상식적인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졌는지 사법부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질문하고 달라지기 위해서 사법부는 '성인지 감수성'을 견지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은 논자마다, 국면마다 조금씩 달리 정의되는데, 대체로 성별 불균형 상황을 인식하고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으로 풀이된다. 이는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감성'이나 '감수성'과 다르며, 특수한 상황에 처한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인지능력'에 가깝다. 
- 이숙연 서울고등법원 판사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단상> 법률신문, 2019.2.21

함께 쓰는 성폭력사전 참여자들도 "특히 사법정의를 다루는 법관이 반드시 지녀야 하는 능력"이라고 언급했다. 사법부가 여성폭력 사안을 젠더불평등 문제로 인식하는 성인지감수성을 견지할 때 처벌 가능성이 높아지고 판사의 재량이 아닌 정해진 형량대로 처벌될 수 있다. 그래야 불법영상에 의한 범죄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일상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

아래는 함께 쓰는 성폭력사전에 참여한 110명의 여성이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을 남겨준 경험들이다.
 
'전도사 마누라는 다 예쁘네'라는 노래가 재미있는 찬양가로 소비될 때, 불법영상을 촬영하고 공유한 남성연예인에 대해서는 '걔 XXX더라'라고 욕하면서 "그 영상 봤냐? 안 봤으면 보내줄게. 몰래 봐"라며 재유포할 때, 불기소∙무죄판결 되는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들을 볼 때, 밤길에 골목을 걷는데 한 여성이 자기를 발견하고 갑자기 빨리 걸어서 너무 불쾌했다며 하소연하는 남성 상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

'여자는 아기 낳아야 하니까 담배 피우면 안 된다'는 동네가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여성들은 옮기지 마세요'라며 배려하는 척하며 '여직원이 타는 커피가 맛있다'며 성별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할 때, 나이가 더 많은 오빠의 밥을 나이가 어린 여동생이 차려주는 것을 당연시할 때, '여자라서,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갖기 힘들 거야'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교수님을 볼 때 등

이렇듯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한 순간은 성차별, 성폭력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여성들은 일상의 무수한 장면에서 성차별과 성폭력을 더는 겪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차별적인 성별규범을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눈' 성인지 감수성이 한국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일상에서 성인지감수성이 적용된다면 '웰컴투비디오'와 같은 성착취∙성폭력영상을 제작하고 거래하는 범죄에 대해 사법부가 고작 1년 6개월 정도로 처벌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웹하드카르텔', '텔레그램 N번방' 등 진화하는 정보통신기술을 악용한 성폭력산업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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