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김개남, 재봉기 뜻을 키우고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55회] 김개남은 전봉준, 손화중과 달리 양력으로 9월 하순 개전을 주장했다

등록 2020.02.04 17:11수정 2020.02.04 17:11
0
원고료로 응원
 
a

1894년(고종31)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벌인 전투 기록화. ⓒ 한국문화재재단 월간 문화재 갈무리

동학혁명이 발발한 1894년(갑오년)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격동기였다.

보수계열 학자들은 '동학란'으로 인해 외세를 불러오고 결국 국망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었다고, 엉뚱하게 책임전가를 하고 있지만 내외의 정세를 살피면 청일 간의 전쟁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조선침략 야욕은 이미 시나리오가 마련된 상태였다. 동학혁명이 아니었어도 일본은 조선침략에 나섰을 것이고, 청일전쟁은 일어났을 터이다.
  
a

김개남 장군 ⓒ 박도

 
김개남이 이끌고 있는 전라좌도의 동학군이 재봉기를 지도할 당시 내외의 정세를 돌아보는 것도 상황인식에 도움이 될 것이다.

6월 21일 - 일본군 경복궁 침범
6월 25일 - 갑오개혁 시작.
6월 26일 - 주한일본공사 고종에게 내정개혁 건의
7월 13일 - 조정, 내정개혁을 담당할 교정청 신설, 일본 독단으로 경인간 전선가설공사 착공.
7월 23일 - 대원군, 왕명으로 입궐 정무재결. 일본 독단으로 경부간 전선가설공사 착공.
7월 27일 - 일본공사의 강요로 한청 통상강화의 철폐를 청에 통고.
7월 27일 - 청일 양군 수원부근 풍도앞바다에서 충돌, 청군대패(청일전쟁 서전)
7월 27일 - 김홍집 영의정에 임명, 군국기무처 설치(갑오경장 시작됨)
7월 29일 - 청일 양국군 성환에서 전투, 청군 패주.
7월 30일 - 정부 관제개혁(궁내부ㆍ의정부 등 8아문 설치)
7월 31일 - 개국기원을 사용(고종 3년에 개국 503년).
8월  6일 - 일본에 망명했던 박영효 귀국, 경상도 영천ㆍ신정에 민란 발생.
8월 10일 - 정부, 조세금납제 결의(은행설치 등 결의).
8월 11일 - 정부, 사회개혁안 시행을 발표, 은본위제 시행.
8월 15일 - 제1차 김홍집 내각성립.
8월 20일 - 한일 잠정합동조합 체결(경부ㆍ경인철도부설 및 전국 연안의 1항구 개항 등)
8월 26일 - 한일 공수동맹 체결.
 
a

교룡산성 성벽 이곳이 김개남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의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팻말을 누군가 세워두었습니다. ⓒ 서부원

 
일본군이 조선왕궁을 침범하여 친청파인 민씨 정권을 몰아내고 흥선대원군을 형식적이나마 최고통치자로 옹립한 사건은, 한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이고 자존심이 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동학도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비록 민씨 척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왕조의 부패타락에 맞서 봉기했지만 왜군의 범궐과 국정개입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a

동학혁명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군. ⓒ 홈페이지 동학농민혁명

 
'남원대회'에서는 이렇다 할 행동통일 방안을 마련하지는 못했으나 반일봉기의 의지가 일치하였다. 수단과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가 탐관오리의 숙청과 폐정개혁이었다면, 제2차 봉기의 목표는 '척왜'에 있었다. 이제부터는 항일구국투쟁의 혁명전쟁의 성격으로 바뀌었다.

남원의 대회에서도 지도부의 의견은 크게 갈렸다. 강경론과 온건론이 그것이다. 김개남은 이번에도 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이지만 서둘러 서울로 진격해서 먼저 왜군부터 쫓아내자는 주장이었다.

김개남은 싸울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을 했고 전봉준과 손화중은 늦추자고 하였는데 그런 시기가 8월 하순으로서 양력으로 보면 9월 하순에 해당된다. 전쟁을 해야 한다면 곧 가을이 오고, 이어 추워지는 겨울에 대한 대처가 요구되는 시기였다. 동학농민군의 여건을 볼 때 전투를 시작할 시점의 선택은 매우 중요했다.

김개남은 양력으로 9월 하순 개전을 주장한 것이다. 전봉준과 손화중은 청일전쟁의 결판을 분명히 알 수 있고, 세력 확대와 군사훈련에 요구되는 기간을 포함해서 10월이나 그 이후의 개전을 주장한 것이다. (주석 1)


주석
1> 신영우, 앞의 논문.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권총 30정 이상 구입

AD

AD

인기기사

  1. 1 수백채 다주택자 '0원'... 깜짝놀랄 종부세의 진실
  2. 2 법원 "헬기사격 사실"... 밀가루·계란 뒤덮인 전두환 차량
  3. 3 박정희의 전화 "내가 점심 사면 안 되겠심니꺼?"
  4. 4 진정성 없어 보이는 '우리 이혼했어요'의 유일한 교훈
  5. 5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이낙연 20.6%, 윤석열 19.8%, 이재명 19.4%... 초접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