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전은 어려울 것 같아서, 어떤 고전은 재미없을 것 같아서, 어떤 고전은 이미 읽었다고 착각해서 읽지 않는다. 내게 <작은 아씨들>은 다름 아닌 선입견 때문에 읽지 않은 책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작은 아씨들>이란 제목만 보고서 10대 소녀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외면했고, 2020년이 되어서야 그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바로 동명의 영화 <작은 아씨들>을 통해서 네 자매의 이야기가 그저 '예쁜' 이야기에 그치는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는 2월 12일 개봉하는 <작은 아씨들>의 언론시사회가 31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렸다.
여성의 권리와 삶에 대한 저돌적 문제제기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네 자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네 자매는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를 우연히 알게 되고 네 자매와 로리는 인연을 쌓아간다. 7년 후, 어른이 된 그들 앞에 각기 다른 숙제가 놓이게 되고, 네 자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헤쳐나가며 성장한다. 이것이 <작은 아씨들>의 대략적 줄거리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놀란 건, 19세기 당시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당돌한 저항의식이 담겨 있다는 점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통해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 재능을 펼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분위기, 남자처럼 돈을 벌 기회, 결혼하지 않을 자유, 투표권 등을 말한 것들이 <작은 아씨들>에도 고스란히 등장한다.
"여성도 감정만 있는 게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둘째 조의 대사다. 조가 바로 버지니아 울프 식의 생각을 지닌 인물이다. 조는 여성이기 때문에 마음껏 글을 쓰지 못하고, 오직 꿈꾸는 건 '결혼 잘 하기'며, 남자 없이는 자주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는 경제적 무능력함, 그리고 '사랑 밖에 난 몰라'라는 틀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삶에 염증을 느낀다.
조는 여성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재능을 드러내고 돈을 벌어 자립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 없이 갈망하며, 가부장적 환경에 반기를 든다. 이것은 현대적 사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페미니즘적 사고가 다분히 녹아있는 담론이다. 이렇게 오래된 작품이, 8번이나 영화화된 이 고전문학이 왜 2020년인 지금 또다시 영화로 재개봉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조의 저항에 공감하는 여성들이 많은 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가족 안의 사랑, 그리고 재능의 계발과 모험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굵은 중심 줄기는 가족 구성원 간의 사랑이다.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고 서로 돌봐주기도 하면서 자라온 네 자매가 서로 두터운 우애를 쌓고 부모를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평범함'에 깃든 일상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영화는 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각기 다른 개성과 재능, 꿈을 지닌 네 자매가 자신의 재능에 관한 태도의 차이를 보이고, 또한 그 재능을 실행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이 이야기의 줄기가 마치 날줄과 씨줄처럼 동시에 엮이어 간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시점을 오가며 네 자매와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이미 지나간 유년시절이 그립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서 공감과 위로를 분명 얻을 것이다.
자매로 분한 네 배우의 연기 케미스트리와 로리(티모시 살라메)의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은 이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젊음의 생기 넘치는 풍경들이 관객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물론 생기와 활력만 있는 건 아니다. 모두의 인생이 다 그렇듯 네 자매에게 고난과 슬픔의 순간도 찾아든다. 이 영화 포스터에 적힌 문구, "우리의 인생은 모두가 한 편의 소설이다"가 얼마나 적절한 문장인지 영화를 보고 나면 무릎을 칠 것이다.
덤으로, 글쓰기나 출판에 관해 호기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조의 자전적 소설인 <작은 아씨들>이 출간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19세기 출판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알 수 있다.
한 줄 평: 아기자기한 얘긴 줄 알았는데, 이토록 멋지고 저돌적이라니!
평점: ★★★★(4/5)
<작은 아씨들> 정보 |
제목: <작은 아씨들>
원제: < Little Women >
제작: 2019년
국적: 미국
장르: 드라마 외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 엘리자 스캔런, 로라 던, 티모시 살라메, 메릴 스트립 등
개봉: 2020. 02. 12 개봉
관람가: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135분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