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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진 지 1000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비밀

[현해당의 인문기행 30] 전남 화순 운주사

등록 2020.02.09 20:00수정 2020.02.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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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바위에서 본 운주사 전경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골짜기와 능선을 따라 탑과 불상이 배치되어 있다. 사진 우측 상단부에 와불이 보인다. ⓒ 이종헌

 
법당도 없고 일주문도 없던 시절, 운주사 골짜기를 지킨 것은 수많은 불상과 석탑이었다. 층층이 일궈놓은 다랑논엔 신비로운 형상의 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골짜기 가장자리 산기슭에는 크고 작은 석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농부들은 쟁기질하다 말고 잠깐 석탑에 등을 기대고 앉아 막걸리 한 사발로 흐르는 땀을 씻었다. "이 농사지어 부모님 봉양하고 처자석 먹여 살려야 한께 제발 풍년들게 해 주씨요." 그럴 때면 여물을 씹는 소의 풍경소리가 석탑을 맴돌아 멀리 와불(臥佛) 님의 귓가에 가 닿았다.

아낙네들은 밭고랑을 매다 말고 석불님 발치에 쭈그리고 앉아 신세타령을 했다. 시집살이 혹독한 씨엄씨 이야기도 하고, 인정머리 없는 시누이 이야기도 하고, 짜잔하기 이를 데 없는 서방님 이야기도 하며 옷고름에 눈물을 찍었다. "서방 복 없는 년이라 자식 복도 없는갑쏘." 그럴 때마다 부처님은 가만가만 아낙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부처님은 오장육부 깊이깊이 숨겨놓은 속말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허물없는 친구였다.

좋은 날도 있었다. 봄부터 시작된 고된 농사일이 어느 정도 끝나고 들판에 황금빛 향연이 시작되는 팔월 한가위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운주사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그날만큼은 반상의 차별도 없고 남녀노소의 구별도 없었다. 저마다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석탑을 참배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다 함께 어울려 술과 음식을 나눴다. 남정네들은 징과 꽹과리를 울리며 신명을 냈고 여인네들은 사뿐사뿐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그럴 때면 부처님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아이들은 산꼭대기에 누워 계시는 부처님 바위에 올라가서 미끄럼을 타고 놀았다.

100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은 비밀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과 7층석탑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은 보물 제797호이며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가리킨다. 석조불감 앞 7층석탑은 전남유형문화재 제278호로 다른 석탑들이 석괴형의 사각 모양 지대석을 둔 것과 다르게 아주 낮은 지대석 위에 탑신부를 올렸다. ⓒ 이종헌

  

운주사 발형 다층석탑 대웅전 뒤편에 있으며 1층부터 4층까지의 형태가 주판알 같은 모습이다. 1918년 제작된 <조선고적도보>에는 현재의 모습과 달리 7층으로 되어 있다. 독특한 형태의 석탑이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고 기발한 조영기법을 보이는 석탑으로 운주사에서만 볼 수 있다. ⓒ 이종헌

 
경자년(2020) 음력 정월 초사흘(양력 1월 27일), 운주사 골짜기가 훤히 내려다뵈는 불사 바위 위에 앉아서 대웅전도 없고 일주문도 없던 시절의 운주사 옛 모습을 상상해 봤다. 

운주사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다. 운주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신라 때 도선국사 창건설, 나말여초에 능주 지방 호족 세력 창건설, 민중 건립설, 이민족 건립설, 혜명 도중(徒衆)설, 장보고 추모세력설 등 다양한 설이 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그 많은 탑과 불상을 세웠는지, 10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비밀은 풀리지 않고 있다.

운주사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파격'(破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웅장한 산세도 없고 장엄한 물소리도 없는 그저 평범한 골짜기에 터를 잡았다. 오래된 사찰이면서면서도 절 입구에는 부도며 탑비 같은 유적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 일주문 등 모든 건물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고 1000년의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것들은 오직 골짜기와 주변 능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석탑과 석불뿐이다.

석탑은 전통적인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고 예술적인 완성도도 높지 않다. 대다수 사찰은 대웅전 앞뜰에 한두 기의 석탑이 있는 것이 고작인데, 운주사는 모두 21기의 석탑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석불들은 또 어떤가? 골짜기 이곳저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90여 구의 석불들은 그 엉성한 솜씨며,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모습들이 차마 부처님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다.

누운 부처
 

화순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和順雲住寺臥形石造如來佛) 흔히 운주사 와불로 불리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3호이다. ⓒ 이종헌

 

운주사 석불군 다 운주사 동쪽 산등성이 암벽 좌우에 위치하며 오른쪽에는 불두 5편, 석불 입상 3구가 있다. 이 중 가장 큰 석불 입상은 세 조각으로 파손된 것을 1993년 보수하여 세워놓은 것이다. ⓒ 이종헌

 
서쪽 능선에는 일곱 개의 잘 다듬은 바위를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열해 놓은 칠성바위가 있고, 그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운주사 최고의 미스터리, 누워 있는 돌부처의 모습이 보인다. 흔히 와불(臥佛)이라고 부르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3호 화순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和順雲住寺臥形石造如來佛)이다.

도선국사가 하룻날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 하고 닭 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결국 와불로 남게 됐다고 한다. 

이 누워 있는 부처는 본래 좌상과 입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남게 된 것으로 일종의 미완성 불상인 셈이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온갖 신비로운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이 미완의 불상은 어느덧 운주사 최고의 석불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수많은 불상과 석탑은 누가, 언제, 왜 만들었을까
  

운주사 대웅전 운주사는 1918년 박윤동 군수 등 16명의 시주로 중건되었다. 현재의 전각은 1990년대에 중건한 것이다. ⓒ 이종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운주사 골짜기의 이렇듯 수많은 불상과 석탑은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만든 것일까?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 네 번, 학술조사 두 번을 실시한 결과를 보면 운주사는 창건 시기가 대략 11세기 초로 추정되며, 세 번의 중창을 거쳐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초에 폐사됐다. 

본래 대웅전은 계곡 입구 좌측에 있었으며 약 300년 동안 폐사된 채 방치됐다가 1918년 박윤동(朴潤東) 군수 등 16명의 시주로 중건됐다. 현재의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은 모두 1990년대 이후에 지어졌다. 문헌상으로는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최초의 기록이 보인다. <동국여지승람> 권 40, '능성현' 조에 "천불산(千佛山)은 현의 서쪽 25리에 있다"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니 좌우의 산등성이에 있는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 개이다. 또 석실(石室) 둘이 있어 석불과 서로 등지고 앉았다"라고 했다.

실제로 운주사에 각각 천 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42년 조사 때 석불 213구와 석탑 22기가 있었다고 한 것을 보면, 실제로 천 기의 석탑과 천 구의 석불이 있었다기보다는 많은 숫자의 탑과 불상에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운주사 석불군 가 운주사 입구 9층석탑 동쪽에 있다. 1984년 발굴조사 당시 맨 오른쪽 불상 대좌 뒤편에서 8~9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불상과 여래 입상이 출토되었다. ⓒ 이종헌

  

운주사 석불군 바 서쪽 산기슭에 있는 와불로 가는 길 중간의 암벽 아래에 있다. 불상은 중앙에 좌상, 그 주위에 입상들이 배열되어 있다. 불상은 9구이나 대좌가 12개인 것으로 보아 불상 3구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 이종헌

  

화순 운주사 마애여래좌상 대웅전으로부터 북쪽으로 40미터 떨어져 있는 거대한 바위 벼랑에 새겨져 있다. 운주사 석불군 중 유일한 마애불이다. ⓒ 이종헌

 
전남대 박물관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탑과 불상들은 한꺼번에 만들어졌다기보다 중창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탑과 석불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운주사 천불천탑의 진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누구는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바로잡기 위해 천불천탑을 세웠다고 하고, 누구는 왕이 날 명당자리라서 그 혈을 누르느라 천불천탑을 세웠다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운주사(運舟寺)를 '피안(彼岸)으로 가는 배'로 여긴다. 그럴 경우 석탑은 돛대가 되고 석불은 사공이 된다. 누워 있는 부처가 일어서면 미륵 세상이 온다고도 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도 한다.

시인들은 다투어 운주사를 노래하고 소설가들은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한 천불천탑의 비밀들을 끄집어낸다. 그러는 사이 운주사는 점점 더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구름 속의 절'(雲住寺)이 돼 가고 있다. 오는 봄에는 운주사에 가서 그 신비로운 천불천탑의 세계 속으로 빠져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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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콩나물신문협동조합 이사. 지은 책으로는 고전번역서 <그리운 청산도>, 북한산 인문기행집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관악산 인문기행집 <느티나무와 미륵불>, 시집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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