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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 있지? 우리 동네 마을버스의 특이한 문화

[옥상집 일기] 서두르지 않아도 목적지에 갈 수 있음을 배우는 곳

등록 2020.02.18 18:58수정 2020.02.1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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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9월 첫째 주에 옥상집으로 이사했다. 비록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40년 넘는 아파트 생활에서 얻지 못한 경험을 맛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졌다.[기자말]
난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앉는다. 그 시각이 대략 오전 6시다. 겨울로 들어간 요즘에는 바깥이 한동안 어둡다. 글을 쓰다 간혹 창 밖을 쳐다볼 때가 있는데 새들이 창문 근처에서 울거나 나무로 날아드는 게 보여서다. 때론 딱따구리가 집 근처 나무를 두드려댄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날이 밝아진 걸 느낀다.

어두울 때부터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글을 쓰다가 노트북 하단의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몸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날이 밝아지면서 귀에 들리는 소리가 복잡해지는 거로 시간이 흐르는 걸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귀로 시간의 흐름을 재다간 낭패 보기 쉽다.
 

쇠딱따구리 집 앞 나무에 날아든 쇠딱따구리가 나무를 쫄 준비를 한다. ⓒ 강대호

   
새벽을 알려주는 소리들

아파트에 살던 시절에는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특유의 소리가 있었다. 특히 아침이 그랬다. 종이 신문을 보던 시절에는 매일 새벽 5시쯤이면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신문이 촤르르 바닥을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옆집 남자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부지런한 남자였다.

문을 열고 문을 닫고 복도를 걷고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깊은 잠을 못 자던 그 시절 그 소리들은 그나마 잡고 있던 나의 잠을 확 달아나게 했다. 무척 예민하던 시절이었다.

예민한 나의 감각은 귀로 집중됐었다. 오전 6시쯤이면 주차장은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누가 잘못 건드렸는지 알람까지 삑삑 울어댔다. 가을부터는 경비원들의 낙엽 쓰는 소리도 들렸다. 쓱쓱 싹싹. 겨울이 되어 눈까지 내리면 빗자루는 물론 넉가래까지 동원되어 바닥을 긁어댔다.

그 소리들에 너무 익숙해졌는지 산 아래 주택 단지로 이사해서는 오히려 고요함에 압도되었다. 날이 밝아도 차 몇 대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곤 다시 조용해진다. 사람들 출근하는 소리, 아이들 학교 가는 소리 대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동네가 조용하니까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아파트에 살 때는 현관문 여닫는 소리, 복도 오가는 소리, 엘리베이터 오르내리는 소리에서 사람들의 여유 없는 모습이 들리곤 했다. 나도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는 발걸음이 괜히 급해지곤 했다. 급한 만큼 바닥을 내딛는 소리도 커지곤 했다.

지금은 혹시나 내 걸음 소리가 동네의 고요함을 깰까 보아서 천천히 걷는다. 지켜보면 다른 사람들도 느릿느릿 소리 없이 걷는다. 산에 터 잡은 고양이들이 동네에 내려와서 사람과 마주쳐도 어슬렁거리며 피할 정도로 평화롭게 느리다.
 

마을버스 기점이기도 한 동네 네거리에서 뛰어오는 손님이 보이면 잠시 기다렸다가 출발한다. ⓒ 강대호

   
그러다 내가 마구 뛰어야 하는 때도 있다. 멀리서 다가오는 마을버스가 보일 때다. 그 버스를 놓치면 5분 어쩌면 10분을 더 기다려야 하므로 서두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서자 멀리 정류장에 마을버스가 들어서는 게 보였다. 힘껏 뛰어도 버스를 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버스는 정류장에 한동안 서 있었다. 기사 아저씨가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빨리 오라는 건지 뛰지 말라는 건지. 아무튼, 난 버스를 탈 수 있었고 그날부터 난 마을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인사를 한다.

급한 상황은 다 내가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는 사람들은 물론 마을버스도 느릿느릿하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 앞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은 도착하는 버스를 따라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간혹 버스 여러 대가 한꺼번에 오는데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맨 뒤에 있다면 나는 뛰어가서 타야 하나 마나 하는 갈등에 빠지기도 했다. 버스 기사가 승객을 다 태운 줄 알고 정작 정류장 앞에는 세우지 않고 떠나는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동네 마을버스는 천천히 달린다. 길이 좁기도 하고 과속 방지턱도 자주 있어서지만 마을버스 기사들도 그리 서두는 모습은 아니다. 정류장 근처 골목에서 뛰어오는 나 같은 사람이 보이면 기다려준다. 기다린다고 뭐라고 하는 승객도 없다.

마을버스가 기다려주는 모습은 노인 승객이 타고 내릴 때 특히 티가 난다. 내가 주로 마을버스를 탈 때가 출근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마을버스에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든 사람이 많다. 그들은 무릎이 안 좋은지 마을버스 계단을 천천히 올라오곤 한다. 그들을 지켜보면 표정만큼은 빨리 올라오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럴 때면 마을버스 기사는 한마디 한다. "천천히 올라오세요."

예전엔 나도 그 누구보다 버스를 서둘러 타고, 황급히 내리곤 했었다. 버스가 정류장에서 머뭇거리다 혹은 천천히 달리다가 신호를 받지 못하면 속으로 불평도 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버스는 급한 내 마음보다 더 급했었다. 누군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와도 정류장을 살짝 벗어난 버스는 멈출 줄 몰랐고, 앞 승객이 내리는 리듬에 맞추지 못하고 뒷 승객이 머뭇거리면 문이 사정없이 닫히곤 했다. 물론 승객을 안전하게 친절하게 모시는 버스 기사도 많았지만.

그땐 왜 그리 마음이 급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급한 상황은 다 내가 만든 거였는데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렸었다. 길이 막혀서, 동료가 제 몫을 못 해서, 클라이언트가 무리한 걸 요구해서. 그렇게 변명하더라도 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니었는데.
 

마을버스 정류장 한적한 동네인 만큼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마을버스는 잠시 머물렀다가 출발한다. ⓒ 강대호

   
아파트를 떠난 지 넉 달 만에 이 동네 시간 흐름에 완전히 적응한 나를 느낀다. 참새와 박새들이 지저귀며 옥상에 날아들면 노트북을 켜고, 까마귀와 까치가 깍깍대며 영역을 다투면 글을 슬슬 마무리하고, 어치나 물까치가 집 앞 나무에 날아들면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여기는 분당의 어느 산 아래 동네. 굳이 시계를 보지 않고 여유를 부려도 세상은 그대로다. 난 서둘지 않아도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걸 배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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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살던 아파트를 떠나 산 아래 옥상집에 사는 경험과 동화 공부를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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