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가 감자꽃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

[서평] 이나가키 히데히로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등록 2020.02.02 19:38수정 2020.02.0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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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책 앞표지 ⓒ 사람과 나무사이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 받는 농학박사이자 식물학자인 '이나가키 헤데히로'의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이 지난해(2019년 8월) 초여름에 번역돼 출판되었다.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풀들의 전략 2006 도솔>, <잡초의 성공전략 2002년 한국방송출판> 등의 책으로 국내에서도 독자층들을 확보하고 있는 유명작가다.

그의 식물에 관한한 이야기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사로 이어지며, 개개인의 인간사를 넘어 세계사까지 이어지고, 심지어는 신비로운 '우주의 법칙'으로 이어진다.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은 13가지 식물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세계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전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식물로 소개하고 있는 '감자'이야기 중에서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요약해 본다.

그때에도 '가짜 뉴스'가 동원되었다니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 앙투아네트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말이었으며, 한 마디로 '가짜뉴스'였다. 그러나 흥분한 군중들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꽃은 '감자꽃'이었다고 한다.
  

감자꽃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장 사랑한 꽃이 감자꽃이었다니? ⓒ 김민수

 
감자는 유럽에 16세기 초에 전해졌다. 오늘날 유럽 요리에 감자가 빠지는 일은 없지만, 당시에는 아메리카 대륙(원산지 안데스산맥 주변)에서 온 생소한 감자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감자를 알지 못했던 유럽인들은 덩이줄기가 아닌 감자 싹과 초록색으로 변한 부분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엔 솔라닌(Solanin)이라는 독성분이 있으며, 치사량이 400밀리그램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감자를 먹고 중독되는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래서 감자는 '독성 식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거기에 감자는 '성서의 기록에 나오지 않는 식물'이었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은 씨앗을 번성하는 식물을 창조하셨는데, 감자는 씨앗이 아닌 덩이줄기로 번식을 한다. 그래서 감자를 성서가 언급하지 않은 '사악한 존재'로 여겼고 '악마의 식물'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감자를 두고 종교재판이 열렸고, 재판정은 유죄판결을 내려 감자를 화형에 처했다. 유죄의 근거는, 세상의 모든 생물이 암수의 조화로 자손을 남기는데 감자는 정이 줄기만으로 번식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감자는 식용이 아닌 진귀한 관상식물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감자의 진가를 안 이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감자를 식량으로 이용하고 대중에게 보급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자의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모양 자체를 싫어했고 '성서에 나오지 않는 악마의 식물'이라는 불길한 생각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국가에 감자는 널리 퍼지게 되었지만, 프랑스만은 예외였다.

유럽 지역에 대기근이 시작됐을 때,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상금을 걸고 주식인 밀을 대치할 구황작물을 모집한다. 이때, 프로이센에 포로로 잡혀 있었던 파르망티에는 감자의 가치를 알았고, 루이 16세에게 감자 보급을 제안한다. 그의 제안에 따라 루이 16세는 단춧구멍에 감자꽃을 꽂아 장식했고, 왕비 앙투아네트에게도 감자꽃 장식을 달게 함으로써 대대적인 감자 홍보대사로 나섰다. 그리고 국영농장에 감자를 심고 다음과 같은 표지판을 세웠다.

"여기에 심은 감자는 왕족과 귀족의 먹을거리로 삼을 것이다. 이를 훔쳐 먹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

그러자 호기심을 누르지 못한 이들이 야음을 틈타 감자서리를 했고, 그렇게 서서히 감자는 서민들 사이로 널리 퍼져나갔다. 루이 16세가 왕비 때문에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국정을 소홀히 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런 악평은 대부분 중상모략인 것으로 최근 밝혀지고 있다고 한다(초강대국 미국을 만든 악마의 식물 '감자' 발췌 요약).

어떤 식물들이 세계사를 바꿨을까?

앞에서 소개한 감자 외에도 토마토, 후추, 고추, 양파, 차, 사탕수수, 목화, 밀, 벼. 콩, 옥수수, 튤립 등이 소개된다.

기와기타 미노루는 <설탕의 세계사 2005, 좋은책만들기>라는 책에서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와 이 사탕수수를 얻는 과정에서 일어난 노예무역, 그리고 씁쓰름한 동양의 차가 영국으로 건너가 설탕과 만나 '홍차 문화'를 만드는 과정까지 세세하게 다뤘다.

<설탕의 세계사>에서는 설탕과 관련하여 집중 조명하고 있지만,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심층적으로 다루지는 않다. 그러나 세세하게 다루지 않더라도 큰 흐름에서 각 식물들이 세계사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큰 흐름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어찌 보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식물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자극해서 식물이 세계사를 움직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세계사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고, 식물이라면, 이런 관점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본다면 식물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보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간과 관련된 이야기들 말이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지구온난화의 문제 같은 것들도 결국 자연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식물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 동물까지 포함을 시킨다면, 세계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는 풍성한 소재가 될듯하다.

아나가키 히데히로의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은 아주 재밌는데다가 유익하기도 하다. 세계사를 바꾸진 못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잡초와 식물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자연의 주는 수많은 잠언을 듣게 된다. 이 책을 펼친다면, 세계사를 바꾸진 못했어도 지혜로운 삶을 살아감으로 묵직한 질문을 주는 '라피도포라'의 이야기도 만나게 될 것이다.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은이), 서수지 (옮긴이),
사람과나무사이, 2019


#감자 #앙투아네트 #루이16세 #이나가키히데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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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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