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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ㆍ김개남 등 '남원대회' 5만 참여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54회] 김개남은 '해방군 지도자' 답게 남원성에서 신분제를 철폐하고 여러 가지 선정을 베풀었다

등록 2020.02.03 17:38수정 2020.02.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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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녹두꽃> 포스터 최근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SBS에서 제작된 <녹두꽃>이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 SBS

민족사적으로 지극히 중요한 시기에 동학농민혁명군 지휘부의 시국관 또는 현실인식의 차이는 불행하고 비극적이다.

김개남과 전봉준은 동학군의 재봉기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한 수준의 견해 차이를 보였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두 사람의 갈등 관계로 인식하지만, 사감에 의한 갈등이라기 보다 정세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전봉준 ⓒ wikimedia commons

 
황현에 따르면, 김개남의 남원성 점령 소식을 들은 전봉준이 남원으로 찾아와 재봉기를 만류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주로 전봉준의 발언을 전한다.

봉준은 개남이 남원을 점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전주에서 남원으로 달려가 개남에게 "지금의 정세를 살펴보면 일본과 청나라가 계속하여 전쟁 중에 있지만 어느 쪽이 승리하든 틀림없이 군대를 옮겨 먼저 우리를 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비록 인원수는 많다고는 하나 모두 오합지졸에 불과하므로 쉽게 무너져 우리들이 소망하였던 것을 끝내 실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귀환한다는 명분으로 각자 사방으로 흩어져 상황의 변화를 지켜보는 편이 더 낫겠다"고 하였지만, 개남은 "대중은 한 번 흩어지면 다시 모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어서 손화중이 도착하여 "우리가 봉기한 지 이미 반년이 지나갔다. 비록 호남지방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는 하나, 지식인 중에 조금이라도 덕망이 있는 사람은 추종하지 않았고 재물을 가진 사람과 선비들 또한 추종하지 않았으며, 우리를 추종하여 접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개 어리석고 천하여 남에게 해를 입히거나 빼앗고 훔치는 일을 즐겨하는 무리들일 뿐이다. 세상인심의 향배를 가늠해보면 일은 성사되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사방으로 흩어져 온전히 살아남는 길을 도모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하였다. 개남은 이 말 또한 듣지 않았다. (주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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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 장군 ⓒ 박도

 
김개남은 '해방군 지도자' 답게 남원성에서 신분제를 철폐하고 여러 가지 선정을 베풀었다.  

"김개남은 자리가 잡혀가자 백성들을 착취하던 아전, 유림, 토호들의 재물을 반환케 하였고 노비들을 해방시켰으며, 지주들의 토지를 농민들의 대표를 뽑아 공평하게 분배하는가 하면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면서 포교에 힘쓰는 한편 식량, 무기 등을 비축하여 장기전에 대비해 나갔다. 특히 신분제를 타파하는데 힘을 기울였는데 이는 '사람이 곧 한울님이니 도인된 사람은 귀천을 타파하라'는 수운신사의 설법을 실행한 것이다." (주석 10)

7월 2일경 전봉준이 전주에서 남원으로 왔다. 두 지도자는 일본군에 대한 동학군의 대책, 김학진 감사가 줄곧 요구해온 동학군의 무장해제, 동학군에 스며든 일부 불량배들의 약탈행위와 재봉기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매천야록과 오하기문 ⓒ 임세웅

 
이를 두고 『오하기문』은 '혹쟁혹의(或爭或議)'라 하여 두 지도자 사이에 심각한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기술하였다.

전주로 돌아갔던 전봉준은 7월 9일경 다시 남원으로 왔다. 김개남을 비롯한 주위의 여러 접주들과 협의하여 7월 15일 남원대회를 열기로 하였다. 남원대회에는 5만여 명(또는 7만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였다.

6월이 아닌 7월에 열린 남원대회는 집강소체제의 강화와 함께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선 전라도 50여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한 뒤 그 단합을 과시한 대회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까지 집강소를 통한 농민군의 통치가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농민군 내부에서도 일부 불만세력이 있어 이를 해소키 위한 전략적 대회로 보는 견해다.

한걸음 더 나아가 7월 보름 경에 열리는 남원대회는 일본군에 의한 범궐, 즉 6월 21일 일본군의 경복궁 침입에 의해 자극된 농민군이 2차 기포를 준비하기 위한 전초전 성격의 집회였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것이다. (주석 11)


남원집회와 관련 황현은 『오하기문』에서 "이달 보름간에 봉준과 개남 등은 남원에서 대회를 열었는데 모인 사람이 수만 인이었다. 봉준은 각 읍 포에 영을 내려 읍마다에 도소를 설치하고 그 친당(親黨)을 세워 수령의 일을 맡도록하였다. 이에 도내의 군마와 전곡이 모두 도적들(농민군)의 소유가 되었으며 사람들이 비로소 그 역모가 이루어졌고 난민에 그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고 기술하였다.

'남원대회'는 엄청난 동학농민군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결정을 집약하기 어려운 대회였다. 6월 23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입하여 점령하는 등 국난수준의 사건으로 김개남의 재봉기 주장이 수용되기 어려운 국면이었다.


주석
9> 황현, 『오하기문』.
10> 남원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남원의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39쪽, 2005.
11> 박맹수, 「전라좌도 동학농민군의 활동과 그 역사적 의의」, 남원 동학농민혁명기념학술대회 발표논문, 2006년 11월 25일, 남원 지리산 소극장.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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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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