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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박 대통령, 이 말을 반복한 까닭

[리뷰] 영화 <남산의 부장들> 40년 전 그때... 내겐 다큐멘터리 같았다

20.02.04 10:01최종업데이트20.02.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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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컷 ⓒ 쇼박스

 
1979년 10월 26일 아침, 아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이 밤이니까 아침이면 10월 27일이다. 자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셨다.

"얘야, 박정희가 죽었단다."

잠이 확 달아났다. 무엇엔가 홀린 듯하여 사람들과 만나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인지 학교 앞에는 아침 시간인 데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학교 문을 닫았음에도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그렇게 한국의 정치 역사는 전환점을 맞았다. 그리고 40년이 흘렀다. 

지금 극장가에서는 이 당시 사건을 다룬 영화가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고 있다. 잘 만들어진 영화, 연기력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요즘 청년층에게는 실화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라고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그 시대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허구가 살짝 섞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일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이름은 실제 이름이 아닌 가명이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주인공들의 모습만 보아도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장면은 실제 있었던 상황으로 영화라는 공간을 위하여 시간을 압축하고 인간관계를 단순화 시켰을 뿐이다. 그런데도 현재의 시각으로 아무런 역사적 배경 없이 영화를 본다면 국가라는 거창한 이름을 사용하는 마피아 영화를 보는 것 같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아이리시맨>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영화에서 박통(이성민 분)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경우 주변의 아래 권력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하고 싶은대로 해."

박통은 '네가 나를 위하여서 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을 저질러도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준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는 목적을 쟁취하고 나면 모든 책임을 일을 벌인 상대에게 전가하고 그들을 버린다. 그들은 해결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곳에 국민은 없다. 박통의 권력욕만 있을 뿐이다.

김규평(이병헌 분) 중앙정보부장은 영화에서 친구이자 혁명 동지이며 자신의 길을 먼저 걸어 간 박용각(곽도원 분) 전 중정부장을 죽일 수밖에 없다. <아이리시맨>에서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 분)이 친구인 지미 호파(알파치노 분)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영화는 10월 26일 사건이 일어나기 40일 전부터 김규평이 박통을 살해하는 시점까지를 압축해서 그리고 있다. 박용각의 미국 망명과 미 하원 청문회에서의 폭로, 박용각과 박통, 김규평과 박통, 김규평과 곽상천(이희준 분) 대통령 경호실장과의 관계 형성 과정들을 군더더기 없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 심리적 갈등을 표정의 변화로 표현하는 출연자들의 연기가 실로 뛰어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 쇼박스


그 당시의 상황과 역사적 사건을 몸으로 체험하고 기억하는 우리 세대는 영화를 보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때 김재규(영화 속 김규평)가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북쪽은 김씨 왕조 남쪽은 박씨 왕조의 땅이 되지 않았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김재규가 어떤 심정으로 박정희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영화에서도 그 부분은 관객에게 맡기고 있다. 

김규평은 영화 중반부 이후까지 박통에게 충성하고 곽상천과 충성 경쟁을 한다. 단지 그는 행동을 결정하기에 앞서 갈등하고 불안해하는 점이 박용각이나 곽상천과 다를 뿐이다. 그러나 부마항쟁을 목격하고 그는 결심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김재규는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심은 없었던 듯하다. <남산의 부장들>을 관람한 나는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 그런 욕심을 갖기에 그의 계획은 구체성이 없었고 세를 규합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독재자의 폭정을 막기 위해 불쏘시개 역할을 자처한 것은 아닌지.

이후 김재규가 붕괴시킨 박정희 정권은 수많은 이들의 피를 뿌리며 또 다른 군사 정권으로 넘어갔다. 영화에서 불 꺼진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 온 밤도둑이 비밀 금고를 열고 숨겨 둔 돈뭉치와 금괴를 더플백에 넣고 빠져나가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도둑은 훔친 장물을 어깨에 메고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인 명패를 응시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 쇼박스

 
한 개인의 희생은 곧바로 독재정권을 불태워 재로 만들지는 못했으나 불씨로 남았다. 그리고 7년 후 대한민국은 국민의 힘으로 군사 독재체제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국민의 힘은 30년 후인 2016~2017년에도 제 역할을 다 했다. 
#남산의 부장들 #10.26사태 #부마항쟁 #아이리시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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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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