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 시작한 지 4년, 책 3권 계약했습니다

하기 싫은 일만 참고 하면 병 나요

등록 2020.02.07 10:39수정 2020.02.0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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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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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4년만에 3권의 책 계약을 했다 ⓒ unsplash


이번 설을 앞두고 아주 귀한 명절 선물을 받았다. '출판권 및 배타적 발행권 설정 계약서'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출판사에 들러 계약 절차를 진행했다. 세 번째 하는 일이지만 결혼식 날만큼 설레고 제대하는 날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앞선 두 책처럼 역사책이 아닌 에세이에 도전해 얻어낸 계약이기에 더욱 감격스러웠다. 올림픽 금메달도 아닌 출간 계약서를 들고 조커처럼 웃는 나를 거리의 사람들이 쳐다보지만 상관없다. 오늘만큼은 내가 김연아이고 이봉주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4년만에 3권의 책 계약을 했다.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마이너스 통장은 굳건하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감이 충만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돈, 큰집, 빠른 차, 사회적 명성 중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나는 왜 행복한가? 회사로 돌아가는 버스 창밖으로 나의 시간이 아니었던 시간을 되짚어봤다. 내가 행복해진 이유는 글쓰기라는 딴짓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야!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살기 싫어! 나는 신인류라 불리며 1990년대에 화려하게 우리 사회에 등장한 X세대다. 그러나, 호기롭던 X세대는 온데간데없다. 회사에서 386 부장의 눈치를 보며, 90년대생을 이해하기 위해 책까지 읽었지만, 어디에도 나의 자리는 없다. 하지만 해답은 늘 가까운데 있고, 누구의 탓도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도전도 안하고, 남들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길을 맹목적으로 따른 혹독한 대가였다.

나는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로 대변되는 한국 농구의 르네상스 한가운데 있었다. 키도 컸고 농구에 소질이 있었던 나는 농구 선수를 꿈꿨다. "운동하다 실패하면 뭐 먹고 살래?" 공부하다 실패해도 먹고 살기가 힘겹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관종기질이 다분하여 수학시간보다 장기자랑이나 쉬는 시간을 고대하던 나는 개그맨을 꿈꾸기도 했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자란 나에게 연예인은 운동선수보다 더 품어서는 안 될 꿈이었다. 돌아보면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도 없었다. 그저 지레 겁먹고 스스로 포기했다. 세상과 타협하고 딴짓하지 않는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무늬만 X세대였던 나는 딴짓하지 않고 청춘을 소비했다. 그 시간 속에 내 개성, 나만의 빛나는 장점과 독특한 취향을 억눌렀다. 그리고, 남들이 지적하는 나의 작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눈팔지 않고 오직 열심히만 살았다.

명문대학교 입학, 군 제대 후 대기업 입사, 35세 이전 결혼, 40세 이전 내 집 마련이라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목표를 향해 달렸다. 잠과 돈을 아끼며 최선을 다했다. 때론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든든하고 치사한 변명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딴짓하지 말고 한눈팔지 말고 무조건 열심히 해'

그렇게 뼈 빠지게 살았는데 마흔이 넘어 인생을 반추해보니 병장 만기 전역 외에는
이룬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차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명예퇴직 위기에 몰렸고, 두려움보다 깊은 후회가 밀려 왔다. '아! 딴짓도 좀 해보고 살걸.'

때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저 나와 같은 길을 걷다 지치고 병든 친구들과 신세 한탄을 하며 잠시나마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좌천과 공황장애를 세트로 품에 안고 나서야 역사 관련 글쓰기를 시작했다. 하늘
이 도와 2권의 출간계약으로 이어졌고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위기는 기회이
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등의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2권의
역사책 계약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 3번째 역사책 계약에 대한 제의를 받았었다.
그러나 나는 정중하게 출간 제의를 거절했다. 주위에서 반대가 심했다.

"역사책 저자로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는 기회야. 에세이나 소설은 나중에 도전해도 늦지 않아.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니? 결정적으로 현실을 생각해. 네 글을 에세이로 내 줄 출판사가 있을까?"

내가 역사 글쓰기를 시작할 때도 세상은 딴짓하지 말고 회사생활이나 열심히 하라고 했었다. 잠시 흔들렸지만 더 이상 세상이 정한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지 않기로 했다.

역사 이야기를 쓰는 것이 재미있고 신나지 않았다. 이제는 돈이 되는 일이나 성공이 보장되는 일이 아닌 그저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직도 딴짓 한 번 안 해본 모든 이들이여! 하기 싫은 일만 하며 참고 살면 병 생겨요. 딴짓도 하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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