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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두오모가 위대한 건축물인 건 알겠는데...

[이탈리아에서 한 달 살기 5] 두오모에 올라간 것을 반성하며

등록 2020.02.10 11:48수정 2020.02.1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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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부터 북새통이었다.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람을 피하느라 숙소를 찾아가는 길도 버거웠다. 과연 피렌체는 성당이나 미술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골목길 식당과 카페조차도 온통 관광객들 천지였다. 비가 잦은 겨울철 비수기도 이 정도니 여름엔 오죽할까 싶다.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시작된 터전, 내로라는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이 태어나 일가를 이룬 곳, 건물도 거리도 사람조차도 아름다운 꽃의 도시라는 찬사를 받는 자타공인 이탈리아 최고의 관광지다. 피렌체를 가지 않았다면, 이탈리아를 간 게 아니다. 누구든 그렇게 생각한다.


관광객들의 가방에 담긴 여행안내책자나 스마트폰에 깔린 애플리케이션, 숱한 여행자들의 블로그가 한결같이 그렇게 적고 있다. 과연 그것은 피렌체를 다녀온 그들의 공통적인 소감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지레 그런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 짐작하며 떠났다고 보는 맞을 것이다.

알려주는 대로, 적혀있는 대로
 

두오모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 두오모에 오르지 않았다면, 피렌체에 간 것이 아니라고 했다. 너도 나도 오르려는 마음 때문일까. 입장료가 무척 비싸다. ⓒ 서부원

 
국적은 달라도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여행안내책자와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은 언어만 다를 뿐 똑같다. 그것이 알려주는 대로, 적혀있는 대로, 움직이고, 보고, 먹고, 자고 돌아온다. 일정에 따라 어느 정도 가감은 있지만, 공통의 여행 공식이 되어 관광객들을 일률적으로 이끈다.

그나마 비슷한 문화권에다 물리적 거리마저 가까운 유럽의 관광객들의 걸음은 상대적으로 느리다. 나이 지긋한 전문가를 대동하고 모든 작품을 섭렵하듯 미술관을 돌아보는 이들이 많이 눈에 띈다. 독일에서 온 어린이 단체 관광객도 있었는데, 작품 앞에 모여 앉아 고개를 들고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하는 모습이 귀엽고도 짐짓 부러웠다.

유럽인 까닭일까. 단연 눈에 띄는 관광객은 동양인이다. 그 수도 많지만, 하나같이 발걸음이 바쁘다. 물리적 거리도 멀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 탓이어서인지 영원히 다시 못 올 것처럼 하루 이틀 사이에 피렌체의 모든 곳을 관람하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에 담으려 애쓴다. 그들에겐 여행자만의 특권인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어딜 가나 관광객의 절반은 중국인과 한국인이고, 다른 도시와는 달리 일본인도 적지 않다. 피렌체가 일본인에게 특히 각광을 받는 이유는 지난 2003년 개봉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덕분이다. 피렌체를 소개하면서, 이 영화가 언급되지 않는 여행안내책자와 블로그는 없다.


그 중심에 두오모(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가 있다. 두 남녀 주인공이 재회한 영화 속 마지막 장면 덕분에, 1년에 2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마치 스스로가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앞 다퉈 두오모 꼭대기에 오른다. 두오모에 오르지 않았다면, 피렌체에 온 것이 아니라는 듯.  

두오모와 브루넬레스키 두오모를 세운 브루넬레스키는 곁에서 자신의 작품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우리는 줄지어 두오모 꼭대기에 올라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 서부원


찾는 이가 많은 만큼, 입장료도 비싸다. 성당 내부와 종탑, 성당 유물들을 보관한 박물관, 인접한 세례당 등을 포함해 통합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는데, 1인당 18유로, 우리 돈으로 치면 2만4000원쯤 된다. 통합 입장권이라고는 하지만, 누구든 두오모에 오르는 비용으로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두오모는 입장권을 사면서 동시에 시간 예약을 하도록 되어 있다. 입구에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긴 줄이 서는데, 계단과 통로가 가파르고 비좁아 오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반면, 두오모를 제외한 다른 곳은 상대적으로 한산해 관람에 별 지장이 없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두오모에서 내려다 본 피렌체 풍경은 특별할 게 없다. 이탈리아 어느 도시를 가든 성당의 종탑은 있고, 그곳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경관은 대동소이하다.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르고 오를 만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에, 애먼 여행안내책자에 화풀이를 하게 된다.

하긴 오르기 힘들다는 것과 입장료가 비싸다는 걸 몰랐던 관광객은 없다. 누가 피렌체에 왔다면 꼭 가야 한다고 등 떠민 적도 없다. 혹자는 굳이 높은 곳에 올라 발아래를 내려다보려는 게 권력을 탐하고 지배욕을 지닌 인간의 본성이라는 그럴 듯한 해석까지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피렌체 두오모의 유독 비싼 입장료와 이른 아침부터 입구에 늘어선 긴 줄을 설명하진 못한다. 어쩌면 두오모보다 훨씬 더 유명한 피사의 사탑 입장료도 18유로인데, 아래에서 올려다 볼 뿐 굳이 오르려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 너도 나도 두오모를 오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만 같다.

두오모 위에서 그에 대한 답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입에선 이구동성 한 TV 예능 프로그램 제목이 튀어나왔다. 대개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지만, 당시 출연자들의 설명을 곱씹으며 인증샷 남겼다.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와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 여행의 동선까지도 획일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 더 풍요로운 여행을 위하여
 

우피치 미술관 내부 전시실만 99개에 달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르네상스 회화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우피치란 관공서라는 의미로, 미술관으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공공기관으로 쓰였다. ⓒ 서부원



그에 반해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 '피렌체의 심장'이라는 우피치 미술관은 두오모에 견줘 상대적으로 홀대 받는 듯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세계적인 규모의 미술관인데, 대개 주마간산 격으로 훑고 지나간다. 단체 관광객의 경우엔, 머무는 시간이 한 시간 남짓에 불과하고, 일정이 바쁜 경우라면 두오모만 올랐다 가기도 한다.

우피치 미술관은 전시실 숫자만 99개라서 동선을 따라 걷는 데만도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ㄷ'자 형태의 장방형 3층 건물로, 복도 한 면의 길이만 100m가 훌쩍 넘는다. 그 중 두 개 층이 전시실로 꾸며져 있는데, 작품들을 나름 꼼꼼히 감상하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다.

단체 관광객들은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의 작품 앞에서 가이드의 짤막한 설명만 듣고 미술관을 나선다. 대개 중고등학교 미술과 세계사 교과서 등에 실린 것들이다. 유명 작품이 있는 전시실마다 단체 관광객의 '밀물'과 '썰물'이 종일 반복된다.

사실, 서양 관광객들에게는 두오모보다 우피치 미술관이 더 인기다. 건축학적 가치를 모를 리야 없겠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관광객들과는 달리 그들에게 두오모가 후순위라는 이야기다. 슬쩍 엿본 그들의 여행안내책자에는 우피치 미술관이 맨 앞에 소개되어 있었다. 물론, 우리 것엔 단연 두오모가 먼저다. 

피렌체가 정녕 르네상스의 발원지라면, 두오모보다 우피치 미술관에 방점이 찍혀야 맞을 성싶다. 가문 소유의 미술품을 기꺼이 공공의 자산으로 기증한 메디치 가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 사례로서 기억할 만한 곳이니 더욱 그렇다. 여행의 목적이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깨닫는' 것이라면 말이다.

시중의 여행안내책자와 해당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오모가 아닌 우피치 미술관을 중요하게 다뤘다면 달라졌을까. 적어도 턱없이 비싼 입장료에 관광객들 중 상당수는 오를까 말까를 고민했을 성싶다. 참고로, 우피치 미술관 입장료는 12유로이고, 게다가 18세 이하는 무료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얹는다면, 두오모의 가치와 상징성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피렌체 하면 두오모를 떠올리고, 두오모에 오르기 위해 피렌체를 찾는, 획일화된 여행에 대해 지적하려는 것이다. 유명 관광지만 좇는 여행이라면, 이제 좀 달라져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피렌체 시민의 일상 하나 피렌체의 광장 여기저기에서는 시민들의 일상을 접할 수 있다. 사진은 산 로렌초 광장에서 있었던 페미니즘 시위의 모습이다. ⓒ 서부원


  

피렌체 시민의 일상 둘 주말 저녁 숙소 앞 광장에서 버스킹 공연이 열렸다. 관광지가 아닌 일상 속에서 주민들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몇 안 되는 볼거리였다. ⓒ 서부원



종일 번잡하고 어수선했던 피렌체를 떠나며, 조만간 이곳을 찾을 관광객들에게 팁을 하나 주고 싶다. 여행안내책자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 것, 블로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곳은 가급적 피할 것, 관광지든 먹거리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것. 무엇보다, 자신의 감각을 믿을 것.

인터넷에는 '관광', '여행', '핫스폿', '맛집' 등의 단어를 배제하고, 그냥 도시 이름만 검색해도 정보는 차고도 넘친다. 진짜 피렌체는 두오모가 아닌, 현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택가와 재래시장, 아이들이 뛰어노는 학교와 광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런 후라야 피렌체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다.
#피렌체 두오모 #우피치 미술관 #르네상스 #여행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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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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